관물의 쇄환을 소홀히 한 병조 판서 윤세기의 파직을 청하다
사간원에서 아뢰기를,
"근래에 나라의 기강이 해이애진 것은 실로 법령이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요, 법령이 행하여지지 않는 것은 오로지 대신들이 사욕만 품고 공사(公事)는 업신여겨 조정의 법령을 받들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관물(官物)을 쇄환(刷還)하는 것이 비록 미미한 일이라 하나, 여름 동안에 정식(定式)이 명백할 뿐만이 아닌데, 병조 판서 윤세기(尹世紀)는 몸이 중신의 반열(班列)에 있어 조정에서 대우하는 바가 다시 전일의 윤세기가 아니니, 마땅히 몸을 삼가고 신칙하여 오직 한마음으로 봉공(奉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색에 탐련(貪戀)하여 조령(朝令)을 우롱하고 있으니, 일의 해괴함이 이보다 더 심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파직(罷職)하고 서용(敍用)하지 마소서.
전후에 관기(官妓)를 솔축(率畜)576) 하는 무리는 대관(大官)이 아니면 반드시 부상(富商)이므로, 각 고을의 수령들이 혹 그 위세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그 뇌물(賂物)을 이롭게 여겨, 비록 정식(定式)이 있더라도 마침내 봉행(奉行)하지 않았으며, 혹은 애초부터 쇄환하지 않은 채 순영(巡營)에게 거짓 보고하거나, 혹은 잠시 점열(點閱)을 거친 뒤에 곧 돌아가도록 허락하니, 만약 별도의 처분이 없다면, 법령이 이행될 날이 끝내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지금부터 각도의 수령으로 조령(朝令)을 깔보고 즉시 쇄환하지 않거나 잠시 쇄환하였다가 곧 돌려보내는 자는 한결같이 환상(還上)577) 을 거짓으로 기록한 율(律)에 의하여 감죄(勘罪)하소서.
또 듣건대, 쇄환령(刷還令)이 내린 후에 혹 몰래 곡경(曲徑)을 도모하여 교묘한 명목(名目)을 만들어 상방(尙方)과 공조(工曹)의 침선비(針線婢)578) 로 소속시켜 놓고 장차 태연하게 베[布]를 받아들일 계획을 삼는 자도 있다고 합니다. 기묘년579) 이후 응당 쇄환되어야 할 사람을 만약 침선비로 이속(移屬)시킨 자가 있으면, 또한 각도나 해사(該司)로 하여금 일일이 사핵(査覈)하여 발거(拔去)하게 하고, 이 뒤에 혹시 교묘하게 거짓 기록한 사람이나 해당 관원과 수령은 적발되는 대로 엄중한 율(律)로 논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병조 판서는 추고(推考)하고, 말단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한결같이 환상(還上)을 거짓으로 기록한 율에 의하여 감죄하라는 계청(啓請)에 이르러서는 너무 과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조관(朝官)으로서 관기(官妓)를 솔축(率畜)한 자가 매우 많았으므로, 이에 앞서 신칙해서 쇄환하여 이미 돌려보냈었으나, 도로 전일의 폐습을 답습(踏襲)하였다. 영상(領相) 신완(申琓)도 또한 관기(官妓)를 첩(妾)으로 삼았는데, 대장(臺章)에서 이른바, ‘대신이 조정의 법령을 받들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이를 가리켜 말한 것이었다. 윤세기(尹世紀)는 젊었을 때에 거칠고 방탕해서 성색(聲色)을 좋아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대계(臺啓)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람됨이 한없이 질실(質實)하여 관직(官職)에 있으면서 남에게 뒤지지 않았고, 또 효우(孝友)의 행검(行檢)이 있었으니, 이로써 칭찬받았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0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11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신분-천인(賤人) / 역사-사학(史學)
- [註 576]솔축(率畜) : 맞아들여 첩(妾)을 삼아 데리고 삶.
- [註 577]
환상(還上) : 춘궁기(春窮期)에 백성에게 대여한 곡물을 추수한 뒤에 일정한 이자(利子)를 붙여 받아들이는 것. 환자(還子).- [註 578]
침선비(針線婢) : 바느질하는 여종.- [註 579]
기묘년 : 1699 숙종 25년.○丁未/諫院啓曰: "近來國綱之解弛, 實由於法令之不行, 法令之不行, 專在於大臣懷私蔑公, 不奉朝命之致。 官物刷還, 雖是微事, 夏間定式, 不啻明白, 而兵曹判書尹世紀, 身居重臣之列, 朝家之所以待之者, 非復前日之世紀, 則是宜益加律飭, 一心奉公, 而今乃貪戀女色, 玩戲朝令, 事之可駭, 莫此爲甚。 請罷職不敍。 前後官物率畜之類, 如非大官, 必是富商, 各邑守令, 或怵於威勢, 或利其貨賂, 雖有定式, 終不奉行, 或初不刷還而瞞報巡營, 或乍經點閱而旋許還歸, 若無別樣處分, 則法令終無可行之日。 請自今, 各道守令, 慢視朝令, 不卽刷還者, 及暫爲刷還, 旋卽還送者, 一依還上虛錄之律勘罪。 且聞刷還令下之後, 或有潛圖曲徑, 巧作名目, 追屬於尙方、工曹針綿婢, 將以爲納布自如之計。 己卯以後, 應被刷還之人, 如有移屬針婢者, 亦令各道及該司, 一一査覈拔去, 此後或有用巧冒錄人及當該官員、守令, 隨其現發, 論以重律。" 答曰: "不允。 兵判推考, 末端事依啓。 至於一依還上虛錄之律, 勘罪之請, 決知其過重也。"
【史臣曰: "朝士率畜官妓者頗多, 前此申飭刷還, 而旣送, 旋踵前習。 領相申琓亦畜妓, 臺章所謂大臣不奉朝令者, 蓋指此而言。 世紀少時, 踈放喜聲色, 臺啓所以發也。 然其爲人頗質實, 無畛域, 居官任職, 不下於人, 且有孝友之行, 人或以此多之。"】
- 【태백산사고본】 47책 40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11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신분-천인(賤人) / 역사-사학(史學)
- [註 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