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유명웅 등이 남구만·유상운을 파직시키라고 상소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집의 유명웅(兪命雄), 장령 윤헌주(尹憲柱), 지평 이동언(李東彦), 사간 어사휘(魚史徽), 헌납 윤홍리(尹弘离), 정언 황일하(黃一夏)·김재(金栽)가 아뢰기를,
"갑술년356) 에 중전을 복위한 일은 실로 천고에 거룩한 덕이 있으니, 기사년357) 의 통박(痛迫)한 일은 반드시 하나하나 거론할 것이 못됩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그 당시 나라의 권병(權柄)을 담당하였던 신하가 나라를 그르치고 화(禍)의 기틀을 만든 죄는, 신 등이 피를 뿌리듯 간을 쪼개듯 성토(聲討)하여 일국의 신민(臣民)들이 8년 동안 쌓아온 울분을 조금이라도 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 국적(國賊)인 장희재가 흉적(凶賊) 민암(閔黯)과 같은 불령(不逞)한 무리들과 결탁하여, 국모에게 망극한 화를 얽어 씌우려고 비밀리에 언문 서찰을 만들어 궁금(宮禁)에 몰래 내통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전대(前代)의 역사에서 보지 못하였던 일이며 신인(神人)이 함께 분노하는 바였으니, 전하께서 갑술년 국청(鞫廳)에서 밝히고 드러낸 것은 대개 이 때문이었습니다. 무릇 전하의 신자(臣子)가 되어서 국모로서 우리 곤전(坤殿)을 섬기는 자라면, 눈을 부릅뜨고 간담(肝膽)을 두근거리며 살점을 뜯어먹고 그 가죽을 벗겨서 깔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즉 남구만(南九萬)은 여러 조정을 두루 섬기면서 삼사(三事)의 우두머리를 지냈으니, 《춘추(春秋)》의 정의(正義)를 들어보지 못한 바도 아닐 것이며 조정의 대법(大法)을 알지 못하는 바도 아닐 터인데, 사사로운 뜻은 화복(禍福)에 치우치게 집착하고 사악한 마음은 의리에 배치되어, 억지로 의친(議親)358) 의 법을 끌어다 천청(天聽)을 현란시키고 먼 장래를 깊이 염려한다고 핑계대며 여러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고 하였습니다. ‘장희재(張希載)가 법대로 복주(伏誅)되면 희빈이 불안해지고, 희빈이 불안해지면 세자가 불안해지며, 세자가 불안해지면 종사(宗社)가 불안해진다.’는 따위의 말은 전적으로 장희재를 날개로 덮어주고 군부(君父)를 현혹시키려는 계략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 하나의 보잘것 없는 흉얼(凶孽)이 무슨 종사의 안위(安危)에 관계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되지도 않는 말을 줏어모아 눈치나 보는 태도를 재빨리 지어내어 흉적을 굽혀 비호하되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하여, 마침내 크나큰 대죄인(大罪人)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 사이에 목숨을 부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륜(彛倫)이 역패(斁敗)하는 지경에 떨어져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되고 사람이 사람꼴이 아니된 지 거의 12년에 이르렀으니, 남구만이 강상을 파괴하고 국법을 어지럽힌 죄는 통탄해 마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이후로 흉악한 역모가 그치지 아니하고 변괴가 백 가지로 나오니, 장희재의 처자들과 당류(黨類)들이 서울에 편안히 있으면서 귀신을 공양할 밑천을 가지고 나라를 원망하는 무리들과 결탁하여 밤낮으로 경영한 것이 곤위(壼位)를 몰래 엿보며 왕가를 좀먹고자 하는 기미가 아님이 없었는데, 이번의 요망스러운 고독(蠱毒)의 화(禍)가 과연 궁액(宮掖)의 지밀(至密)한 곳에서 일어나 성모(聖母)로 하여금 명부(冥府) 가운데서 한을 머금게 하고, 성상으로 하여금 목청(穆淸)359) 의 위에서 놀라고 근심하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우리 춘궁(春宮)께서 이제 막 엄청난 일을 당하였는데, 또 이처럼 놀랍고 기막힌 변고를 당하였으니, 신민들의 울분과 국가의 불행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 원인을 캐본다면, 남구만의 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아! 지난번에 장희재를 일찍 나라의 법대로 복주하게 하여 그 근원을 없애버리기를 한결같이 조정의 법전과 《춘추》의 대의(大義)대로 하였더라면, 허리를 베고 목을 잘라버려야 마땅할 요망한 난적들이 또한 어찌 감히 흉악한 계책을 마음대로 부려서 궁금(宮禁)의 변고(變故)를 오늘날처럼 참혹하게 빚어내었겠습니까? 지금 나라의 기강이 비로소 떨쳐지고 천토(天討)가 바야흐로 행해져 역적의 당류들이 모두 법대로 복주되었으며, 장희재도 또한 장차 율(律)대로 처형될 것이니, 남구만은 역적의 괴수를 비호한 죄인으로 왕법(王法)에서 요행스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영부사(領府事) 남구만을 우선 먼저 파직시키소서.
업동(業同)의 고옥(蠱獄)의 변고는 실로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대개 곤위가 광복(光復)된 뒤로부터 나라를 원망하는 귀역(鬼蜮)360) 의 당류들이 장희재의 집에 몰려 들어 몰래 궁액(宮掖)과 내통하여 국가를 어지럽게 하려고 모의하였습니다. 목우상(木偶像)을 가짜로 만들어 몰래 장가(張家)의 산소에 묻어 두고 자기편 사람을 사주해 상변(上變)하여 옥사를 일으킨 데 이르러서는 그 뜻을 두어 계책을 꾸민 바가 어찌 다만 조정에 화를 전가(轉嫁)하고 진신(搢紳)을 어육(魚肉)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만 그쳤겠습니까? 다행하게도 천일(天日)이 밝게 조림하시고 귀신이 옆에서 보살펴 주는 데에 힘입어 흉악한 정상과 간악한 형상이 이미 업동(業同)의 입에서 탄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청의 대신 유상운(柳尙運)의 무리들은 천총(天聰)을 가리고, 옥정(獄情)을 조작하여, 여러 적들이 혹 그 실정을 털어놓고자 하면 먼저 그 근본이 반드시 드러날 만한 단서를 막아버리고, 증거가 요긴한 공초에서 나오면 문득 그 증거로 끌어들인 사람들을 심문하지 말자는 의논을 주장하였습니다. 국청에 참여한 여러 신하들 가운데 혹 통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법을 고집하는 논의가 그 사이에 능히 없지도 않았으나, 급급히 청대(請對)하여 곧 ‘의심스런 죄는 오로지 가볍게 다스리며 끝까지 핵실(覈實)할 수 없다.’는 말로 앞장서서 영구(營救)하고 힘을 다해 저지해 마침내 업동을 완전히 석방하고 끝내는 국청을 파하게 되자, 다정스레 감사를 드리고 심지어 ‘감격한다.’고 일컫기도 하였습니다. 아! 죄악을 미워하는 본성을 사람마다 같이 타고났으니, 유상운이 지성으로 구해(救解)한 것이 어찌 그 본정(本情)이겠습니까? 대개 훗날 화복(禍福)의 기미를 돌아보고 자기 한 몸의 장구한 계책을 위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었는데, 흉악한 고독(蠱毒)의 남은 수단이 또 장희재의 집에서 나왔고, 궁금(宮禁)의 나인(內人)에게까지 미쳐 마침내 금일의 화를 조성하였으니, 《춘추》의 대의로써 논하건대 또한 어찌 유상운이 죄인의 괴수가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또 장희재가 언문 서찰로 국모를 모해하려고 한 죄가 갑술년 국청의 하교(下敎)에서 드러났는데도 ‘깊이 먼 장래를 생각한다[深長慮]’는 세 글자를 주창하여 근거없는 말로 너그러이 용서할 것을 시종 주장한 자는 곧 남구만입니다. 그 뒤 대간(臺諫)의 소장(疏章)과 유생(儒生)의 상소가 번갈아 서로 엄하게 배척하였으나, 당시에 유상운은 목을 움추리고 입을 다문채 한 마디도 그 죄를 책임지겠다고 말한 바가 없었으며, 녹위(祿位)는 여전하고 행동거지는 태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대행 왕비께서 승하하시어 온 나라 신민(臣民)들이 애통해 하는 날이 되자, 시골에 사는 유생의 이미 오래된 상소를 억지로 끌어다가 스스로 ‘깊이 먼 장래를 염려하는 의논을 신은 실로 힘써 주장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장희재의 죽음을 용서한 것이 정말로 자기의 손에서 나왔다면, 8년동안 어찌하여 혼자 몰래 참고 입을 다문 채 짐짓 참여하지 않은 체하였다가 지금에 와서야 갑자기 자수하여 은근히 자기가 떠맡았던 것인양 멀리 장래를 생각한다는 말을 빼앗아 취하며 현저하게 요행을 바라고 장래를 엿보려는 뜻을 가지는 것입니까? 식견이 있는 자들이 저으기 통분하며 길가는 사람도 비웃을 정도입니다. 공의(公議)가 있는 바라 죄를 성토(聲討)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니, 청컨대 판부사 유상운을 우선 파직시키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답하기를,
"윤허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35권 6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34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탄핵(彈劾) / 신분-천인(賤人) / 풍속-예속(禮俗)
- [註 356]갑술년 : 1694 숙종 20년.
- [註 357]
기사년 : 1689 숙종 15년.- [註 358]
의친(議親) : 팔의(八議)의 하나. 곧 임금의 단문 이상친(祖免以上親), 왕대비(王大妃)·대왕 대비(大王大妃)의 시마 이상친(緦麻以上親), 왕비(王妃)의 소공 이상친(小功以上親), 세자빈(世子賓)의 대공 이상친(大功以上親)을 말함. 범죄자를 처벌할 때에 형(刑)의 감면(減免)을 하였음.- [註 359]
목청(穆淸) : 하늘과 같이 높음을 비유한 것임.- [註 360]
귀역(鬼蜮) : 귀신과 물여우. 물여우가 모래를 입에 물고 있다가, 물에 비치는 사람의 그림자에 뿌리면 그 사람이 병에 걸리는데, 물여우는 귀신과 같이 그 형태를 볼 수 없다 함. 한편으로 음흉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이러한 뜻으로 쓰였음.○乙亥/執義兪命雄、掌令尹憲柱、持平李東彦、司諫魚史徽、獻納尹弘离、正言黃一夏ㆍ金栽啓曰: "甲戌敦復之擧, 實爲千古之盛德, 則己巳痛迫之事, 不必每每提論, 而第念伊時當國柄臣, 誤國基禍之罪, 臣等不得不沫血刳肝, 聲罪致討, 以爲少洩一國臣庶八載積鬱之憤焉。 嗚呼! 國賊希載, 締結凶黯不逞之徒, 敢構國母罔極之禍, 陰做諺札, 潛通宮禁, 此實前史之所未見, 神人之所共怒者。 殿下所以光明暴揚於甲戌鞫廳者, 蓋以此也。 凡爲殿下臣子, 母事我坤聖者, 莫不瞪目皷膽, 思欲食肉寢皮, 則南九萬歷事累朝, 首位三事, 《春秋》正義, 非不聞也, 祖宗大法, 非不知也, 而私意偏着於禍福, 邪心背馳於義理, 强引議親之法, 眩亂天聽, 託稱深遠之慮, 欲掩衆目, 至如希載伏法, 禧嬪不安, 禧嬪不安, 世子不安, 世子不安, 宗社不安等說, 全出於翼蔽希載, 誑惑君父之計。 噫嘻! 一幺麽凶孽, 何與於宗社之安危, 而湊合不成之說, 閃弄瞻顧之態, 曲護凶賊, 惟恐不及, 終使大憝, 偃息於覆載, 彝倫遂至於斁敗, 國不國人不人, 殆將一紀, 則九萬壞常亂法之罪, 可勝痛哉! 自此以後, 兇謀不戢, 變怪百出, 希載之妻孥黨援, 晏在京輦, 挾通神之資, 結怨國之徒, 日夜經營, 無非窺闖壼位, 蟊賊王家之機, 而今此妖蠱之毒禍, 果起於宮掖之密, 致令聖母, 飮恨於冥漠之中, 聖上驚憂於穆淸之上, 而況我春宮, 才罹巨創, 又遭此震薄之變, 臣民之憤痛、國家之不幸, 曷有其極? 究厥源頭, 莫非九萬之罪也。 噫! 向使希載, 早伏王誅, 鋤剗根株, 一如祖宗之典、春秋之義, 則妖腰亂領, 亦豈敢肆行胸臆, 而釀成宮禁之變, 如今日之慘哉? 目今王綱始振, 天討方行, 逆黨擧皆伏法, 希載亦將正律, 則九萬以護賊首罪之人, 不可倖逭王章。 請領府事南九萬姑先罷職。 業同蠱獄之變, 實前古所未聞。 蓋自坤位光復之後, 怨國鬼蜮之黨, 輻輳於希載之家, 潛通宮掖, 謀亂國家。 至於假造木偶之像, 密埋張家之山, 指嗾私人, 上變起獄, 其所用意設計, 豈但爲嫁禍朝廷, 魚肉搢紳而止哉? 幸賴天日孔昭, 鬼神傍臨, 凶情慝態, 已綻於業同之口, 而鞫廳大臣柳尙運輩, 掩蔽天聰, 幻弄獄情, 諸賊或欲輸情, 則先遮其根本必露之端, 證干出於緊招, 則輒主其援引勿問之議。 參鞫諸臣, 或有憤咈之人, 而執法之論, 不能有無於其間, 汲汲請對, 乃以罪疑惟輕、不可窮覈之說, 挺身營救, 竭力沮撓, 終至於全釋業同, 竟罷鞫廳而昵昵祝謝, 至稱感激。 噫嘻! 惡惡之性, 人所同賦。 尙運之至誠救解, 豈其本情然哉? 蓋出於顧他日禍福之機, 爲一身長遠之計, 而凶蠱餘手, 又出於希載之家, 至及於宮禁之內, 卒乃釀成今日之禍, 則論以《春秋》之義, 亦安得不以尙運爲之罪首也哉? 況且希載諺書, 謀害國母之罪, 發露於甲戌鞫廳下敎, 而倡出深長慮三字, 游辭曲貸, 終始主張者, 卽南九萬也。 其後臺章儒疏, 迭相嚴斥, 而當時尙運, 縮頸緘口, 無一言擔當其罪, 祿位如舊, 行止晏然, 及至我大行王妃昇遐之初, 擧國臣民攀擗之日, 强引鄕儒日久之疏, 自以爲深長慮之議, 臣實力主云。 夫希載貸死, 果出於自家之手, 則八載之間, 何獨隱忍含默, 佯若不與, 今乃猝然自首, 隱然自當, 攘取深慮之說, 顯有要覬之意耶? 有識竊痛, 行路嗤點。 公議所在, 不可無聲罪致討之擧, 請判府事柳尙運, 姑先罷職。" 答曰: "不允。"
- 【태백산사고본】 40책 35권 6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34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탄핵(彈劾) / 신분-천인(賤人) / 풍속-예속(禮俗)
- [註 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