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 32권, 숙종 24년 10월 6일 정미 2번째기사
1698년 청 강희(康熙) 37년
외방에서 생사를 새우는 일을 금지하도록 하다
사간원(司諫院)에서 논핵하기를,
"요즈음 외방(外方)에서 명예(名譽)를 바라는 일이 실로 고질적인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사(生祠)214) 를 설치하는 일이 따라서 차츰 일어나고 있으며, 혹은 술과 안주를 가지고 향리(鄕里)의 품관(品官)을 대접하고 형상(形像)을 남겨 두고서 반드시 성사(成事)가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지금 이후로는 외방에서 생사(生祠)를 세우는 일을 일체 금단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보다 앞서 이동욱(李東郁)이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있을 적에 우민(愚民)들을 유혹하여 사사로운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고 화상(畫像)을 남겨 두고서 사당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하니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대간(臺諫)의 말은 대개 그것을 가리킨 것이었다. 또 논하기를,
"주사(籌司) 당상(堂上) 권시경(權是經)은 본래 명망이 없는데, 갑자기 그 직(職)을 제수했습니다. 청컨대 개차(改差)하소서."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32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506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풍속-예속(禮俗) / 인사-임면(任免)
- [註 214]생사(生祠) : 감사(監司)나 수령(守令)의 선정(善政)을 찬양하는 표시로, 백성들이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때부터 받들어 제사지내는 사당. 생사당(生祠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