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37권, 숙종 28년 8월 4일 계미 3번째기사
1702년 청 강희(康熙) 41년
영월의 유학 주황 등이 본 고을에 세운 사육신의 사묘에 은액을 내려 달라고 청하다
영월(寧越)의 유학(幼學) 주황(朱璜) 등이 상소하여 본고을에 세운 육신(六臣)370) 의 사묘(祠廟)에 은액(恩額)을 내려 달라고 청하고, 또 말하기를,
"같은 시기에 권절(權節)이라는 학사(學士)가 있어, 도량이 크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문식(文識)과 무략(武略)을 다 갖추었습니다. 광묘(光廟)께서 잠저(潛邸)371) 에 계실 때 누차 임황(臨況)372) 하였는데, 권절이 비록 천명(天命)이 속한 바 있음을 알았으나, 거짓 취한 체 거짓 귀먹은 체 하면서 끝내 감히 스스로 인익(鱗翼)373) 에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내선(內禪)374) 한 후에는 이내 미친 병이라고 핑계하고서 무릇 은혜로운 제수(除授)가 있어도 모두 명(命)에 응하지 않았으니, 또한 마땅히 육신(六臣)의 사당(祠堂)에 함께 배향(配享)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예조(禮曹)에 명하여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9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윤리-강상(綱常)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