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에서의 부정한 혐의로 이성휘와 송성을 조사하여 처치하라고 명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제신(諸臣)을 인견(引見)하였다. 임금이, 이탄(李坦)이 논한 바 과장(科場)의 일에 대해 하문하니, 우의정(右議政) 이세백(李世白)이 아뢰기를,
"국가의 기강(紀綱)이 해이해지고 사습(士習)이 투박(偸薄)해져 매양 과장(科塲)이 있을 적마다 문득 사람들의 말이 있었는데, 이번 과거(科擧)에서는 전파된 말들이 더욱 낭자합니다. 과거는 곧 선비들이 발신(拔身)하는 초정(初程)인데, 떠도는 말들이 이러하니 명백하게 핵실(覈實)하지 않을 수 없으나, 대간(臺諫)의 지론이 분명하지 않아서 실로 지적하여 빙핵(憑覈)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좌의정(左議政) 서문중(徐文重)은 아뢰기를,
"대관(臺官)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외간에 전파된 말들이 또한 매우 분분합니다."
하고, 제신(諸臣)들은 당(唐)나라 때의 전례에 의거하여 다시 시험보여야 한다고 하는 이도 있고, 봉미관(封彌官) 이하를 수금(囚禁)하고 아울러 조사해야 한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임금이 명하여 이탄(李坦)을 앞으로 나오게 한 다음 유시하기를,
"그대는 들은 대로 진달하도록 하라."
하니, 이탄이 아뢰기를,
"과거가 끝난 뒤 사람들의 말이 매우 낭자하였기 때문에 논계(論啓)한 것입니다만, 그 가운데 외잡(猥雜)한 말들은 감히 계사(啓辭)에 기재하지 못하였습니다. 출방(出榜)한 뒤 사람들의 말을 듣건대, 신급제(新及第) 이성휘(李聖徽)는 표(表)를 지어 올렸으나, 부(賦)로 합격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전하는 말이 진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추문(追聞)한 바에 의하면 이성휘가 시장(試場) 안에서 표(表)를 지어 바칠 적에 직접 본 사람이 많았는데, 출방한 뒤 하객(賀客)이, ‘무슨 글로 합격이 되었는가?’고 물으니, 이 성휘가 ‘표(表)와 부(賦)로 편(篇)을 갖추어 비편부(裨篇賦)로 합격되었다.’고 하였다 하나, 이번 과거에서 비편(裨篇)으로 합격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신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시관(監試官)은 고관(考官)과 차이가 있으니, 장막을 친 뒤 영외(楹外)로 나와 앉아 있기 때문에, 가리는 것이 없어서 거자(擧子)들이 시권(試券)을 바칠 적에 평상시 얼굴을 아는 사람의 경우 그 시권을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과(考科)할 적에는 감히 한 마디도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전례입니다. 신이 거자 어유봉(魚有鳳)과 한 번 만난 면분(面分)이 있으므로, 마침 그의 시권이 노자(露字)의 세 번째 장(張)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억해 두었는데, 그 글이 과연 입격(入格) 되었습니다만, 권호(卷號)를 개탁하여 보니, 어유봉이 아니라 바로 송성(宋晟)이었습니다. 신이 혹시 잘못 안 것이 아닌가 염려하였는데, 파하고 돌아간 후에 거자(擧子)들의 말을 들으니 송성이 바친 시권(試券)은 초축(初軸)에 있었다고 하므로, 역시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이성휘는 과문(科文)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만, 송성은 본래 학문에 어둡다고 일컬어지므로, 비편(裨篇)으로 합격되었다는 말과 권호(卷號)가 서로 틀린 일이 모두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감히 조사하여 처치(處置)하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이밖에 달리 의심스러운 일은 없었는가?"
하니, 이탄이 아뢰기를,
"박필위(朴弼渭) 또한 연소한 사람으로 글을 짓지 못하는데, 어떤 이가, ‘표(表)와 책(策)을 지어 바쳤는데 부(賦)로 합격되었다.’ 합니다만, 이는 왕래하는 가운데 떠도는 말이어서 진실로 신빙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이성휘(李聖徽)와 송성(宋晟)을 아울러 엄하게 조사하여 처치하라고 명하였다. 헌부(憲府)에서 이어 발론하여, ‘해당 봉미관(封彌官)과 등록관(謄錄官)을 아울러 나문(拿問)하여 죄를 정하고, 하리(下吏)는 수금(囚禁)한 다음 엄히 핵실해야 된다.’고 한 계(啓)에 말하기를,
"대계(臺啓)의 내용 가운데 차비관(差備官)과 하인(下人)이 부동(符同)하여 간계를 부렸다는 말이 있으니, 의당 아울러 나치(拏致)할 것을 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등과인(登科人)만 사문(査問)하게 하였으니, 일을 상세히 조처한다는 데에 매우 흠이 됩니다."
하니, 임금이 사핵(査覈)에는 절로 차제(次第)가 있다고 하면서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3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4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引見大臣、備局諸臣。 上詢李坦所論科事, 右議政李世白言: "國綱解弛, 士習偸薄, 每經科場, 輒有人言, 而今科傳播之說, 尤極狼藉。 科擧卽士子拔身之初程也。 行言已如此, 不可不明覈, 而臺諫所論, 不爲明白, 實難指的憑覈矣。" 左議政徐文重曰: "臺官雖不明言, 而外間傳說, 亦甚紛然矣。" 諸臣或言依唐時例, 可以改試, 或言封彌官以下, 可令囚禁竝査。 上命召李坦至前諭曰: "爾宜直陳所聞。" 坦曰: "科後人言, 極其狼藉, 故有所論啓, 而其間猥雜之說, 不敢載之啓辭矣。 出榜後聞人傳說, 則新及第李聖輝, 以表製呈, 以賦得中云, 而以爲傳說之不實矣。 追聞聖輝場中製表之際, 人多目見者, 榜出後賀客, 問以何文得中, 則聖輝答以表賦具篇, 而以裨篇賦得中云。 今科無以裨篇得中之事, 臣之所知故, 以此致疑。 且監試官與考官有異, 隔帳後出坐楹外, 無所障蔽, 故擧子呈卷之際, 常時知面之人, 則其試券, 或有不期知而自知, 故考課之際, 不敢一言, 例也。 臣與擧子魚有鳳, 有一面之分, 適見其試券, 入於露字第三張, 而心識之矣, 其文果入格, 而及至拆號, 非有鳳, 乃宋晟也。 臣或慮其有所錯認矣, 罷歸後, 得聞擧子之言, 則晟之呈卷, 在於初軸云, 故亦以此疑之矣。 聖輝能製科文, 而晟則素稱不文, 其裨篇得中之說, 卷號相左之事, 俱涉可疑, 故敢請査處矣。" 上曰: "此外無他可疑者耶?" 坦曰: "朴弼渭, 亦年少不綴文, 或云以表、策製呈, 以賦得中, 而此則往來行言, 固難準信矣。" 上命有司, 李聖輝、宋晟, 竝爲嚴査處置。 憲府繼發當該封彌官、謄錄官, 竝拿問定罪, 下吏囚禁嚴覈之啓, 有曰: "臺啓措語中, 有差備官與下人符同用奸之語, 則宜有幷拿之請, 而只爲査問於登科之人, 殊欠詳盡。" 上以査覈自有次第而不從之。
- 【태백산사고본】 36책 33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4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