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40권, 숙종 30년 10월 6일 계유 3번째기사 1704년 청 강희(康熙) 43년

목장의 일에 대한 집의 이관명의 상소문

집의(執義) 이관명(李觀命)이 상소하여 목장(牧場)의 일을 논하기를,

"목장을 겨우 주자마자 도로 빼앗는 것은 다만 사체(事體)가 전도(顚倒)될 뿐만 아니라, 성상(聖上)께서 백성을 보전하라는 명령이 일찍이 하루도 행하여지지 못하고, 도리어 소민(小民)에게 실신(失信)하는 데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신은 가만히 전하(殿下)를 위하여 애석(愛惜)하게 여깁니다. 가령 도적(圖籍)이 분명하다면, 본시(本寺)에서 환추(還推)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러나 토민(土民)이 경작해 먹다가 이미 세업(世業)을 만들었으니, 성명(聖明)께서 위에 것을 덜어 아래에 더해 주는 도리에 있어서, 오히려 마땅히 이를 주고 묻지 아니하여 민정(民情)을 위로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 당당한 천승(千乘)의 부(富)로써 아래로 필문(篳門)512) 규두(圭竇)513) 의 가난한 자와 문권(文券)을 증거(證據)로 삼아 시비(是非)를 분변하여 이러한 작은 땅을 다투시는 것입니까? 또 저 한학(韓㰒)이라는 자는 송사(訟事)를 생업(生業)으로 삼고 불의(不義)를 행하기를 좋아하니, 그가 이른바 ‘토호(土豪)가 재물을 거두어 중외(中外)에 걸쳐 교묘하게 꾸미고 무롱(舞弄)한다는 것은 오로지 천청(天廳)을 현혹시키는 계책에서 나왔으므로, 간악한 말은 또한 노여워할 것도 못되나, 가석(可惜)한 것은 그 말을 추연(推演)하여 이를 회계(回啓) 가운데 올려서 간인(奸人)의 교묘한 말을 증거로 삼게 하시니, 진실로 개탄(慨歎)할 만합니다.

아! 우리 나라는 땅이 편소(偏小)한데도 절수(折受)514) 의 해(害)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경비(經費)가 모자라고 생민(生民)의 도현(倒懸)515) 하는 것이 진실로 이에 말미암는데, 전후에 진언(進言)한 것이 모두 군하(群下)의 민울(悶鬱)516) 함을 깨닫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목장(牧場)을 출급(出給)하라는 명이 곧 성상의 선단(善端)에서 나왔는데, 또한 폐정(弊政)을 정리(整理)할 한 기회였으나, 이때에 그 아름다운 뜻을 받들어 회보(懷保)하는 은택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신하들이 힘써 청하여 다행히 얻었던 것을 도리어 하루아침에 정파(停罷)함으로써 영구히 곤궁한 백성의 희망을 끊어버렸고, 또 와서 간(諫)하는 길을 막아버리셨으니, 이와 같이 하여 그치지 않으신다면, 비록 옛날의 유직(遺直)517) 으로 하여금 대성(臺省)에 포열(布列)시켜서 날마다 좋은 의견을 진언(進言)하게 하더라도 또한 나라 일에 유익함이 없겠거늘, 하물며 신과 같이 피곤하고 용렬한 자가 기력(氣力)을 내어 시비(是非)를 논하여서 국가의 이목(耳目)이 위임한 뜻에 저버림이 없기를 다시 바라겠습니까?"

하였으나, 임금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0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114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농업-전제(田制) / 사법-재판(裁判) / 교통-육운(陸運)

  • [註 512]
    필문(篳門) : 가난한 집의 문.
  • [註 513]
    규두(圭竇) : 홀 모양으로 된 문 옆의 출입구.
  • [註 514]
    절수(折受) : 임금에게서 자기 몫으로 땅이나 결세(結稅)를 떼어 받음.
  • [註 515]
    도현(倒懸) : 매우 위급한 지경에 처함.
  • [註 516]
    민울(悶鬱) : 딱하게 여겨 가슴이 답답함.
  • [註 517]
    유직(遺直) : 성현의 풍도(風度)가 있는 정직한 사람.

○執義李觀命上疏論牧場事曰:

牧場之纔給還奪, 不但事體之顚倒, 聖上保民之令, 曾不能一日行, 而反爲失信小民之歸, 臣竊爲殿下惜之。 藉令圖籍分明, 本寺之還推固也, 而土民耕食, 已作世業, 則在聖明損上益下之道, 猶當與之不問。 以慰民情, 豈可以堂堂千乘之富, 下與蓽門圭竇, 證文券辨是非, 以爭此咫尺之地乎? 且彼韓㰒者, 以訟事爲生業, 嗜行不義, 則其所謂土豪斂財, 跨立中外, 巧飾舞弄者, 專出於眩惑天聽之計。 惡言亦不足怒也, 所可惜者, 推演其說, 上之於回啓之中, 證成奸人之巧說, 良可慨也。 嗚呼! 我國壤地褊小, 而折受之害, 無處不及。 經費之耗縮, 生民之倒懸, 實由於此, 而前後進言者, 皆不能得群下之悶鬱, 厥惟久哉! 牧場出給之命, 卽聖上善端之發, 而抑弊政整理之一幾會也。 於斯際也, 不能將順其美, 以卒成懷保之澤, 而群下之力請而幸得者, 乃反一朝罷之, 永絶窮民之望, 且杜來諫之路。 若此不已, 則雖使古之遺直, 布列臺省, 日進嘉謨, 亦無益於國事。 況如臣疲劣, 更望出氣力論是非, 無負國家耳目之寄哉?

上不納。


  • 【태백산사고본】 47책 40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114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농업-전제(田制) / 사법-재판(裁判) / 교통-육운(陸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