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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2권, 숙종 24년 12월 7일 정미 1번째기사 1698년 청 강희(康熙) 37년

단종 대왕의 시책의 머리말에 사왕신이라고 칭하기로 하다

단종 대왕(端宗大王)의 시책(諡冊) 초본(草本) 가운데에 머리말을 도감(都監)이 ‘효증손 사왕신(孝曾孫嗣王臣)’이라고 써 넣었는데,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4조(四祖) 및 명종(明宗)의 실(室)에는 ‘효증손 사왕신(孝曾孫嗣王臣)’이라고 썼고, 정종(定宗)·문종(文宗)·예종(睿宗)의 세 실(室)에는 단지 ‘사왕신(嗣王臣)’이라고만 썼으며, 덕종(德宗)의 실에는 ‘국왕신(國王臣)’이라고 써 모두 ‘효증손(孝曾孫)’ 석 자(字)가 없으며, 인종(仁宗)의 실(室)에는 ‘효증질손 사왕신(孝曾侄孫嗣王臣)’이라고 썼습니다. 지금 만약 시책(諡冊)에 쓴것에 의한다면 정종(定宗)·문종(文宗)·예종(睿宗)의 여러 실들과 다름이 있어 일이 미안한 듯합니다. 청컨대 대신들에게 물으소서."

하니, 이세백(李世白)은 말하기를,

"십실(十室)의 축사에 차이가 있는 것은 미의(微意)가 있는 듯하니, 문종(文宗)의 실(室)을 표준으로 삼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고, 최석정(崔錫鼎)은 말하기를,

"3종(宗)의 실(室)을 조천(祧遷)함에 단지 ‘사왕신(嗣王臣)’이라고만 쓴 것은 실로 뜻이 있습니다. 인종조(仁宗朝)에 ‘효증질손(孝曾侄孫)’이라고 칭한 것은 아마도 인조조(仁祖朝)에 칭한 바에 따라 그대로 이어쓰고 고치지 않은 것 같으니, 이것은 마땅히 인용하여 예(例)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머릿글에서 칭한 바가 이미 깊이 고찰하여 강정(講定)한 것이 아니니, 3종의 실 예에 따라 다만 ‘사왕신(嗣王臣)’이라고 칭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의논에 따르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517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丁未/端宗大王諡冊草本中頭辭, 都監以孝曾孫嗣王臣書塡, 禮曹啓言: 四祖及明宗室, 書以孝曾孫嗣王臣, 定宗文宗睿宗三室, 則只書嗣王臣, 德宗室則書以國王臣, 而竝無孝曾孫三字, 仁宗室則書以孝曾侄孫嗣王臣矣。 今若依諡冊所書, 則與定宗文宗睿宗諸室 有所異同, 事涉未安。 請問議大臣。" 李世白以爲: "十室祝辭之有異, 似有微意, 似當以文宗室爲準。" 崔錫鼎以爲: "祧遷三宗室, 只書嗣王臣, 意實有在。 仁宗朝稱孝曾侄孫, 似因仁祖朝所稱, 而承沿不改, 此則恐不當援以爲例。 今此頭辭所稱, 旣非深考而講定, 則依二宗室例, 只稱嗣王臣, 恐爲合宜。" 上命依議。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517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