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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7권, 숙종 28년 7월 1일 경술 1번째기사 1702년 청 강희(康熙) 41년

홍수 등의 재해로 인해 부제학 김진규 등이 정사에 임하는 방도에 대해 상소하다

부제학(副提學) 김진규(金鎭圭)·교리(校理) 이관명(李觀命)·수찬(修撰) 이탄(李坦)이 차자(箚子)를 올려 아뢰기를,

"6월 이후로 장마의 해(害)가 일어나 도성(都城)의 가로(街路)에 물이 범람하고, 교외(郊外)의 가까운 곳에서는 배가 통행하였으며, 전답은 물에 잠겨 벼의 모가 쓸려 나갔는데, 가장 슬픈 것은 집이 부서지고 무너져 백성들이 물에 빠지고, 무덤이 무너져 시체와 관(棺)이 뒤집어 엎어진 것이니, 이는 시인(詩人)이 이른바 ‘천하의 모든 냇물이 끓어오르네.’라고 한 것뿐만이 아닙니다. 송(宋)나라 신하인 진덕수(眞德秀)의 수재(水災)에 대한 논(論)에서는, 동중서(董仲舒)290) ·구양수(歐陽修)291) 의 말을 인용하여 홍수(洪水)를 음(陰)의 재앙이라고 하고, 시정(時政)의 잘못을 조목별로 열거해서 이르기를, ‘궁정(宮庭)의 엄밀한 곳과 좌우(左右)의 친근한 사사로움이 음(陰)이고, 안으로 간사한 소인(小人)과 밖으로 이적(夷狄)·도적(盜賊)이 또한 음(陰)이다.’ 하였으며, 이어서 또 해석하여 이르기를, ‘군주는 지극한 양(陽)의 덕(德)을 지니고서 여러 음(陰)을 다스리기 때문에, 군주의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면 양(陽)은 자라나고 음(陰)은 숨게 된다.’ 하였습니다. 아! 우리 전하께서 일찍이 음악과 여색(女色)의 즐김이나 잔치의 즐거움이 없었으니, 궁정(宮庭)의 음(陰)은 걱정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빈어(嬪御)로서 명호(名號)가 있는 자가 근래에 점차 증가하고, 더구나 이제 왕비[壼儀]께서 이미 안계시어 음교(陰敎)가 베풀어지지 아니하니, 육궁(六宮)292) 사이에 과연 성색(盛色)의 비난과 은혜를 믿는다는 우려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실로 외부의 신하가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만, 그 현저한 것을 가지고 논한다면, 저택(邸宅)이 길거리에 줄지어 있고 장전(莊田)이 주현(州縣)에 두루 퍼져 있어, 부고(府庫)의 저축이 장차 다 없어지고 백성의 원망이 떼 지어 일어나기에 이르렀으니, 신 등의 자질구레하고 지나친 생각을 또한 어찌 감히 스스로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아! 본조(本朝)에서는 환관[閹寺]에게 일찍이 일의 권한을 맡겨둔 적이 없었는데, 근일에 방자한 조짐이 싹트고 있습니다. 대관(臺官)이 추궁하고자 하니, 이에 감히 격고(擊鼓)293) 하여 함부로 호소하였고, 북시(北寺)294) 의 사은(私恩)을 빙자하여 한(漢)나라 혜제(惠帝)·문제(文帝)의 공법(公法)에 대항하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조정의 신하(臣下)들을 공격하고 조심하는 것은 사체상 심히 중한 일인데도, 환관[黃門]에게 전명(傳命)하자 감추어 두고 내리지 않았으니, 이는 조정의 대관을 경멸할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군명(君命)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방자한 풍습을 어찌 이상(履霜)의 경계295) 로 삼지 않겠습니까? 아! 갑술년296) 이후로 모든 간사한 무리가 인륜을 무너뜨리고 의리에 어그러지며, 나라를 해치고 현인(賢人)을 살해한 자들이 깊이 책망받고 배척되어 나가서, 이제 이미 거의 다 없어졌는데도, 음양(陰陽)의 차례는 쾌괘(夬卦)297) 가 다하여 구괘(姤卦)298) 가 되었습니다. 대개 소인(小人)은 비록 쇠미(衰微)한 가운데 있어도, 이익을 도모하고 권세를 도둑질할 생각을 항상 가슴속에 두고 있는 것이니, 저 한쪽편의 사람들은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고 타이(朶頤)299) 하는 욕심을 쌓아서 8, 9년 동안에 그들이 정탐하고 엿보는 바가 갈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오시복(吳始復)의 간사한 모의와 이봉징(李鳳徵)의 간교한 상소가 비록 뜻대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이어서 췌마(揣摩)300) 하고 경영함은 반드시 이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시(羸豕)의 상(象)301) 이 이미 조짐을 보이는데도 금니(金柅)의 의(義)302) 를 강구하지 않으니, 초육(初六)의 음(陰)이 얼마 안가서 차츰 자라나 점점 성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근래 도이(島夷)의 교활함이 더욱 심하여, 지난번 새 은전[新銀]의 시행과 관우(館宇)의 개수(改修)에서 우리 나라를 경시하는 실상을 볼 수 있었는데, 역관(譯官)의 무리가 그들과 결탁하여 속이고 숨기는 일을 공공연히 자행합니다. 또 듣건대, 낙중(洛中)303) 의 부상 대고(富商大賈)들과 동래부(東萊府)의 간사한 수졸(戌卒)이 모두 저들의 뇌물을 받고 저들의 심복(心腹)이 되어서, 무릇 우리의 크고 작은 비밀의 일을 몰래 통하고 누설한다 하니, 이는 이미 한심한 일입니다. 그리고 동해의 수세(水勢)가 바뀌어 어족(魚族)이 옮겨가므로, 위험한 기미와 이상한 징조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개 말할 수 있으니, 흐린 눈으로 세상을 근심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을 듯합니다. 아! 처음 을해년304) ·병자년305) 의 흉년부터 소재읍(所在邑)에서 도둑이 일어나, 적어도 수십 명 많으면 백명이 넘으며, 심지어 읍치(邑治)306) 에서 사람을 죽여 쓰러뜨리고, 감옥에서 사형수[死囚]를 빼내는 일까지 있었으니, 이를 좀도둑이라고 하여 무심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만약 어찌할 수 없다 하여 엄하게 방비하지 않는다면, 녹림(綠林)307) ·황건(黃巾)308) 의 변고(變故)가 오늘날에 일어나지 않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생각하건대, 이처럼 수재(水災)의 몹시 참혹함과 구징(咎徵)309) 의 염려스러움이 이미 저와 같으니, 그 이변(異變)의 작지 않음과 응보(應報)의 상서롭지 않음은 미루어 알 수 있는 바입니다. 아아! 재이(災異)의 일어남은 국가에 대대로 있었는데, 만약 혹시라도 변고(變故)에 익숙해져 안락하게 지낸다면 화패(禍敗)가 뒤따라 올 것이며, 진실로 재이(災異)를 만나서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한다면, 화(禍)가 변하여 복(福)이 될 것입니다. 반성하고 수양하는 도리는 또한 본말(本末)이 있는데, 군주의 한 마음이 근본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 몸을 삼가고 마음에 두고 잊지 않는 공부(功夫)를 더하시고, 위태롭고 미약할 때를 살펴서 분별하시어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을 모두 없애고 천리(天理)의 공정함을 온전하게 하되, 반드시 성실하게 하고 허위가 없게 한다면, 군음(群陰)이 물러가 숨고 구오(九五)310) 의 양덕(陽德)이 빛나게 되어서, 요순(堯舜) 시대처럼 태평한 세상이 넓게 열려, 상제(上帝)와 귀신(鬼神)이 그 거센 위엄을 거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홍수(洪水)가 거의 다스려져서 평안하게 되고, 돌고 있던 심성(心星)이 물러가 아름다움을 같이할 것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너그러운 비답(批答)을 내리고, 가상(嘉尙)하게 여겨 받아들였으며, 차본(箚本)은 궁중에 머물러 두었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9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註 290]
    동중서(董仲舒) : 전한(前漢) 무제(武帝) 시대의 학자.
  • [註 291]
    구양수(歐陽修) : 송(宋)나라의 학자.
  • [註 292]
    육궁(六宮) : 후(后)·비(妃)·부인(夫人)·빈(嬪)·세부(世婦)·여어(女御)의 임금이 거느리는 여섯 계급의 궁녀.
  • [註 293]
    격고(擊鼓) : 거둥 때에 원통한 일을 임금에게 상소하기 위하여 북을 쳐서 하문(下問)을 기다림.
  • [註 294]
    북시(北寺) : 환관.
  • [註 295]
    이상(履霜)의 경계 : 《주역(周易)》 곤괘(坤卦) 초육(初六)의, "서리가 내리면 굳은 얼음이 얼 것이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여, 그 조짐을 보고 앞일을 경계하여 경고하게 하는 것.
  • [註 296]
    갑술년 : 1694 숙종 20년.
  • [註 297]
    쾌괘(夬卦) : 소인은 궁하고 군자는 성한 상.
  • [註 298]
    구괘(姤卦) : 음기가 비로소 나타나 성한 상.
  • [註 299]
    타이(朶頤) : 턱을 움직인다는 뜻으로 권세를 탐내는 모양.
  • [註 300]
    췌마(揣摩) : 자기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림.
  • [註 301]
    이시(羸豕)의 상(象) : 《주역(周易)》 구괘(姤卦) 초육(初六)에, "파리한 돼지가 뛸려고 망설인다"라고 하여, 음기(陰氣)가 나타나려고 하는 상(象)을 말함.
  • [註 302]
    금니(金柅)의 의(義) : 금니(金柅)란 수레를 정지시키기 위하여 쇠로 만든 것으로써, 《주역(周易)》 구괘(姤卦) 초육(初六)에, "금니에 맨다"라 하고, 그 주(注)에, "쇠는 굳세고 단단한 물건이고, 고동목은 수레를 정지시키는 물건이다"라고 하여, 음기(陰氣)가 나타남을 억제한다는 뜻임.
  • [註 303]
    낙중(洛中) : 서울.
  • [註 304]
    을해년 : 1695 숙종 21년.
  • [註 305]
    병자년 : 1696 숙종 22년.
  • [註 306]
    읍치(邑治) : 고을의 치소(治所)가 있는 곳.
  • [註 307]
    녹림(綠林) : 후한(後漢) 말기의 왕망(王莽) 때 왕광(王匡)·왕봉(王鳳) 등이 백성을 모아 녹림산(綠林山)을 근거지로 하여 도둑질하며 관군(官軍)에 대항하였던 것을 말함.
  • [註 308]
    황건(黃巾) : 후한(後漢) 말기에 장각(張角)을 수령으로 일어난 난당(亂黨). 황건(黃巾)을 썼으므로,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음.
  • [註 309]
    구징(咎徵) : 천벌(天罰)의 징조.
  • [註 310]
    구오(九五) : 구(九)는 《주역(周易)》에서 양(陽)의 수. 오(五)는 괘(卦)의 오효(五爻)로 즉 밑에서 세어 다섯 번째의 양효(陽爻).

○朔庚戌/副提學金鎭圭、校理李觀命、修撰李坦上箚曰:

六月以後, 淫霖作害, 都城街路, 水波橫流, 郊坰近地, 舟楫通行, 田疇淹汨, 禾苗蕩柝, 最可傷惻者, 屋廬摧塌, 民生墊溺, 塚墓崩頹, 屍柩顚覆。 此不啻詩人所云百川沸騰而已也。 眞德秀之論水災, 引蕫仲舒(歐陽脩)〔歐陽修〕 之言, 以水爲陰之災, 而條列時政之失曰: "宮庭嚴密之地, 左右褻近之私, 陰也, 內而奸邪小人, 外而夷狄盜賊, 亦陰也。" 仍又釋之曰: "人君秉至陽之德, 以御衆陰, 故主道宣明, 陽暢陰伏。 嗚呼! 我殿下, 未嘗有聲色之娛、遊讌之樂, 則宮庭之陰, 非所可憂也。 然而嬪御之有名號者, 比浸增加。 況今壼儀旣缺, 陰敎不宣, 則六宮之間, 其果能無盛色之譏、恃恩之慮否? 此固非外臣所敢知, 而以其顯著者論之, 第宅列於街巷, 庄田遍於州縣, 以致府儲將竭, 民怨朋興, 臣等區區過慮, 亦安敢自已也? 嗚呼! 本朝於閹寺, 未嘗假以事權, 而近日縱恣之漸萌焉。 臺官欲究, 而乃敢擊皷冒訟, 欲藉北寺之私恩, 以抗之公法。 且朝紳秪肅, 事體甚重, 而傳命黃門, 掩置不下, 此不但輕蔑朝紳, 亦所以慢侮君命也。 然則今玆縱恣之習, 豈不爲履霜之戒哉? 嗚呼! 甲戌以後, 凡諸奸孽之斁倫悖義, 病國戕賢者, 誅責斥出, 今已殆盡, 而陰陽之序, 《夬》極爲《姤》。 蓋小人者, 雖在衰微, 而圖利竊權之念, 常翹然于中。 彼一番之人, 懷次骨之怨, 蓄朶頣之慾, 八九年間, 其所偵伺闚闖者, 往而益甚。 吳始復之奸謀、李鳳徵之邪疏, 雖未見售, 而繼此而經營揣摩者, 必不但已。 羸豕之象已兆, 而金柅之義不講, 初六之陰, 幾何而不浸長而漸盛耶? 嗚呼! 比來島夷之狡詐益甚, 頃於新銀之行用, 館宇之修改, 可見其輕視我國之狀, 而譯舌之徒, 與之締結, 公肆欺蔽。 且聞洛中富賈、萊府奸戌, 擧皆資彼貨賂, 爲彼腹心, 凡我大小機事, 潛通暗漏, 此已寒心, 而東海之水勢變改, 魚族移遷, 危徵異兆, 不待智者, 類能言之, 蒿目之憂, 恐不爲過也。 嗚呼! 一自乙、丙飢荒, 所在竊發, 小亦數十, 大則過百, 至有殺越人命於邑治, 簒奪死囚於牢狴, 此不可以鼠竊狗偸等閑視也。 若謂以無能爲, 而不爲之深備, 則綠林黃巾之變, 安知不起於今耶? 惟此水災之孔慘, 咎徵之可憂也, 旣如彼, 則其變異之非細, 徵應之不祥, 可推而見也。 嗚呼! 災異之作, 國家代有, 而若或玩變而逸豫, 則禍敗隨至, 苟能遇災而修省, 則轉禍爲福。 修省之道, 亦有本末, 人主之一心, 本也。 欲望殿下, 克加操存之功, 審辨危微之際, 盡其人慾之私, 全其天理之公, 必誠必實, 無虛無僞, 群陰退伏, 而九五之陽德光明, 堯天舜日, 廓然開霽, 上帝、鬼神, 收其疾威。 庶幾與浲水之治平, 守心之退舍, 匹美齊休, 可不懋哉?

上優批嘉納, 箚本留中。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9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