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과 비국의 신하를 인견하여 관서의 진휼·어사의 권리 등을 논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함경도 감진 어사(咸鏡道監賑御史) 조태구(趙泰耉)가 청대(請對)하여 입시(入侍)하였다.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이 수군(水軍)과 육군(陸軍)의 조련(操鍊)을 정지시켜 한마음으로 농사에 힘쓰도록 하라고 청하자, 그대로 따랐다. 부응교(副應敎) 이인엽(李寅燁)이 관서(關西)057) 에서 설죽(設粥)하여 기민을 먹이는 데 대한 폐단을 말하니, 【이인엽이 평안도 감진 어사(平安道監賑御史)로 지금 내려가려는 참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려간 뒤에 도신(道臣)과 함께 상의(相議)하여 편리하고 적당하도록 일에 마음과 힘을 다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인엽(李寅燁)이 해서(海西)의 전세(田稅)로 거둬들인 미곡(米穀)을 관서(關西)에다 첨가하여 보내 줄 것을 청하고, 유상운(柳尙運)이 먼저 강도(江都)058) 의 미곡을 들여보낼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인엽이 또 양향(粮餉)059) 인 둔곡(屯穀)060) 을 얻기를 청하자, 임금이 1천 석(石)을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이인엽이 또 말하기를,
"요즈음 탐욕을 부리는 기풍이 크게 진작되었습니다. 수령(守令)으로 만일 탐오(貪汚)하는 자가 있으면, 청컨대 계문(啓聞)하여 논죄(論罪)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죄상(罪狀)이 뚜렷하게 드러난 자는 계문(啓聞)하여 엄한 율(律)로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이인엽이 또 사사로이 곡식을 풀어 기민을 진휼한 사람에게는 관직에 임명하도록 하는 뜻을 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빨리 거두어 써서 보는 자들로 하여금 용동(聳動)함이 있게 하라."
하였다. 이인엽이 또 기자묘(箕子廟)에 제사를 지내어 기양(祈禳)하는 방법을 삼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진달하자, 그대로 윤허하였다. 조태구(趙泰耉)가 영남(嶺南)의 곡식으로 수량을 더 보태어 관서로 운송하도록 청하자, 임금이 6천 석(石)을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조태구가 영남에서 세금으로 거둔 소금을 얻으려고 청하니, 임금이 저자를 열어 소용되는 소금을 지급하게 하도록 명하였다. 조태구가 또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에게 속천(贖賤)을 바치도록 허락하고, 그들이 속전으로 바친 곡식은 진휼하는 밑천으로 보충하여 활용할 것을 청하니, 그대로 윤허하였다. 이인엽(李寅燁)이 말하기를,
"이미 북도[北路]에 허락하셨으니, 서도[西路]도 달리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일체로 속전 바치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라."
하였다. 조태구(趙泰耉)가 말하기를,
"어사(御史)가 출척(黜陟)하는 권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 여러 고을을 호령(號令)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그 죄범(罪犯)에 따라 당상관(堂上官)이나 당하관(堂下官)을 논하지 말고 장형(杖刑)을 집행하게 하소서."
하니, 좌의정(左議政)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감사(監司)도 통훈 대부(通訓大夫) 이하의 벼슬아치는 스스로 처단할 수 있지만, 당상관(堂上官)에게는 곧바로 곤장을 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통훈 대부(通訓大夫) 이하는 곧바로 처단하고 통정 대부(通政大夫) 이상은 계문하여 처리하되, 두 도(道) 모두 일체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유중무(柳重茂)가 인피(引避)한 것을 보니, 이징명(李徵明)의 일은 근거가 없다. 그리고 유중무의 소(疏)는 김간(金榦)을 공격하여 배척한 것이 아니고 대체로 춘방(春坊)을 가려 뽑으려는 것이었다. 설령 논(論)한 바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저절로 공론(公論)이 있을 터인데, 정사(政事)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을 강제로 자처(自處)하게 하는 것도 이미 매우 괴이하게 여길 만한데, 심지어 ‘내가 전조(銓曹)에 들어가면 마땅히 배척하여 멀고 나쁜 지방에다 보임(補任)시키겠다.’고 말한 것은 매우 방자(放恣)한 행동이다. 이징명을 파직(罷職)시켜 서용(敍用)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유중무(柳重茂)가 김재(金栽)를 논척한 것은 매우 온당(穩當)하지 못합니다. 김재는 바로 쓸 만한 사람인데도 심지어 녹록(碌碌)하여 쓸모가 없고 웃음거리가 될 사람이라는 것으로 지목하였으며, 김간(金榦)의 경우는 시골의 서생이라는 것으로 배척하였으니, 매우 잘못입니다."
하였다. 최석정(崔錫鼎)이 말하기를,
"고(故) 집의(執義) 권양(權讓)은 시종신(侍從臣)의 아비라고 하여 자급(資級)을 올리려고 하였는데, 비답을 내리기 전에 본인이 죽어버렸으므로, 은혜를 미루어 주는 실상이 너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권양은 염퇴(恬退)하여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물론(物論)이 아름답게 여겼으니, 증직(贈職)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44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군사-병법(兵法) / 재정-전세(田稅) / 재정-잡세(雜稅) / 풍속-예속(禮俗) / 구휼(救恤) / 신분(身分)
- [註 057]관서(關西) : 평안도.
- [註 058]
○乙亥/引見大臣、備局諸臣。 咸鏡道監賑御史趙泰耉, 請對入侍。 領議政柳尙運請停水、陸軍操鍊, 一意勸農, 從之。 副應敎李寅燁, 言關西設粥之有弊, 【寅燁以平安道監賑御史, 今將下去。】 上曰: "下去後, 與道臣相議, 便宜從事。" 寅燁請以海西田稅米, 添送關西, 尙運請先以江都米入送, 從之。 寅燁又請得糧餉屯穀, 上命給千石。 寅燁又言: "近來貪風大振, 守令如有貪汚者, 請啓聞論罪。" 上曰: "罪狀顯著者啓聞, 繩以重律。" 寅燁又陳私賑人除職之意, 上曰: "從速收用, 使有聳動。" 寅燁又陳宜祀箕子廟, 以爲祈禳之道, 允之。 泰耉請以嶺南穀, 加數移轉, 上命給六千石。 泰耉請得嶺南稅鹽, 上命給開市所用之鹽。 泰耉又請公、私賤許贖, 以其所贖之穀, 補用賑資, 許之。 寅燁曰: "旣許北路, 則西路亦不可異同矣。" 上曰: "一體許贖。" 泰耉言: "御史不得專黜陟之權, 則不可號令列邑。 請隨其罪犯, 勿論堂上、堂下決杖。" 左議政尹趾善曰: "監司亦官通訓以下自斷, 堂上則不可直杖。" 上曰: "通訓以下直斷, 通政以上啓聞處之, 兩道一體爲之。" 上曰: "昨見柳重茂之避, 李徵明事無據。 重茂之疏, 非攻斥金榦, 蓋欲擇春坊也。 設令所論謬誤, 自有公論, 而參政之人, 勒令自處, 已極可怪, 而至於吾入銓曹, 當斥補遠惡地云者, 尤極放恣。 徵明罷職不敍。" 趾善曰: "重茂之論金栽, 殊未穩當。 栽是可人, 而至以碌碌無用可笑之人, 目之, 榦則斥以鄕生, 尤極非矣。" 錫鼎曰: "故執義權讓, 以侍從臣父, 陞資未下批前身死, 殊無推恩之實。 且讓恬退不仕, 物論嘉之, 贈職似宜。" 上允之。
-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44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군사-병법(兵法) / 재정-전세(田稅) / 재정-잡세(雜稅) / 풍속-예속(禮俗) / 구휼(救恤) / 신분(身分)
- [註 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