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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2권, 숙종 24년 12월 27일 정묘 1번째기사 1698년 청 강희(康熙) 37년

부묘례를 행하고 숭정전에서 백관들의 하례를 받고 대사와 반교하다

임금이 부묘례(祔廟禮)를 행하고 숭정전(崇政殿)으로 환궁하여 백관들의 하례를 받고 대사(大赦)하고 반교(頒敎)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임금은 말하노라. 지금까지 빠뜨렸던 의식을 종석(宗祏)315) 에 올리고 부묘(祔廟)하는 의식이 이미 이루어져서 큰 경사가 신인(神人)에 두루 미쳤도다. 윤음(綸音)이 비로소 널리 퍼짐은 진실로 지극한 정성으로부터 나와 백성들의 마음에 보답함이로다. 생각하건대 전대(前代)에 선양(禪讓)하였던 성대한 모범은 반드시 당세에 위호(位號)를 올리는 융성한 보답이 있었도다. 대개 만승(萬乘)의 자리를 양위(讓位)함은 진실로 지극한 덕이어서 칭할 만한 이름이 없다. 하물며 한 나라의 군주의 자리에 임하였으면서 어찌 끝내 존명(尊名)을 빠뜨릴 수 있겠는가? 삼가 생각하건대 단종 대왕(端宗大王)께서는 왕위의 원사(元嗣)로서 어린 나이에 왕업을 이었는데, 천부의 자질이 일찍부터 드러나 영명(英明)하여 문치(文治)의 성대함을 지킬 것을 기대할 수 있었도다. 시운(時運)이 비록 태평함을 이었으나 아직도 여러 가지 어려운 근심거리가 많아 예를 지켜 능히 큰 인륜을 삼가서 자신을 비우고 우러러 친족 간의 다정한 친목을 이루었도다. 의지하고 믿음이 매우 극진하여 아득히 성왕(成王)316)주공(周公)을 대하는 것 같아 조용히 읍(揖)하며 사양하여 아득히 애연(藹然)히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같이 하니, 이는 권도(權道)에 통달하고 천명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것에 의지하여 공고한 기업이 면면히 계속되기를 도모하여 태상왕(太上王)의 존영(尊榮)을 누리었도다. 두 자(字)의 아름다운 칭호를 이미 갖추었고, 양궁(兩宮)의 화목과 공경을 돈독하게 하였으며, 매월의 조례(朝禮)를 자주 행하였도다. 불행히도 변란의 조짐이 거듭 일어나 드디어 숭봉(崇奉)함이 마침내 바뀌게 되었도다. 겸손한 덕은 하늘에까지 질정(質正)할 수 있으니, 어찌 왕실이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근심이 있었겠는가? 잘못된 의논이 모두 조정에서 나와 진실로 성조(聖祖)의 친애하는 뜻을 그르치게 되었도다. 명예와 은택이 가리워지니 묘향(廟饗)이 빠뜨려져 의지할 곳이 없고, 산천이 아득히 이어졌으니 신선이 노니는 곳이 아득하여 어느 곳에 머물 것인가? 이에 신리(神理)가 오랫동안 울결(鬱結)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이 상심함을 더하게 되었도다. 3년 간이나 임어(臨御)한 지존(至尊)이 어찌 유현(幽顯)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일대(一代)의 선양(禪讓)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어 게시하여 숭상함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옛 사실을 밝히어 항시 감탄을 품었고 조정의 의론에 물어 인정(人情)과 예를 펴기를 바랐도다. 생각건대 누조(累朝)에 걸쳐 인순(因循)하여 예를 빠뜨림이 있었으니, 마땅히 계술(繼述)할 방법을 생각하였노라. 비록 세서(世序)가 구원(久遠)하여 천묘(遷廟)에 이르렀으나 감히 경상(經常)의 의식으로 묘실(廟室)에 추제(追躋)하고, 의장(儀章)을 다 회복하였으며, 아울러 곤위(坤闈)도 높였으니, 크게 선양하고 밝혀 드러냄이로다. 하물며 정령(精靈)은 밝게 임하여 하늘 위에 충만해 있으며, 조종(祖宗)들은 명명(冥冥)한 가운데에서 말없이 위로하고 있음을 생각함에 있어서이랴. 상설(象設)이 침원(寢園)에 새로이 갖추어지니 백신(百神)이 와서 호위하며, 용을 그린 깃발을 사제(私第)에서 가득히 맞아들이니 모든 백성들이 다 기뻐하도다. 천도(天道)는 반드시 펴지게 됨을 믿나니, 이에 2백 년이 지나 기다렸다가 비로소 나라의 예에 유감이 없게 되었으니, 천만 대에 이르도록 말할 것이 있게 되었도다. 진실로 드물게 있는 성대한 아름다움에 어찌 광탕(曠蕩)한 큰 은택이 없으리오. 허물이 있어 중벽(重辟)317) 에 이른 자도 모두 용서하여 함께 살려주고, 은혜를 미루어 모든 신하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여 기쁨을 함께 경축하노라. 이달 27일 새벽 이전으로부터 잡범(雜犯)으로서 사죄(死罪)이하는 모두 용서하여 죄를 없애주고, 관직에 있는 자는 각기 1등급을 올려 주며, 자궁자(資窮者)318)대가(代加)319) 하노라. 아! 떳떳한 법도가 먼 제사에서 비로소 행해졌으니, 참으로 추원(追遠)하는 정성이로다. 찬란함을 만방에 크게 베푸니 함께 새로운 다스림을 도모하기에 힘쓸 것이다. 그리하여 이에 교시(敎示)하노니 마땅히 다 알지어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서종태(徐宗泰)가 지어 바쳤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19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15]
    종석(宗祏) : 묘(廟) 안의 신주(神主)를 간직해 두는 석실(石室).
  • [註 316]
    성왕(成王) : 주 무왕(周武王)의 아들로 어려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숙부인 주공(周公)이 잘 보필하여 나라를 안정시켰음.
  • [註 317]
    중벽(重辟) : 사형.
  • [註 318]
    자궁자(資窮者) : 자급(資級)이 다한 자라는 뜻으로, 당하관(堂下官)의 제일 높은 품계에 있는 자를 이르는 말.
  • [註 319]
    대가(代加) : 경우에 따라 품계(品階)를 올려 줄 사람을 대신하여 그 자·서·제·질(子婿弟姪)에게 품계를 올려 주는 것.

○丁卯/上行祔廟禮, 還宮御崇政殿, 受百官賀, 大赦頒敎。 其文曰:

王若曰, 曠典修於宗祏, 祔儀旣成; 大慶洽於神人, 綸音載播。 寔出至悃, 用答群心。 言念前代禪傳之盛規, 必有當世位號之隆報。 蓋脫屣萬乘, 固至德之無稱; 況臨扆一邦, 豈尊名之終闕? 恭惟端宗大王, 元嗣正位, 沖歲承基。 天質夙著英明, 可期守文之盛; 時運雖繼熙洽, 尙有多難之憂。 秉禮而克勤大倫, 虛已而仰成懿戚。 倚毗深摯, 沕若成王之待周公; 揖遜從容, 藹然虞帝之授神禹。 是爲達權而識命, 賴有鞏業而綿圖。 享太上之尊榮, 四字之徽稱旣備; 篤兩宮之和敬, 每月之朝禮頻伸。 不幸變釁屢興, 遂見崇奉終替。 謙光可質於在上, 寧生王室危疑之憂; 謬議悉出於盈庭, 諒非聖祖親愛之志? 聲澤掩翳, 廟饗闕而靡依; 山川渺綿, 仙遊遠而何所? 肆神理之久鬱, 增輿情之胥恫。 三載臨御之尊, 豈以幽顯而有間; 一代禪讓之懿, 訖未表揭而致崇? 徵故實而恒懷感歎, 詢庭議而庶伸情禮。 惟累朝因循而有缺, 宜思繼述之方; 雖世序久遠而及祧, 敢緩經常之典? 追躋廟室, 悉復儀章; 竝隆坤闈, 丕揚徽邵。 怳精靈昭臨而洋洋乎上, 想祖宗默慰於冥冥之中。 象設俱新於寢園, 百神來衛; 龍旂載迎於私第, 庶昌交欣。 信天道之必伸, 乃歷二百年而如待; 始邦禮之無憾, 可眎千萬代而有辭。 允爲稀闊之盛休, 詎無曠蕩之洪澤? 有辜而至重辟, 咸宥竝生; 推恩而逮庶僚, 嘉與同慶。 自本月二十七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在官者各加一資, 資窮者代加。 於戲! 彝章肇擧於遐祀, 其諒追遠之誠; 渙號誕敷於多方, 共勉圖新之治。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徐宗泰製進。】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19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