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들의 기강 해이에 대한 대신들의 논의
좌의정(左議政) 이세백(李世白)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도정(都政)104) 을 천취(遷就)105) 하는 폐단은, 청컨대, 무진년106) 에 대신(大臣)들이 차자(箚子)로서 변통(變通)을 요청했던 예(例)에 의거하여 좌이(左貳)107) 로 인원을 갖추어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대신들과 의논하여 처리하라는 것으로 비답하였다. 대신과 비국(備局)의 여러 재신(宰臣)을 인견하게 되자, 영의정(領議政) 서문중(徐文重)이 먼저 나라의 기강(紀綱)이 해이한 것과 여러 가지의 법도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진달하였는데,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방금 하교(下敎)하려고 하였다. 나라에 기강이 없어 백례(百隸)들이 직무(職務)를 태만히 하고 봉공(奉公)하는 의리를 알지 못하는데, 정경(正卿)108) 이 비록 서관(庶官)109) 과 차이는 있으나 똑같이 신자(臣子)이니, 어찌 감히 거드름을 피우면서 거만하게 자기 편할 계획만 내는가?"
하고, 인하여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최규서(崔奎瑞)의 일은 더욱 놀랄 만하다. 처음에 질병(疾病)을 칭탁하여 휴가 원서를 제출하고 내려갔다가, 서울 가까운 지방에 있으면서 오래도록 올라오지 않았고, 여러 번 글을 올려 스스로 변명하였으나, 또한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았으니 매우 정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그 어미가 서울에 있으니 당연히 올라와서 구료(救療)해야 할 처지인데, 무단히 가족을 거느리고 내려가서 엄비(嚴批)를 받고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또 전부터 이 사람이 친환(親患)으로 벼슬을 사양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신병(身病)을 칭탁하였으니, 매우 성실한 도리가 아니다."
하였으며, 또 정재희(鄭載禧)·권시경(權是經)의 일을 들어 상세히 엄중하게 책망하였다. 대개 최규서는 처음에 목욕(沐浴)하는 일로 휴가를 받아 시골로 내려갔다가 그대로 조정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임명되었으나,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아서 도정(都政)을 거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상의 하교가 이와 같았다. 서문중이 정원에 명하여 성상의 명을 세 신하에게 유시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사람들의 진퇴(進退)는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마땅히 그들 스스로 하는 대로 맡겨 두어야 하니, 분부(分付)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승지(承旨) 이건명(李健命)이 말하기를,
"지금 내시(內侍)의 옥사(獄事)는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내관(內官) 유기한(柳起漢)은 일찍이 방기(房妓)의 일로 발각되어 귀양가게 되었는데, 놓아 보낸 뒤에 다시 내부(內府)에 들어왔다고 하니, 이 사람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멀리 내치어 궁금(宮禁)을 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34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55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註 104]도정(都政) : 도목 정사(都目政事)의 준말로, 해마다 6월과 12월에 관원(官員)의 치적(治績)을 종합 심사하여 성적의 순위에 따라 영전·좌천 또는 파면시키던 일.
- [註 105]
천취(遷就) : 억지로 맞추는 일.- [註 106]
무진년 : 1688 숙종 14년.- [註 107]
좌이(左貳) : 육조(六曹)의 참판(參判)·참의(參議), 또는 기타 관사의 차석(次席).- [註 108]
정경(正卿) : 정2품 관직에 있는 의정부(議政府)의 좌·우 참찬(右參贊), 육조(六曹)의 판서(判書), 한성부(漢城府)의 판윤(判尹)을 통틀어 이르는 말.- [註 109]
서관(庶官) : 일반 여러 벼슬아치.○左議政李世白上箚言:
都政遷就之弊, 請依戊辰年大臣箚請變通之例, 令佐貳備員擧行。
上答以議大臣處之。 及引見大臣備局諸宰, 領議政徐文重首陳國綱解弛、百度隳廢之狀, 上曰: "予方欲下敎矣。 國家無紀綱, 百隷怠官, 不知奉公之義。 正卿雖與庶官有異, 同是臣子, 則豈敢生偃蹇自便之計哉?" 因厲聲曰: "崔奎瑞事, 尤可駭。 初託疾病, 呈辭下去, 在近京之地, 久不上來, 累疏自明, 而亦不成說, 甚不直矣。 其母在京, 所當上來救療, 而無端將率下去, 屢承嚴批, 亦不動念。 自前此人, 不以親患爲辭, 則必託身病, 殊非誠實之道矣。" 又擧鄭載禧、權是經事, 縷縷嚴責。 蓋奎瑞初以沐浴事, 受暇下鄕, 仍不還朝, 至是拜吏判, 尙不來, 都政未得擧行, 故上敎如此。 文重請命政院, 以上命諭之三臣, 上曰: "此人等進退, 非予所知。 當任其自爲, 勿爲分付。" 承旨李健命言: "今此內侍獄事, 誠可寒心。 內官劉起漢, 曾以房妓事, 發覺被謫, 放送後復入內府云。 此人不可仍置, 宜永爲遠放, 以嚴宮禁。" 上然之。
- 【태백산사고본】 37책 34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55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註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