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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30권, 숙종 22년 8월 3일 병술 2번째기사 1696년 청 강희(康熙) 35년

우의정 윤지선이 곡식을 바친 서얼을 벼슬길에 통하게 하는 조항의 제거 등을 말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제신(諸臣)을 인견(引見)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이조 판서(吏曹判書) 최석정(崔錫鼎)이 관제(官制)를 바꾸어 서얼(庶孽)을 벼슬길에 통하게 하는 일로 차자(箚子)를 올린 것을 묘당(廟堂)에 내리셨습니다. 대신(大臣)들이 조정(朝廷)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상의하여 품처(稟處)하여야 하겠으나 그 가운데 곡식을 바친 서얼을 벼슬길에 통하게 하는 한 조항은 본디 금석(金石)의 법이 아니니, 마땅히 제거할 만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윤지선이 말하기를,

"전부터 각도는 주관하는 당상(堂上)이 각각 있었으니, 최석정은 관서(關西)를 맡고, 민진장(閔鎭長)은 강도(江都)를 맡고, 서종태(徐宗泰)동래(東萊)를 맡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진귀(金鎭龜)가 말하기를,

"서문중(徐文重)의 소(疏) 가운데에 있는 기장(機張)의 죄인 만득(萬得)·명이(命伊)는 옥정(獄情)이 매우 의심스러우니 참작할 만합니다."

하였는데, 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세화(李世華)가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니, 임금이 전대로 추문(推問)하라고 명하였다. 김진귀가 또 서문중이 상소하여 돈을 사사로이 주조한 자는 수범(首犯)·종범(從犯)을 가려서 벌을 줄 것을 청한 일을 품재(稟裁)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구별하기 어려우니, 임시하여 죄인의 정상을 보아 품처(稟處)하라."

하였다. 김진귀가 말하기를,

"동래(東萊)의 죄인 만창(萬昌) 등은 부사(府使) 남후(南垕)를 독으로 해친 일 때문에 오래 갇혀 있으나, 일이 밝히기 어려우니 대신에게 의논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대신에게 물어서 품처하라고 명하였다. 사간(司諫) 이정명(李鼎命)이 진계(進啓)하기를,

"강오장(姜五章)은 적(賊)의 공초(供招)에 긴요하게 나왔는데, 국청(鞫廳)에서 나치(拿致)하기를 청하지 않았으므로, 대간(臺諫)으로서 마땅히 법을 지켜 쟁론(爭論)하고 아뢰어 청했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혹 인혐(引嫌)하여 참여하지 않은 채 양사(兩司)에서 끝내 한 마디도 말하지 않다가, 물의에 쫓겨서 옥사(獄事)가 거의 끝날 즈음에야 황급히 논계(論啓)하여 간사한 무리로 하여금 저뢰(抵賴)154) 하며 숨기게 하였으므로, 장차 정태(情態)를 다 알아낼 수 없게 되었으니, 국가에서 대각(臺閣)을 둔 뜻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국문(鞫問)에 참여한 대관(臺官)을 모두 체차(遞差)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뒤미처 논계한 것은 옳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체차하는 것이 마땅한지를 모르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박일봉(朴一奉)이 급변(急變)을 고하려 하는데, 병조(兵曹)의 결속리(結束吏)가 제뜻대로 막았고, 당상(堂上)·낭청(郞廳)이 게을러 각찰(覺察)하지 못하였으므로, 직분을 다하지 못한 잘못을 면할 수 없으니, 병조의 결속리는 가두어 죄주고, 당상·낭청은 모두 파직(罷職)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랫사람이 고하지 않으면 당상·낭청이 어떻게 알겠는가? 별로 파직할 만한 일이 없다. 해리(該吏)는 유사(攸司)로 하여금 가두어 다스리게 하라."

하였다. 이정명이 또 이만웅(李萬雄)에게 상을 줄여 주어서 신의를 잃은 잘못을 말하였는데, 윤지선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이세화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옳다고 말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신의를 잃은 것이 아니니, 대신의 말이 그르지 않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28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재정-잡세(雜稅) / 금융-화폐(貨幣) / 신분(身分) / 변란-정변(政變)

  • [註 154]
    저뢰(抵賴) : 거짓말을 하여 자복하지 않음.

○引見大臣、備局諸臣。 右議政尹趾善言: "吏曹判書崔錫鼎, 以變官制、通庶孽事陳箚, 下廟堂。 當待諸大臣還朝, 商議稟處, 而其中庶孽納米許通一款, 本非金石之典, 宜可除去。" 上從之。 趾善言: "自前諸道各有主管堂上, 請令崔錫鼎管關西, 閔鎭長管江都, 徐宗泰東萊。" 從之。 刑曹判書金鎭龜言: "徐文重疏中機張罪人萬得命伊, 獄情殊可疑, 宜可參酌。" 戶曹判書李世華言其不可, 上命仍前推問。 鎭龜又以文重疏私鑄錢者, 分首從事稟裁, 上曰: "區別爲難, 臨時觀罪人情狀稟處。" 鎭龜言: "東萊罪人萬昌等, 以毒害府使南垕事滯囚, 而事涉難明, 當議大臣。" 上命問于大臣稟處。 司諫李鼎命進啓: "姜五章緊出賊招, 而鞫廳不爲請拿, 爲臺諫者, 宜執法爭論, 陳啓以請。 或引嫌不參, 而兩司終無一言, 迫於物議, 草草論啓於獄事垂畢之後, 致令奸徒, 抵賴掩匿, 將難悉得情態。 朝家置臺閣之意, 果安在哉? 請參鞫臺官, 竝命遞差。" 上曰: "追後論啓, 未爲不可。 予未知其當遞也。" 又啓: "一奉欲上急變, 兵曹結束吏, 任意阻搪, 堂、郞慢不覺察, 不職之失, 在所難免。 請兵曹吏囚禁科罪, 入直堂、郞竝罷職。" 上曰: "下人不告, 則堂、郞何以知之? 別無罷職之事。 該吏令攸司囚治。" 鼎命又言李萬雄減賞失信之非, 趾善言其不然, 世華曰: "大臣言良是。" 上曰: "此非失信, 大臣言不非。"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28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재정-잡세(雜稅) / 금융-화폐(貨幣) / 신분(身分)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