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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5월 13일 임진 1번째기사 1697년 청 강희(康熙) 36년

관서의 흉년으로 내수사에 딸린 노비의 신공을 면제시켜 주다

응교(應敎) 이건명(李健命)이 상소하여 자책하기를,

"일찍이 박태순(朴泰淳)이 방백(方伯)에 의망된 것을 방해했었는데, 박태순이 그 일에 원한을 품고 있다가 이렇게 공격하고 배척하게 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답하지 않고 체임시켰다. 이날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임금이 이건명의 일로 전교하기를,

"조정에 만약 체통(體統)이 있다면 어찌 감히 이와 같겠는가? 이건명을 파직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이 말하기를,

"이정명이건명은 모두 잘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은 비록 어긋나고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포용(包容)을 더하심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견벌(譴罰)은 단지 한쪽에만 시행한다면 더욱 치우치게 과중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모두 도로 거두도록 명하였다. 유상운이 이어 신임(申銋)을 불러서 돌아오게 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그를 경직(京職)에 체임하여 맡기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또 이수언(李秀彦)·정재희(鄭載禧)를 여러 번 불렀으나 오지 않는 것을 미안(未安)하게 여겨 누누이 하교하자, 유상운이 별도로 유시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임금이 관서(關西)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여 내노비(內奴婢)173) 의 신공(身貢)을 죄다 면제시켜 주도록 명하였다. 유상운이 또 서로(西路)174) 의 무재(武才)를 거두어 기용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임금이 대동(大同) 및 군문(軍門)에 꼭 바쳐야 할 사람이 미루면서 바치지 않는다 하여 기강이 해이되었음을 심각하게 탄식하였는데, 유상운이 별도로 거듭 신칙(申飭)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만일 게을리하여 늦추는 자가 있으면 즉시 논죄하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추천장[薦章]을 보니, 추천한 것이 모두 훌륭하였다. 해조(該曹)에 분부하여 재능에 따라 거두어 기용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지평(持平) 최중태(崔重泰)가 중론(重論)을 경솔하게 정지시켰다는 것으로 이상훈(李相勛)·조대수(趙大壽)를 파직하도록 청하고, 또 연중(筵中)에서 다투며 고집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필용(呂必容)·이익수(李益壽)를 파직하도록 청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5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재정-공물(貢物) / 신분-천인(賤人) / 구휼(救恤) / 군사(軍事)

  • [註 173]
    내노비(內奴婢) : 내수사(內需司)에 딸린 노비.
  • [註 174]
    서로(西路) : 황해도와 평안도.

○壬辰/應敎李健命上疏自訟: "曾枳朴泰淳方伯之望, 泰淳以此懷慼, 有此攻斥。" 上不答而遞之。 是日引見大臣、備局諸臣。 上以健命事敎曰: "朝廷若有體統, 何敢如此? 李健命罷職。" 領議政柳尙運言: "李鼎命健命, 俱非矣。 然言雖差過, 宜加包容。 且譴罰之只施一邊, 尤涉偏重。" 上竝命還收。 尙運仍請召還申銋, 上命遞付京職。 上又以李秀彦鄭載禧屢召下來, 爲未安, 縷縷下敎, 尙運請別諭, 上從之。 上以關西饑荒, 命蕩減內奴婢身貢。 尙運又請收用西路武才, 上從之。 上以大同及軍門應納者, 延拖不納, 深歎紀綱之解弛, 尙運請別加申飭, 上命如有懈緩者, 隨卽論罪。 上曰: "昨見薦章, 所薦皆好矣。 分付該曺, 隨才收用。" 持平崔重泰, 以輕停重論, 請罷李相勛趙大壽, 又以不能爭執於筵中, 請罷呂必容李益壽, 竝不允。


  •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5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재정-공물(貢物) / 신분-천인(賤人) / 구휼(救恤)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