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군의 시호를 추상하다
대신(大臣)·육경(六卿)·의정부의 서벽(西壁)과 관각(館閣)의 당상(堂上)들을 빈청(賓廳)에 모이라 명하였다. 노산 대군(魯山大君)의 시호(諡號)를 추상(追上)하여 ‘순정 안장 경순 대왕(純定安莊景順大王)’이라 하였는데, 중정 정수(中正精粹)함을 순(純)이라 하고, 대려 자인(大慮慈仁)을 정(定)이라 하고, 화합을 좋아하고 다투지 않음을 안(安)이라 하고, 올바른 것을 실천하여 뜻이 화(和)한 것을 장(壯)이라 하고, 의(義)로 말미암아 구제하는 것을 경(景)이라 하고, 자애롭고 화목하여 두루 복종하는 것을 순(順)이라 한다 하였다. 묘호(廟號)는 단종(端宗)이라 하니, 예(禮)를 지키고 의(義)를 잡음을 단(端)이라 한다. 능호(陵號)는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부인의 시호(諡號)를 ‘정순(定順)’이라 하니, 순행(純行)하여 어그러짐이 없음을 정(定)이라 하고, 이치에 화합하는 것을 순(順)이라 한다 하였다. 휘호(徽號)를 단량 제경(端良齊敬)이라 하니, 예를 지키고 의를 붙잡는 것을 단(端)이라 하고, 중심(中心)으로 일을 공경하는 것을 양(良)이라 하고, 마음을 잡아 능히 엄정할 수 있음을 제(齊)라 하고, 밤낮으로 공경하고 삼감을 경(敬)이라 한다 하였다. 능호(陵號)는 ‘사릉(思陵)’이라 하였다. 처음에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노산 대군의 존호(尊號)는 공의 온문(恭懿溫文)이요, 부인의 존호는 의덕(懿德)이니, 곧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올리신 것이나 노산께서 사양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호를 올리는 때에 그대로 이것으로써 시호로 삼아야 합니까? 아니면 따로 시호를 만들어 올려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올린 시호를 그대로 쓴다면 세조께서 높이 받드는 뜻을 드러낼 수 있으나, 시호도 또한 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 먼저 평일의 존호(尊號)를 쓰고 다시 오늘에 올린 시호를 쓰는 것이 옳다."
하였다. 나중에 유상운이 또 말하기를,
"존호와 시호를 나란히 쓰라는 것은 실로 성상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존호는 평일에 올리는 것이요, 시호는 대행(大行)275) 후에 올리는 것이므로, 제주(題主)에는 실로 마땅히 나란히 쓸 수 있겠지만, 책보(冊寶)에 대한 사체(事體)는 다름이 있으니, 반드시 나란히 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모든 대신들에게 헌의(獻議)하게 하였더니, 모두 다른 말이 없어 임금이 이에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1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변란-정변(政變) / 역사-전사(前史)
- [註 275]대행(大行) : 승하.
○命大臣ㆍ六卿ㆍ政府西璧、館閣堂上會賓廳。 追上魯山大君諡號曰純定安莊景順大王, 中正精粹曰純, 大慮慈仁曰定, 好和不爭曰安, 履正志和曰莊, 由義而濟曰景, 慈和徧服曰順。 廟號曰端宗, 守禮執義曰端。 陵號曰莊陵。 夫人諡號曰定順, 純行不爽曰定, 比和于理曰順。 徽號曰端良齊敬, 守禮執義曰端, 中心敬事曰良, 執心克莊曰齊, 夙夜儆戒曰敬。 陵號曰思陵。 初, 領議政柳尙運白上曰: "魯山大君尊號, 恭懿溫文, 夫人尊號懿德, 卽世祖大王所上, 而魯山讓而不受矣。 今當上諡, 仍以此爲諡號乎? 抑別爲加上諡號乎?" 上曰: "若書世祖大王所上尊號, 則可以表揚世祖尊奉之美意, 而諡號亦不可不上, 先書平日尊號, 復書卽今所上諡號, 可也。" 後尙運又言: "尊號、諡號之竝書, 固知聖意之有在, 而尊號, 平日所上者也, 諡號, 大行後所上者也。 題主則固當竝書, 而冊寶事體有別, 不必竝書。" 仍令諸大臣獻議, 皆無異辭, 上乃可之。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1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변란-정변(政變)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