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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6권, 숙종 28년 4월 4일 을묘 2번째기사 1702년 청 강희(康熙) 41년

고령의 유학 정재송 등이 군정의 폐단에 대해 상소하다

고령(高靈)의 유학(幼學) 정재송(鄭載松) 등이 상소하기를,

"고령은 일개 작은 고을인데 군액(軍額)의 많음이 큰 고을과 같아서 한 사람이 두 세 가지 역(役)을 해야 하고, 황구 첨정(黃口簽丁)108) 과 백골 징포(白骨徵布)의 폐단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수년 전에 어사(御史)가 자세히 진달함으로 인하여 본도(本道)에 명하여 인구를 조사 보고하였는데, 군정(軍丁)은 실제 인구가 1천 4백 57명이었는데도 군액이 1천 8백 66명이었습니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역사(役事)할 숫자가 도리어 인구보다 많습니다. 비국(備局)에서 본읍(本邑)의 형세를 보아 변통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도내(道內) 각 고을의 민호(民戶)가 조금 여유있는 곳에다 각각 한두 명을 분정(分定)하여 평균으로 역(役)에 응하도록 하자는 뜻으로 계품하여, 관문(關文)109) 을 돌린 지가 지금 이미 3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거행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백성들이 지금까지 실제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므로, 온 경내(境內)가 시끄러워 마치 솥의 물이 끓는 듯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다시 성명(成命)을 신명(申明)하여 즉시 거행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상소의 말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하라."

하고는, 이어 임금이 하교하기를,

"근래에 조정의 명령을 외방의 관리(官吏)가 일체 내버려 두고 거행(擧行)하지 않으니, 일이 한심하게 된 지 실로 이미 오래이다. 이제 고령의 유학 정재송(鄭載松) 등의 상소를 보니, 본현(本縣)의 군액(郡額)을 변통해 달라는 일이었는데, 비국(備局)에서 복계(覆啓)하여 회답을 본도에 내려 보낸 지가 지금 이미 3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거행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이번의 변통은 백성들의 원망과 관계되는 것인데, 도신(道臣)110) 과 수령(守令)이 덕의(德意)를 본받지 않고 이처럼 폐각(廢閣)하니, 조광기(趙光奇)가 당(唐)나라 덕종(德宗)에게 고한 것111) 에 거의 가깝지 않겠는가? 이런 일을 그냥 두면 조정의 명령이 행해질 때가 없고, 백성들의 원망이 풀어질 때가 없을 것이니, 마땅히 별도로 논책(論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한두 고을의 일이 아니어서 영송(迎送)하는 폐단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해당 수령을 아울러 우선 종중 추고(從重推考)하고, 감사(監司) 역시 종중 추고(從重推考)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36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7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司法) / 군사-군역(軍役)

  • [註 108]
    황구 첨정(黃口簽丁) : 어린아이를 군적(軍籍)에 올리는 일.
  • [註 109]
    관문(關文) : 공문(公文).
  • [註 110]
    도신(道臣) : 관찰사.
  • [註 111]
    조광기(趙光奇)가 당(唐)나라덕종(德宗)에게 고한 것 : 조광기(趙光奇)는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 사람. 덕종이 하루는 사냥을 나가 백성 조광기의 집에 들어가 "살기가 편안한가?" 물으니, 조광기는 "조령(詔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에 두 가지 세(稅)이외에는 다른 요역(徭役)을 없앤다고 하더니, 지금 세금 외에 강제로 빼앗아가는 것이 세금보다 더 많습니다.……매번 조서를 내려 백성을 돌보려 한다지만 그것은 한갓 공문(空文)에 불과합니다." 하였다는 고사(故事). 《통감절요(通鑑節要)》 덕종(德宗) 하(下)에 보임.

高靈幼學鄭載松等上疏曰:

"高靈一小邑, 而軍額之多, 與大邑同, 一身兩三役, 黃口簽丁、白骨徵布之弊, 極矣。 數年前, 因御史細陳, 命本道査報民口、軍丁, 則實口一千四百五十七名, 而軍額一千八百六十六名。 以此觀之, 則事役之數, 反加於民口。 備局以本邑形勢, 不可不變通, 道內各邑民戶稍優處, 各以一二名分定, 以爲平均應役之意, 啓稟行關, 今已三年, 而尙無擧行之事。 冤民至今未蒙實惠, 闔境嗷嗷, 如在沸鼎。 伏乞更申成命, 卽爲擧行。

答曰: "疏辭令廟堂稟處。" 上仍下敎曰: "近來朝家命令, 外方官吏, 一切抛棄, 不爲擧行, 事之寒心, 固已久矣。 今觀高靈幼學鄭載松等上疏, 則以本縣軍額變通事, 備局覆啓之回下於本道者, 今已三年, 而尙不擧行云。 今此變通, 係是民怨, 而道臣及守令, 不體德意, 如是廢閣, 則不幾近於趙光奇之告于 德宗者乎? 此而置之, 朝令無時可行, 民怨無時可解。 所當別樣論責, 而此非一二邑之事, 則迎送之弊, 亦不可不念, 當該守令, 竝姑先從重推考, 監司亦爲從重推考。"


  • 【태백산사고본】 42책 36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7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司法) / 군사-군역(軍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