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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38권, 숙종 29년 8월 8일 신사 1번째기사 1703년 청 강희(康熙) 42년

주강에서 이만성의 아뢴 바를 논하고 이만성과 이재를 파직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시독관(侍讀官) 이관명(李觀命)이 아뢰기를,

"어제는 아주 작은 한 가지 일로 전하의 노여움이 진동하셨는데, 신의 보잘것 없는 몇 마디 말로 광구(匡救)하지 못했으므로 밤새도록 걱정하고 탄식하느라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오늘 입대(入對)하여 강독하시는 음성을 들어보니, 평일과는 아주 달라 성인(聖人)의 화평한 기상을 잃으신 듯합니다. 무슨 지나친 고민 때문에 그러시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언로(言路)가 열리고 닫히는 것은 국가의 성쇠와 관계가 있는 것인데, 전하께서는 부드러운 말만 듣기를 좋아하시고 강직한 말은 듣기를 싫어하시어 조금만 성심(聖心)에 거슬려도 바로 언어와 안색에 드러내시니, 오늘날 언로의 기구함을 실로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또 성인(聖人)은 희로(喜怒)를 마땅히 사물에 붙여 버려야 하는 것인데, 그러면 성내는 것은 상대(相對)에게 있고 나에게는 있지 않는 것이니, 어찌하여 반드시 큰 소리와 싫은 낯빛으로 남에게 나의 옹졸함을 보이십니까? 동료가 아뢴 바는 숨김이 없어야 한다는 의리에 붙인 것이고, 한 관원을 위해 편든 것은 아닙니다. 명빈(榠嬪)의 상례는 이미 예장(禮葬)을 명하셨으니 유사(有司)가 응당 정성을 다하여 봉행할 것이며, 전하에게 명빈은 한 사람의 희첩(姬妾)에 불과합니다. 설사 광망(狂妄)한 사람이 후궁(後宮)을 바로 논척(論斥)한 일이 있더라도 전하께서는 성내실 일이 못됩니다. 하물며 희첩의 족속으로서 빙자하여 작폐하였으니, 이런 작은 무리들을 다스리는 데 무슨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유사(有司)에게 추문(推問)하게 하여 죄가 있으면 죄를 주고, 죄가 없으면 풀어주면 그뿐입니다. 어찌 앞질러 기세를 꺾고 갈수록 더욱더 격뇌(激惱)하실 일이 있겠습니까? 옛날 원앙(袁盎)신부인(愼夫人)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는데도 황금을 주어 포상하였고506) , 동선(董宣)은 공주(公主)의 노복을 쳐죽였는데도 강직하다고 포장(褒奬)507)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런 잗단 일에도 오히려 용서가 없으신데, 가령 정신(廷臣) 중에 위의 두 신하 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전하의 대단한 노여움은 여기에 그치지를 아니했을 것이니, 어찌 포장하는 미덕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종전부터 전하께 진계(陳戒)한 바가 모두 희로(喜怒)의 감정을 억제하시란 것이었는데도 일마다 촉발(觸發)함이 매양 이와 같으십니다. 선유(先儒)들도 말하기를, ‘칠정(七情) 중에서 성냄을 억제하기가 가장 어렵다.’ 하였고, 또 ‘성질이 치우쳐서 이기기 어려운 것부터 이겨나가라.’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이제부터는 본원(本原)의 바탕에 유의하셔서, 무릇 만기(萬幾)를 수응(酬應)하실 즈음에 희로(喜怒)를 밖으로 나타내시지 말고 반드시 의리를 살펴 행하시다면, 어찌 다시 오늘과 같은 전도(顚倒)된 지나친 일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이만성(李晩成)의 말이 참으로 공정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가? 해당 관원의 주언(奏讞)은 유사(有司)가 있는데 정말 유신(儒臣)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감히 누누이 구해(救解)하는 말을 한단 말이냐? 오늘의 연석(筵席)에서도 무엄하다 하겠다. 어떤 집이건 초상이 나면 친족이 으레 간검(看檢)한다. 예장(禮葬)의 관재(棺材)를 점검하고 가리는 것도 과외의 일이 아니다. 종전에도 벼슬 높은 집안에서 예장을 할 때에 무릇 관계된 상구(喪具)를 지극히 각박할 정도로 살펴 장생전(長生殿)에서 쓰다 남은 물건을 주기까지 하였으나, 오히려 점퇴(點退)508) 하기도 했으니, 그 때에 ‘어찌 바로 재궁(梓宮)을 갖다 쓰지 않느냐?’는 말까지 있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조정에서 한 사람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유독 이번 초상에만 이같이 저지하고 억제하니, 또한 무슨 심사(心事)이냐? 왕자의 나이 지금 다섯 살로 막 어미 품을 벗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는데, 아직은 제 어미의 죽음을 숨기고 있기는 하나 어미를 부르는 소리가 주야로 끊어지지 아니하니, 정경이 매우 비통하여 차마 말을 못할 지경이다. 내가 초상의 관재(棺材)나 장사지낼 산지(山地)는 신중히 가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호상(護喪)하는 중사(中使)에게 여러 번 신칙하였으니, 송사(送死)509) 에 유한(遺恨)이 없게 하여 왕자의 후일 정회(情懷)를 위로해 보고자 한 것이었다. 근래에 사대부 집에서는 남의 묘지(墓地)를 강제로 빼앗는 일도 도처에 있건만, 비어 있는 해로울 것 없는 땅 한 자리를 얻으려고 하여도 또한 뜻대로 되지 않으며, 관재(棺材)를 좀 가려쓰기로 무슨 큰 죄가 되기에 마치 기화(奇貨)를 만난 듯 기어코 조사하여 죄를 다스리려고 하니, 이는 왕자를 능멸한 소치에 불과하다. 일은 비록 미세하지만 마음씀이 아름답지 못함을 알 만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대부들의 형세가 가장 무거워서 공족(公族)을 능멸하는 일이 이미 풍습(風習)이 되어버렸다. 왕자는 비록 품계가 없지만, 군(君)이 어찌 이조의 낭관(郞官)에게 미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명류(名洗)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실로 비교도 할 수 없다. 원앙(袁盎)의 말은 대개 적서(嫡庶)의 분수를 밝히려 함이니, 한문제(漢文帝)의 포상함이 지극히 마땅하다. 지금 세상에 참으로 원앙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도 응당 후하게 상(賞)을 줄 것이니, 어찌 다만 50금(金)뿐이겠는가? 그대가 비유를 든 것은 아주 가깝지 않다."

하였다. 임금은 왕자의 정경을 말하면서 오열(嗚咽)이 그치지 않았고, 희첩(姬妾)이란 두 글자에 몹시 노하여 ‘희첩 희첩 하지만 그대가 할 말은 못된다.’ 하였다. 동경연(同經筵) 유득일(兪得一)이 아뢰기를,

"간측(懇惻)한 전하의 말씀을 듣자오니 왕자의 정상이 참으로 안타깝고 애처롭습니다. 대저 관곽(棺槨)이란 몸을 감싸는 물건이니 마땅히 정하게 가려야 할 것입니다. 전하의 왕자를 위하여 송사(送死)에 유한(遺恨)이 없게 하려고 하는 마음을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유신(儒臣)의 아뢴 바는 들은 대로 다 말한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일 참으로 능멸할 뜻이 있었다면 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도 이미 하늘을 이고 땅을 밟으며 전하를 우러러 섬기고 있는데, 어찌 조금이라도 능멸할 뜻이 있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해당 관원이 거짓을 꾸며 공초를 바친 정상이 괘씸하여 처음부터 장배(杖配)로 조율(照律)하려고 한 것이지 격뇌(激腦)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한림(翰林) 이재(李縡)이만성 (李晩成)의 조카로 승정원에 앉아서 감히 활인서 별제(活人署別提)를 파직을 말하였으니, 나이 젊은 명관(名官)이 어찌 감히 임금을 기롱(譏弄)하기를 이와 같이 할 수 있단 말이냐? 참으로 해괴하다."

하였다. 이관명이 다시 진계(陳戒)하였으나 임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날도 임금의 노여움은 덜 풀려 여러 신하들이 합문(閤門)에서 강(講)할 것을 익히고 있는데, 진노한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렸으므로 서로 돌아보며 실색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만성이관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기색을 살피고 이르기를, ‘그대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게. 더욱 전하의 대단한 노여움만 돋구네.’ 하였으나 이관명은 듣지 않았다. 조금 후에 입대(入對)하여 임금의 대단한 노여움을 무릅쓰고 할 말을 다하여 말이 매우 강직(剛直)하니, 좌우의 신하가 목을 움츠렸다. 특진관(特進官) 유집일(兪集一)과 승지 윤홍리(尹弘离)는 모두 위축되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고, 유득일은 조금 말은 하였으나 말이 웃을 만한 것이 많아서 도리어 아첨에 가까왔다. 이 몇 사람들은 이관명에 비하면 뻔뻔스러운 얼굴이 아니겠는가? 우리 나라 속담에 죄도 없이 횡액을 당한 것을 비유하여 ‘중학유생화간(中學儒生和奸)’ 또는 ‘활인별제파직(活人別提罷職)’이라 하는데, 어제 사관(史官)과 무신(武臣)을 파직시키고 귀후서(歸厚署) 관리를 특별히 명하여 감률(勘律)하라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임금이 격뇌(激腦)한 바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하였다. 이재(李縡)는 나이 젊고 경솔하여 여러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주고받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대궐에까지 흘러들어가 엄중한 분부를 받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만성이재는 황공하여 패초(牌招)를 어겨 파직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3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506]
    원앙(袁盎)은 신부인(愼夫人)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는데도 황금을 주어 포상하였고 :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신부인(愼夫人)을 사랑하여 황후(皇后)와 함께 동석(同席)시키자 원앙(袁盎)이 신부인을 끌어내려 앉혔는데, 신부인과 황제가 노하니, 원앙이 혜제(惠帝) 때 여후(呂后)가 고조(高祖)가 사랑하던 척부인(戚夫人)을 사람돼지[人彘]처럼 만든 일을 들어 경계하였음. 이에 신부인과 황제가 원앙에게 상을 내렸다는 고사.
  • [註 507]
    동선(董宣)은 공주(公主)의 노복을 쳐죽였는데도 강직하다고 포장(褒奬)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낙양령(洛陽令) 동선(蕫宣)이 황제의 누이인 호양 공주(湖陽公主)의 하인이 살인을 하고 공주의 집에 숨자 잡아 죽였는데, 황제가 동선을 죽이려 하여 공주에게 사과하라고 하였으나, 동선이 끝내 굴복하지 않으므로 황제가 많은 상을 내렸다는 고사.
  • [註 508]
    점퇴(點退) : 공물(貢物) 따위의 규격 검사에서 불합격되어 수납(收納)하지 않고 물리는 일.
  • [註 509]
    송사(送死) : 장사를 지냄.

○辛巳/御晝講。 侍讀官李觀命曰: "昨者因一微事, 天威震疊, 臣草草數語, 無以匡救, 終夜憂歎, 彷徨不寐。 今日入對, 伏聽講讀之音, 大異平日, 殊失聖人和平之氣。 未知緣何激惱而然耶? 夫言路開閉, 係國家興喪, 而殿下樂聞軟熟之言, 厭聽讜直之說, 少咈聖心, 輒加聲色, 今日言路之崎嶇, 實無足怪。 且聖人喜怒當付之物, 可怒在彼, 不在於己, 何必大聲疾色, 以示人不廣耶? 同僚所陳, 蓋自附於無隱之義, 非爲一該官地也。 䄙嬪之喪, 旣命禮葬, 有司自當盡心奉行, 而於殿下, 特一姬妾耳。 設有狂妄之人, 直斥後宮, 殿下固無可怒之事。 況以姬妾族屬, 憑藉作弊, 此等幺麽之輩, 治之何難? 令有司推問, 有罪罪之, 無罪赦之而已。 豈可徑加摧折, 輾轉激惱耶? 昔袁盎, 引却愼夫人座, 而賜黃金褒之, 董宣擊殺公主奴, 而奬之以强項。 殿下於此等微細之事, 猶不假借, 假令廷臣有爲兩臣事者, 殿下威怒, 不但止此, 尙何望有褒嘉之美乎? 從前進戒於殿下者, 嘗在喜怒之節, 而臨事觸發, 每每如此。 先儒曰: ‘七情之中, 惟怒難制。’ 又曰: ‘就性偏難, 克處克去。’ 惟願自今留意於本原之地, 凡於酬應萬幾之際, 不形喜怒, 必察義理, 則豈復有顚倒過差, 如今日之爲乎?" 上曰: "昨日晩成之言, 果出於公心乎? 該官奏讞則有司存, 固何與於儒臣, 而乃敢爲縷縷救解之說? 今日筵席, 可謂不嚴矣。 凡人家初喪, 親屬例爲看檢。 禮葬棺板之點擇, 亦非科外之徵也。 曾前位高家禮葬時, 凡干喪具, 極其苛察, 至給長生殿餘件, 而猶且點退, 其時有何不直取梓宮之語矣。 厥後朝廷之上, 未聞有一人言之者, 獨於此喪, 沮抑如是者, 抑何心哉? 王子年今五歲, 纔免懷而喪母, 姑諱其死, 而呼母之聲, 晝夜不絶, 情境慘切, 有不忍言。 予謂初喪棺材及葬山, 不可不愼擇, 以此屢勑護喪中使, 蓋欲送死無憾, 以慰王子他日情懷也。 近來士夫家勒奪人墓地, 比比有之, 而今欲營一空閑無害之地, 亦不可得。 棺材點擇, 胡大罪也, 而如得奇貨, 必欲査治? 此不過凌蔑王子之致。 事雖微細, 可知用意之不美也。 我國士夫形勢最重, 凌蔑公族, 已成風習。 王子雖是無階, 君安敢〔不〕 及吏曹郞官乎? 名流氣焰薰天, 實難與較矣。 袁盎之言, 蓋欲明嫡庶之分, 漢帝褒賞, 固其宜也。 今世苟有如者, 子當厚賞, 豈直五十金而已哉? 爾之引喩大不襯近矣。" 上語及王子情境, 嗚咽不已, 又深怒姬妾二字曰: "姬妾姬妾云者, 非所當言也。" 同經筵兪得一曰: "伏聞天語懇惻, 王子情理, 實爲矜憐。 夫棺槨, 附身之物, 所當精擇。 殿下爲王子送死無憾之心, 孰敢容議? 儒臣所陳, 不過有聞必達而已。 如果有意凌蔑, 其罪難赦。 渠旣戴天履地, 仰事殿下, 則豈有一毫凌蔑之意哉?" 上曰: "該官飾詐納招, 情狀可惡。 自初欲以杖配照律, 非激惱而然也。 翰林李縡, 以晩成之姪, 坐政院, 敢以活人別提罷職爲言。 年少名官, 安敢譏弄君父若是乎? 誠可駭也。" 觀命, 又陳戒, 上不答。 是日, 上, 餘怒未霽, 諸臣在閤門習講, 震疊之威, 已聞於外, 莫不相顧失色。 晩成觀命將有所言, 謂曰: "君無妄言, 益致激惱。" 觀命不從。 及入對, 觸雷霆盡言, 言甚勁直, 左右爲之縮頸。 特進官兪集一、承旨尹弘离, 皆瑟縮不敢出一言, 得一略有所言, 而語多可笑, 反近於諂謏。 玆數臣者, 比觀命, 能不顔厚乎? 我國諺語, 以無罪橫罹謂之 "中學儒生和奸, 活人別提罷職。" 昨日史官、武臣罷職, 歸厚官又特命勘律, 人皆謂聖意有所激惱。 年少輕率, 亦於衆坐中, 有所酬酢, 其言流入大內, 至承嚴敎。 晩成, 惶恐違召坐罷。


  • 【태백산사고본】 45책 3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4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