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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29권, 숙종 21년 10월 4일 계사 1번째기사 1695년 청 강희(康熙) 34년

홍문관에서 조적의 모흠과 대책 등에 대하여 진차하다

홍문관(弘文館)에서 응지(應旨)하여 진차(陳箚)하기를,

"근래에 경연(經筵)이 점점 드물어져서, 신 등이 용안(龍顔)을 우러러뵙지 못한 지가 이미 월여(月餘)입니다. 어찌 와내(臥內)349) 에 끌어들여 혹 경의(經義)를 토론(討論)하며 혹 시사(時事)를 강문(講問)하여서, 덕(德)에 나아가고 업(業)을 닦는 보익(輔益)에 이바지하지 않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조적(糶糴)의 포흠(逋欠)이 부호(富豪)한 집에 많이 있는데도, 전번에 한 외관(外官)의 진소(陳疏)로 인하여 제도(諸道)의 포흠을 모두 감하여 문득 누만 석(累萬石)의 군향(軍餉)을 잃었으니, 나라를 운영하는 데 오활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는 아무런 단서(端緖)도 없이 조세(租稅)를 견감(蠲減)하고 부역(賦役)을 면제하여 백성을 위안(慰安)시키는 정사를 베풀었는데, 이제 재정(財政)이 다하고 백성이 곤궁하여진 뒤에 미쳐, 명년 봄의 진휼(賑恤)할 계책을 생각하여 그릇 경오년350)신미년351) 의 구례(舊例)를 따라 빈사(濱死)352) 의 백성에게 침징(侵徵)을 가(加)하니, 그 또한 생각하지 않음이 너무 심합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전세(田稅)의 미두(米豆)를 또한 마땅히 양감(量減)하여, 곤궁한 백성에게 일분(一分)의 혜택(惠澤)이라도 베풀어야 합니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무록관(無祿官)353) 의 선상(選上)은 전에 있어서는 변통(變通)의 거조(擧措)가 없었으나, 지난번에 탁지(度支)354) 의 신하가 별달리 건의(建議)하여 일체로 늠료(廩料)를 반급(頒給)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충신(忠信)의 도리를 하는 데 족하지 못하고, 실로 절약의 본의(本意)가 아닙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근시(近侍) 중에서 재능(才能)과 성망(聲望)이 있는 자를 극히 가려 8도(八道)에 나누어 보내어, 애통(哀痛)의 교서(敎書)를 선포(宣布)하여서 곤궁한 백성으로 하여금 그 생업에 편안케 하고, 또한 내탕금(內帑金)을 하사(下賜)한 성대한 뜻으로써 효유(曉諭)하여 부호(富戶)로 하여금 이를 본받아 그 이웃을 구제하게 하며, 각읍(各邑)의 불치 불법(不治不法)의 우심(尤甚)한 자를 두루 염탐(廉探)하여 계문(啓聞)케 한다면, 일거 양득(一擧兩得)이 될 수 있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서북 지방의 백성에게 우리의 지경 안에서 채삼(採蔘)을 허락한다면, 다만 백성을 구제하는 실혜(實惠)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변방을 굳게 하는 한 방도(方途)가 될 수 있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조제(調劑)의 계책은 오직 전하의 용사(用捨)가 한결같이 지극히 공정(公正)한 도리에서 나옴에 있습니다. 장희재(張希載)를 아직도 복주(伏誅)하지 않음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처치(處置) 중에 크나큰 과오(過誤)로서 논의(論議)의 격화(激化)됨이 실로 이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속히 양사(兩司)의 계청(啓請)을 윤허하신다면, 스스로 서로 믿어선 진정(鎭定)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조진(條陳)355) 의 일은 마땅히 해사(該司)로 하여금 각별히 채납(採納)하여 시행케 하겠다. 말단(末段)의 일은 여러 번 나의 뜻을 다 효유(曉諭)하였다."

하였다. 이 뒤에 좌의정(左議政) 유상운(柳尙運)이 앞서 말한 바, 여러 조목이 시행하기 어려움이 있는 뜻으로써 진달하여 시행치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9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재정-역(役) / 재정-잡세(雜稅)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사법-행형(行刑) / 구휼(救恤)

  • [註 349]
    와내(臥內) : 침실.
  • [註 350]
    경오년 : 1690 숙종 16년.
  • [註 351]
    신미년 : 1691 숙종 17년.
  • [註 352]
    빈사(濱死) : 거의 죽게 됨.
  • [註 353]
    무록관(無祿官) : 녹봉이 없는 벼슬.
  • [註 354]
    탁지(度支) : 호조.
  • [註 355]
    조진(條陳) : 조목(條目)을 들어서 진달함.

○癸巳/弘文館應旨陳箚曰:

近來經筵漸至疎間, 臣等不得仰瞻玉色, 已月餘矣。 何不引入臥內, 或討論經義, 或講問時事, 以資進修之益乎?

又言:

糶糴之逋欠, 多在豪右之家, 而頃因一外官之陳疏, 竝減諸道逋欠, 遽失累萬軍餉, 謀國之疎迂, 有如是者。 前夏無他端, 而蠲租除役, 以爲慰悅之政, 而及今財竭民窮之後, 爲慮明春賑資之策, 膠守庚辛舊例, 侵徵濱死之民, 其亦不思之甚矣。

又言:

田稅米豆, 亦宜量減, 以爲窮民一分之惠。

又言:

無祿官之選上, 在前無變通之擧, 而向者度支之臣, 別爲建白, 一體頒料, 此未足爲忠信之道, 而實非節損之本意也。

又言:

極擇近侍中有才能聲望者, 分送八道, 播告哀痛之敎, 使窮民安其生業, 亦諭以發帑之盛意, 令富戶有所觀感而濟其隣里, 遍廉各邑不治不法之尤甚者, 許令啓聞, 則可以一擧而兩得矣。

又言:

西北之民, 許以我境採蔘, 則不但爲救民之實惠, 亦可爲固圉之一道也。

又言:

調劑之策, 惟在殿下用捨, 一出於大公至正之道也。 至於希載之尙不伏法, 固處置中失宜之大者, 而論議之轉激, 實由於此。 亟允兩司之請, 則自可至於交孚鎭定之域矣。

答曰: "條陳之事, 當令該司, 各別採施, 而末段事, 屢悉予意矣。" 是後左議政柳尙運, 以所陳諸條有難施行之意陳達, 勿施。


  •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9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재정-역(役) / 재정-잡세(雜稅)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사법-행형(行刑)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