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 김치룡 등이 장씨의 발인 전에 왕세자의 임곡을 허락하기를 청하다
보덕(輔德) 김치룡(金致龍), 문학(文學) 이언경(李彦經), 겸설서(兼說書) 윤지화(尹志和) 등이 상소하여, 장씨(張氏)를 발인하여 장례치르기 전에 왕세자의 임곡(臨哭)을 허락하기를 청하였는데, 거기에 말하기를,
"왕장(王章)이 지극히 엄하여 사은(私恩)은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하나, 유명(幽明)이 결별(訣別)하는 즈음을 당하여 끝내 한 번이라도 상차(喪次)에 임하여 조금이나마 정을 펴지 못한다면, 그것이 성상의 석류(錫類)037) 하는 인(仁)에 있어서 어찌 측은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곳이 없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일찍이 단행(斷行)하는 것은 공법(公法)이며, 세자가 차마 끊지 못하는 것은 사정(私情)입니다. 의(義)로써 은혜를 가리어 숨기는 것이 비록 바꿀 수 없는 법이지마는, 정을 인연하여 예(禮)를 베푸는 것도 또한 권도(權道)의 방법입니다. 신들의 생각으로는 이 한 절차는 범연하게 지나쳐서는 안될 듯 싶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해조(該曹)에서 품처(稟處)하라 명하였다. 예조(禮曹)에서 대신들과 의논하기를 청하였는데, 영의정 서문중(徐文重)은 말하기를,
"지극한 사랑이 있는 곳엔 정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명을 달리하는 즈음에 임결(臨訣)하는 절차가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번에 왕세자께서 몸소 발인하기 전에 나가서 사정(私情)을 펴게 하는 것은 공법(公法)에 크게 해됨이 없을 듯 합니다."
하고, 영부사(領府事) 윤지선(尹趾善)은 말하기를,
"왕세자와 장씨(張氏) 사이는 비록 의리로써 은혜를 가리어 숨겨야 하지만, 천륜에 속하는 친(親)이어서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 정이 있습니다. 만약 발인하기 전에 끝내 임곡(臨哭)하는 절차가 없게 되면 비단 목전(目前)의 은통(隱痛)038) 이 있을뿐만 아니라, 반드시 장래에 무궁한 한(恨)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생각건대, 어린 나이에 상(喪)을 당해서 혈기(血氣)가 완전하지 못한데, 가서 보는 즈음에 슬픔이 절도를 지나치면 혹시 놀라 상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신민(臣民)들의 근심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됩니다."
하고, 좌의정 이세백은 말하기를,
"왕세자의 정리(情理)를 말하자면 의당 그만둘 수가 없는 듯한데, 그러나 다만 이 변례(變禮)는 경솔히 의논할 수가 없습니다. 임상(臨喪)하여 혹 상하게 될까 염려하는 것이야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도 또한 한두 대신이 헌의(獻議)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고 우의정 신완(申琓)은 말하기를,
"지금 이 장씨는 왕세자에게 비록 사친(私親)이기는 하지만, 길러 준 은혜로 보아서는 갑자기 끊을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상(初喪) 때와 발인 때에 망곡(望哭)하는 절차를 해조(該曹)에서 계품하여 마련한 것입니다. 위항(委巷)039) 에 내려가서 몸소 상차(喪次)에 임하는 것은 비록 정리상 그만둘 수 없는 데서 나왔다 하겠으나, 바야흐로 어린 나이에 상(喪)을 당해 혈기가 완전하지 못하니, 비단 놀라서 상할 걱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이러한 변례(變禮)의 절차는 만약 근거할 만한 예(禮)가 있지 않으면 천박한 소견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기를,
"영상(領相)의 의논에 의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3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72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註 037]
○己酉/輔德金致龍、文學李彦經、兼說書尹志和等上疏, 請於張氏靷葬前, 許令王世子臨哭, 有曰:
王章至嚴, 私恩難顧, 而當幽明訣別之際, 終不得一臨喪次, 少伸情事, 則其在聖上錫類之仁, 豈非惻然動念處耶? 噫! 殿下之所嘗斷行者, 公法也, 世子之不忍遽絶者, 私情也。 以義掩恩, 雖是不易之典, 緣情設禮, 亦有處權之道。 臣等竊恐於此一節, 不宜泛然放過也。
上命該曹稟處。 禮曹請議大臣, 領議政徐文重以爲: "至愛所在, 情無所不盡。 幽明之際, 不可無臨訣之節。 今此王世子躬臨於發靷之前, 以伸私情, 似無大害於公法。" 領府事尹趾善以爲: "王世子於張氏, 雖曰以義掩恩, 天屬之親, 自有不泯之情。 若於發靷前, 終無臨哭之節, 則不但爲目前隱痛, 亦必貽將來無窮之恨, 而第念沖年居憂, 氣血未完, 臨視之際, 悲哀過節, 如或有驚動致傷之患, 則臣民之憂, 有不可勝言。" 左議政李世白以爲: "以王世子情理言之, 則宜若有不容已者, 而第此變禮之難於輕議。 臨喪之慮或致傷, 臣之愚目見, 亦何異於一二大臣之所獻議者乎?" 右議政申琓以爲: "今此張氏於王世子, 雖是私親, 惟其顧復之恩, 有不忍遽絶者。 故初喪及靷葬時, 望哭節次, 該曹所以啓稟磨鍊者也。 至於降屈委巷, 躬臨喪次, 雖出於情理之不可已者, 而方以沖年居憂, 血氣未完, 不但恐有驚動致傷之患, 且如此變節, 若非有可據之禮, 則不可以膚淺之見, 有所斷定。" 上命依領相議施行。
- 【태백산사고본】 42책 3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72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