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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6권, 숙종 28년 1월 15일 정유 2번째기사 1702년 청 강희(康熙) 41년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여, 남한산성의 군량미 비축 등의 일을 논의하다

대신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신완(申琓)이 아뢰기를,

"근년에 사나운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 죽이는 환란이 팔로(八路)에 두루 미쳐 있는데, 기전(畿甸) 근처에 그런 환란이 더욱 심합니다. 청컨대, 삼군문(三軍門)026) 의 포수(砲手)를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잡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먼저 더욱 심한 곳을 물어서 내려 보내라."

하였다. 또 청하기를,

"전(前) 참판(參判) 송창(宋昌)효종(孝宗) 때 한림(翰林)인데, 나이가 지금 70세이니, 가자(加資)하소서."

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공조 참판 이인엽(李寅燁)이 아뢰기를,

"남한산성(南漢山城)의 군량(軍糧)은 흉년을 겪으면서부터 〈백성이〉 죄다 흩어져 받아들이지 못하여, 지금 현재 대소미(大小米)027) 가 겨우 5천여 석(石)이며, 피곡(皮穀)·잡곡(雜穀)도 겨우 수만여 석으로, 보장(保障)해야 할 중요한 땅의 군량이 모자라니, 참으로 매우 염려됩니다. 삼남(三南)지방에서 거두어들인 쌀이 그 지용(支用)을 계산하면 나머지가 2만 석이니 남한산성으로 갈라 보내야 하고, 강도(江都)028) 의 군량도 전의 비축량에 비하면 또한 매우 감소되었으니, 남은 쌀 8천 석을 또한 마땅히 옮겨 보내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겼다. 집의(執義) 윤홍리(尹弘离)·정언(正言) 김상직(金相稷)이 3대신에 대한 합계(合啓)를 거듭 밝히고, 다시 소회를 누누이 쟁집(爭執)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당초에 대신이 잘 처리하지 못했는데, 합계(合啓)의 조어(措語)가 과중(過重)한 곳이 없지 않다. ‘이해(利害)를 바랐다.’는 등의 말은 바로 정외(情外)이기 때문에 다만 한때의 일을 그르친 것으로 참작해서 파직(罷職)한 것이다. 장희재(張希載)업동(業同)은 다 같이 용서할 수 없는 적(賊)인데도 옥사(獄事)를 느슨하게 해 용서하여, 마침내는 지난 겨울에 망극한 변을 불러 일으켰으니, 대계(臺啓)가 참으로 대간(臺諫)의 체모를 얻었다. 양 대신(兩大臣)029) 이 결코 그 밖의 딴마음이 없음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나, 한결같이 서로 버티는 것은 미안(未安)할 듯하니, 아울러 삭출(削黜)하라. 윤지완(尹趾完)은 한때 의견을 잘못 들여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니, 파직하는 것은 지나친 듯하다."

하니, 김상직이 또 본원(本院)의 전계(前啓)를 진달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윤덕준(尹德駿)의 상소 가운데, ‘하필이면 친국(親鞫)해야 하는가?’라고 말하였는데, 친국은 오늘 처음 연 일이 아니다. 또 지난 겨울 옥사(獄事)는 밖에서 상변(上變)한 것이 아니라 대내(大內)에서 나온 것이며, 역시 외신(外臣)에게서 부쳐온 문서도 없었으니, 어떻게 그 단서(端緖)를 찾아서 알았겠는가? 윤덕준이 이런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인데도 몸소 대신(臺臣)으로 있으면서 이러한 하지 못할 말을 창도(唱道)하여 뒷날 사특한 논의의 발단(發端)을 삼으려고 하였다. 이를 그냥 두면 후일의 폐해가 그지없을 것이니, 윤덕준은 파직하라. 유항(柳沆)의 일은, 대의(大意)는 좋지만 원소(原疏)를 이미 올리지 않았고, 대신(臺臣)도 또한 친히 보지 못하였으니, 지금에 이르러 잡아 오면 뒷폐단에 관계됨이 있다. 지금은 우선 그냥 두겠으나, 흉역(兇逆)이 복주(伏誅)된 지가 오래 되지 않았는데, 번갈아 서로 구해(救解)하여 심지어 이를 무옥(誣獄)이라 한다. 역적을 두둔하는 것도 또한 하나의 역적이니, 이후부터는 만일 이런 의논을 계속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역률(逆律)로써 논죄할 것이니, 정식(定式)으로 분부하라."

하니, 김상직이 또 아뢰기를,

"유항의 상소한 말이 아주 괴망(怪妄)하니, 후사(喉司)030) 의 신하가 마땅히 말을 만들어 계품하여 처분을 기다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소(疏)를 베낀 것이 정(精)하지 못하고 성자(姓字)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를 붙여 제멋대로 물리쳤습니다. 청컨대, 해당 승지(承旨)를 종중 추고(從重推考)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3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7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변란-정변(政變) / 과학-생물(生物)

  • [註 026]
    삼군문(三軍門) : 훈련 도감(訓鍊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세 군문을 이르던 말. 삼영문(三營門).
  • [註 027]
    대소미(大小米) : 쌀과 좁쌀.
  • [註 028]
    강도(江都) : 강화.
  • [註 029]
    양 대신(兩大臣) : 남구만(南九萬)·유상운(柳尙運).
  • [註 030]
    후사(喉司) : 승정원.

○引見大臣、備局諸臣。 右議政申琓, 以近年惡虎囕殺人命之患, 遍於八路, 而畿甸近處, 此患尤甚。 請發遣三軍門砲手, 使之捕捉, 上曰: "先問其尤甚處發送。" 又請前參判宋昌加資, 以孝廟朝翰林, 而年今七十也。 上許之。 工曹參判李寅燁曰: "南漢軍餉, 自經荐飢, 散盡未捧, 卽今見在大小米, 僅五千餘石, 皮、雜穀纔數萬餘石。 保障重地, 餉穀匱缺, 誠甚可慮。 三南收米, 計其支用, 所餘二萬石, 劃送南漢, 而江都軍餉, 比前所儲, 亦甚減少, 餘米八千石, 亦宜移送。" 上可之。 執義尹弘离、正言金相稷, 申三大臣合啓, 復以所懷, 縷縷爭執, 上曰: "當初大臣不能善處, 而合啓措語, 不無過重之處。 顧瞻利害等說, 乃是情外, 故只以一時誤事, 參酌罷職矣。 希載業同, 俱是罔赦之賊, 而緩獄容貸, 竟致前冬罔極之變, 臺啓誠得臺體。 兩大臣之斷無他腸, 予旣知之, 而一向相持, 似爲未安, 竝削黜。 尹趾完則不過一時意見誤入之致, 罷職似過矣。" 相稷又陳本院前啓, 上曰: "尹德駿疏中, 以何必親鞫爲言, 親鞫非今日創開之事。 宜前冬獄事, 旣非自外上變, 出自內間, 亦無文書付之外臣, 何以鉤得其端緖乎? 德駿非不知此, 而身爲臺臣, 倡此無謂之說, 欲爲他日邪論之嚆矢。 此而置之, 後弊無窮, 尹德駿罷職。 柳沆事, 大意則好, 而原疏旣未登徹, 臺臣亦未親見, 到今拿致, 有關後弊。 今姑置之, 而兇逆之伏法未久, 迭相救解, 至謂之誣獄。 護逆, 亦一逆也。 今後如有繼起此論者, 當論以逆律, 定式分付。" 相稷又言: "柳沆疏語, 極其怪妄, 則喉司之臣, 所當措辭啓稟, 以俟處分, 而反諉之於寫疏之不精, 姓字之不書, 任自退却。 請當該承旨從重推考。"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42책 3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7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군사-관방(關防) / 군사-병참(兵站) / 변란-정변(政變) / 과학-생물(生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