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현에 최치원을 향사하고 정극인 등을 배향하게 하다
전라도의 유생(儒生) 유지춘(柳之春) 등이 태인현(泰仁縣)에 최치원(崔致遠)을 향사(享祀)하고 신잠(申潛)을 합향(合享)하며, 정극인(丁克仁)·송세림(宋世琳)·정언충(鄭彦忠)·김약묵(金若默)·김관(金灌)을 배향(配享)하고, 은액(恩額)을 내려 원우(院宇)를 꾸미게 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소(疏)를 예조(禮曹)에 내리자, 예조에서 거듭 설치하는 유례가 아니므로 사액(賜額)을 윤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니, 윤허하였다. 대개 최치원·신잠은 이 고을의 수령(守令)이었기 때문이고, 정극인 이하 5인은 이 고장의 어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최치원은 논할 만한 학문은 없으나, 이미 공자(孔子)의 사당의 곁에 배향되는 데에 끼었으니, 숭상하여 보답하는 사전(祀典)이 혹 외람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잠에 이르러서는 기묘년008) 현량과(賢良科)의 천거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학문과 행실이 매우 현저하지는 못하였으며, 정극인 이하는 명성(名聲)이 더욱 부족하였다. 만약 사향(祠享)하려면 다만 향선생(鄕先生)을 제사(祭社)하는 뜻으로 사사로이 숭봉(崇奉)하는 것이 가할 따름인데, 이로써 조정에 은액을 내려 주기를 청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극히 외람되다. 더구나 그 소사(疏辭)에 신잠 등 여러 사람에 대하여 선정신(先正臣)이라 칭하기까지 한 것은 더욱 지극히 우스운데, 정원(政院)에서 흐릿하게 봉입(捧入)하였고, 해조(該曹)에서는 또 그 말에 굽혀 따라서 사전(祀典)이 엄하지 않게 하였으니, 통탄스러움을 금할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407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註 008]기묘년 : 1519 중종 14년.
○全羅道儒生柳之春等, 請於泰仁縣, 享祀崔致遠, 以申潜合享, 配以丁克仁、宋世琳、鄭彦忠、金若默、金灌, 頒下恩額, 以實院宇。 疏下禮曹, 禮曹謂非如疊設之比, 宜許賜額, 許之。 蓋以致遠、潜, 爲本縣邑宰, 而克仁以下五人, 爲鄕賢也。 致遠雖無學術之可論, 旣廁孔廡之亨, 則崇報之典, 容或不濫, 至於申潜, 雖登己卯賢良之薦, 學行未甚著顯, 克仁以下, 尤乏名稱。 如欲祠享, 只可以鄕先生祭社之意, 私自崇奉則可耳, 至以此請宣恩額於朝, 猥雜極矣。 況其疏辭, 至稱先正臣於潜等諸人, 尤極可笑, 而政院矇然捧入, 該曹又曲循其言, 使祀典不嚴, 可勝歎哉?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407면
- 【분류】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