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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5권, 숙종 27년 11월 25일 무신 5번째기사 1701년 청 강희(康熙) 40년

장씨의 아비를 연좌시킴이 부당하다고 예조 참의 홍수주가 상소하니 윤허하다

예조 참의(禮曹參議) 홍수주(洪受疇)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왕세자께서 어린 나이로 갑자기 변고를 당하셔서 지려(志慮)가 흔들리기 쉽고, 신기(神氣)를 빼앗기기 쉬우니, 이러한 때에는 보양(輔養)을 더욱 조금이라도 늦출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인산(因山)의 예(禮)가 박두하였으니, 진실로 평일에 강경(講經)을 권고하던 것과 같이 할 수는 없으나, 입직한 궁료(宮僚)에게 자주 인접(引接)하도록 하셔서 혹 상례(喪禮)를 토론하거나 혹 선언(善言)을 개진하게 한다면, 거의 심지(心志)를 힘써 억제하고 덕성(德性)을 도양(導養)하게 될 것이니, 환관(宦官)·궁인(宮人)과 함께 있는 데 비하여 어찌 보익되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난적(亂賊)이 어느 시대엔들 없었겠습니까마는, 오늘의 요악함과 같은 적은 있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건대, 저 적(賊) 이항(李杭)607) 이 왕실의 지친(至親)으로서 장희재와 결탁하여 언찰(諺札)을 궁금(宮禁)에 유입(流入)하기에 이르렀는데, 지난날 전하께서 궁금을 십분 엄절(嚴截)하게 하셔서, 안의 말이 나가지 않고 밖의 말이 들어오지 않게 함으로써 하늘과 땅이 서로 멀리 떨어진 것 같게 하였더라면, 비록 장희재 같은 무리 10명이 있어 갖가지로 경영한다 하더라도, 어찌 간사한 꾀를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전하께서 또한 마땅히 두렵게 생각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이제 요악한 난적(亂賊)을 요령(腰領)608) 으로 처단하여 모두 그 죄를 받게 하였으니, 반드시 법망(法網)에서 빠진 여얼(餘孽)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사변은 끝이 없고 말세의 인심은 헤아리기 어려우니,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미 요적(妖賊)을 토죄(討罪)하였다 하여 기뻐하지 마시고, 궁금이 이미 맑아졌다 하여 편안히 여기지 마시고, 더욱 수신 제가(修身齊家)의 덕화(德化)를 힘쓰시어 청명(淸明)한 다스림을 크게 밝히소서. 이제 장씨(張氏)를 장사지낼 산을 정밀하게 가리되, 역촌(驛村)이나 인가(人家)를 논할 것 없이 길지(吉地)를 점유(占有)케 하셨는데, 이는 실로 피차(彼此)를 편안하게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전하께서 세자를 위하는 원대한 심려를 누군들 흠앙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듣건대, 장씨의 아비가 기사년609) 이전에 작고(作故)한 지 이미 오래 되었다면, 그 자식 때문에 연루(連累)시키는 것은 마땅하지 못한 듯하며, 그 친속(親屬)을 논한다면 춘궁(春宮)에게 있어 지극히 가깝습니다. 이제 듣건대, 그 목주(木主)610) 를 적몰(籍沒)한 집 곳간 속에 버려두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장씨를 위하여 산을 가리는 의리(義理)를 미루어 본다면, 이 또한 구처(區處)하는 도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소사(疏辭)를 어찌 마음에 두지 않겠는가? 아래 조항의 일은 해조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그 후 예조에서 아뢰기를,

"장씨의 아비 장형(張炯)이 이미 기사년 전에 작고하였다면, 연루시키는 바가 있음은 마땅하지 못하며, 목주를 버려두는 것이 마땅하지 못하였다는 것도 실로 소(疏) 가운데 진달한 바와 같으니, 본조(本曹)에서 부탁할 만한 사람을 정하여 주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장가(張家)의 제족(諸族)을 조사해 보았더니, 장형의 오촌손(五寸孫) 항렬(行列)은 혹은 이미 죽었거나, 혹은 중죄수[重囚]로 있거나, 혹은 죄를 입어 귀양갔고, 다만 칠촌 증손(七寸曾孫)의 항렬에 몇 사람이 있으나, 모두 미처 장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장형의 사위 김지중(金志重) 부처(夫妻)와 그 아들이 바야흐로 연고 없이 생존해 있으니, 장형의 목주를 우선 김지중에게 내어 주고, 장희재에게 적몰(籍沒)한 가산(家産) 중에서 가사(家舍)와 전민(田民)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참작해서 김지중에게 제급(除給)하여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가, 장형의 칠촌 증손 항렬 중에서 장성하기를 기다려 봉사(奉祀)할 만한 자가 있으면, 김지중으로 하여금 본조(本曹)에 정고(呈告)하여 인가(人家)에서 시양(侍養)하는 예(例)에 의거하여 그 목주와 제급(除給)한 가사(家舍)·전민을 옮겨 주라는 뜻으로 아울러 분부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판하(判下)하기를,

"윤허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35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64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풍속-예속(禮俗) / 가족(家族)

  • [註 607]
    이항(李杭) : 동평군(東平君).
  • [註 608]
    요령(腰領) : 허리나 목을 자르는 형벌.
  • [註 609]
    기사년 : 1689 숙종 5년.
  • [註 610]
    목주(木主) : 신주(神主).

○禮曹參議洪受疇上疏。 略曰:

王世子以沖弱之年, 遽遭變故, 志慮易撓, 神氣易奪, 此時輔養, 尤不容少緩。 顧今因山禮迫, 固不可如平日之勸講, 宮僚之在直者, 頻賜引接, 或討論喪禮, 或開陳善言, 庶幾勉抑心志, 導養德性, 其比宦官、宮人之與處, 豈不有所補益乎? 噫! 亂賊何代無之, 未有如今日之妖惡, 而惟彼賊, 以王室至親, 締結希載, 至以諺札, 流入宮禁。 向使殿下之宮禁, 十分嚴截, 內言不出, 外言不入, 逈然如天地之相隔, 則雖有希載十輩, 百般營爲, 安得逞其奸謀乎? 此殿下亦宜惕慮處也。 卽今妖腰亂領, 成服其辜, 必無網漏之餘孽, 而天下之事變無窮, 末世之人心難測。 願殿下勿以妖賊之已討爲喜, 勿以宮禁之已淸爲安, 益懋修齊之化, 丕闡淸明之治。 今此張氏所葬之山, 使之極擇, 無論驛村人家, 務占吉地, 此蓋出於彼安此安之意。 殿下爲世子遠慮, 孰不欽仰? 第聞張氏之父, 己巳以前, 作故已久, 則似不當以其子連累, 而論其親屬, 則在春宮爲至近。 今聞其木主, 棄置於籍沒家庫中云。 以今日爲張氏擇山之義推之, 此亦不可無區處之道。

答曰: "疏辭可不留心焉? 下款事, 令該曹稟處。" 其後禮曹啓曰: "張氏之父, 旣於己巳前作故, 則不當有所連累, 木主不宜棄置云者, 實如疏內所陳。 自本曹似當定給其可付之人, 而推出張家諸族, 則之五寸孫行, 或已死亡, 或在重囚, 或被罪配, 只有七寸曾孫行數人, 而皆未及長成。 張烱之女壻金志重夫妻及其子, 方無故生存, 之木主, 姑爲出付志重處, 而希載家籍沒中家舍、田民, 令該曹參酌除出, 以給於志重, 使之不絶其祀, 之七寸曾孫行中, 待其長成, 如有可以奉祀者, 則令志重, 呈于本曹, 依人家侍養例, 移付其木主與所除給家舍、田民之意, 竝爲分付何如?" 判曰: "依允。"


  • 【태백산사고본】 41책 35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64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풍속-예속(禮俗) / 가족(家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