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 공주방의 궁임·무녀가 신사하니 이를 벌하도록 하다
지평(持平) 이세재(李世載)가 상소(上疏)하기를,
"어제 수십의 인마(人馬)가 길에 잇닿은 것을 보고 물었더니, ‘명혜 공주방(明惠公主房)의 궁인(宮人)이 대내(大內)의 분부를 받아서, 소를 잡고 제수(祭需)를 장만하여 풍양궁(豊壤宮) 터에서 이틀 동안 신사(神祀)를 베풀고 파하였는데, 그 비용이 지극히 풍성하고 사치하였다.’ 합니다. 이렇게 주검이 길게 가득한 때에 천백 사람의 여러 날 양식이 될 만한 것을, 마침내 요사한 무당의 주머니로 돌아가게 하니, 원근(遠近)에서 지켜보고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대저 소를 잡아 신사하는 것은 모두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궁인을 시켜 범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나, 이것은 전하께서 모르시는 것인데 혹 궁노(宮奴)들이 사사로이 가탁(假托)한 것입니까? 또 광릉(光陵)의 침원(寢園)이 멀지 않은 곳에 따로 한 상탁(床卓)을 베풀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곳에 견주어 방울을 흔들고 북을 쳐서 설만(褻慢)하고도 무엄하였으니, 하늘에 계신 선왕(先王)의 영(靈)을 욕되게 하고, 전하께서 선조를 받드는 덕에 누를 끼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궁임(宮任)·무녀(巫女)를 가두어 중률(重律)로 다스리도록 명하셔서, 듣기에 놀랍고 의혹되는 것을 풀어 주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신사는 매우 괴탄(怪誕)한 것이니, 내가 알고 모르는 것은 거론할 일이 아니다. 무녀는 해조(該曹)를 시켜 정배(定配)하게 하고, 궁임은 종중 과죄(從重科罪)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궁지(宮趾)에서의 음사(淫祀)를 내간(內間)에서 지휘한 일이 있었다면, 마땅히 그 실상을 분명히 말하고, 경개(更改)하는 뜻을 혼쾌하게 보여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간에서 지휘하지 않았으나, 무녀(巫女)의 무리가 망령되게 스스로 가탁하였다면, 또한 마땅히 그 죄를 엄중히 핵실(覈實)해서 들은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 주어야 하는데, 성교(聖敎) 가운데, ‘내가 알고 모르는 것은 거론할 것이 아니다.’ 한 것은 매우 명백하지 못한 것이었다. 궁례(宮隷)와 무녀들 또한 엄중하게 핵실하지 않은 채 곧바로 과죄하게 하고는 비지(批旨)를 내리니, 인정(人情)이 모두 놀라고 의혹하였다. 이번 음사(淫祀)는 혹 내간(內間)에서 진실로 참여하여 아는 꼬투리가 있는데, 임금이 엄하게 금지하지 않은 채 버려두고 말았으므로, 대신(臺臣)의 바른 말을 듣고서 도타이 대하는 분부를 내리기는 하였으나, 이이(訑訑)028) 한 기색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듯하다. 대저 잘못이 있을 때나 고칠 때나 사람들이 다 알게 하는 것은, 진실로 밝은 임금의 성절(盛節)인데, 임금이 이 의리에 있어서는 번번이 용감히 고치는 아름다움이 모자라니, 근심스럽고 한탄스러움을 금할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1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사학(史學)
- [註 028]이이(訑訑) : 자득(自得)하는 모양.
○持平李世載上疏曰:
昨見有累十人馬, 連亘道路, 問之則以爲: "明惠公主房宮人, 承大內分付, 宰牛備需, 設神祀於豐壤宮趾, 二日乃罷, 其所費用, 極豐而侈。" 當此僵尸盈路之日, 可作千百人累日之糧, 而終歸妖巫之囊橐, 遠近觀瞻, 莫不咨嗟。 夫宰牛神祀, 俱是國禁, 必不令宮人犯之。 此殿下所不知, 而抑或宮奴輩, 私自假托耶? 且以光陵寢園之不遠, 別設一卓, 指擬於不敢言之地, 揚鈴擊皷, 褻慢無嚴, 其辱先王在天之靈, 累殿下奉先之德, 爲如何哉? 乞命囚禁宮任、巫女, 繩以重律, 以解聽聞之駭惑。
答曰: "神祀是何等怪誕, 則予之知不知, 非擧論之事也。 巫女令該曹定配, 所任從重科罪。"
【史臣曰: "宮址淫祀, 內間果有指揮之事, 則所當明言其實狀, 快示更改之意。 如非內間指揮, 而巫女輩妄自假託, 則亦宜嚴覈其罪, 以解聽聞之疑, 而聖敎中, 予之知不知, 非擧論之事云者, 甚不明白。 宮隷及巫女等, 亦不嚴覈, 直令科罪, 批旨之下, 人情莫不駭惑。 今玆淫祀, 意者或自內間, 實有與知之端, 而上不嚴禁, 任之而已, 及聞臺臣之法言, 雖下優假之敎, 而自不覺於訑訑之色耶? 夫過也更也, 人皆見之, 此固明主之盛節, 而上於此義, 每欠勇改之美, 可勝憂嘆?"】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1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