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참판 이여가 시골에 있으면서 재생과 주진의 일로 상소하다
이조 참판(吏曹參判) 이여(李畬)가 시골에 있으면서 상소하기를,
"금년 5월의 가뭄과 6월의 비가 진실로 번갈아 경운(耕耘)을 해치고 7월에 지루한 장마가 겨우 걷히자 몹쓸 바람이 연거푸 불었으며, 이에 이어 서늘한 날씨가 서리 뒤의 기상(氣象)과 같아서 드디어 가을 절기를 이루었으니, 들판에 있는 백곡(百穀)이 혹은 싹만 자라다가 그치고 혹은 이삭이 나오는 데 그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소연(蕭然)하기가 대체로 모두 이와 같습니다. 아! 신해년266) 의 기근(飢饉)을 어찌 차마 다시 말하겠습니까? 팔로(八路)의 적자(赤字)267) 가 거의 사망(死亡)하여 길 위에 굶어 죽은 시체가 서로 즐비하였고, 황폐한 촌락(村落)이 텅 비어서 실로 병혁(兵革)의 화(禍)보다도 심함이 있었습니다. 오직 현고(顯考)268) 께서 지성(至誠)으로 애휼(愛恤)하사 내고(內庫)의 저축과 어선(御膳)의 지공(支供)에서부터 백관(百官)의 봉록(俸祿)과 군문(軍門)의 양향(糧餉)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아끼지 않으심을 힘입어서 억만(億萬)의 목숨을 건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백성이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작년에 기호(畿湖)의 농사가 크게 흉년들기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도적이 자행(恣行)하여 도로(道路)가 거의 통행되지 못하였고, 굶주림이 심하면 늙은이는 구렁텅이에 쓰러지고 젊은 사람은 도둑질하는 것이 필연(必然)의 형세(形勢)인데 장차 누가 이를 금하겠습니까? 이것이 녹림(綠林)·홍건(紅巾)269) 의 말미암아 일어나는 바이니, 신은 생각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서늘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모름지기 군신 상하(君臣上下)가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를 마치 화란(禍亂) 창양(搶攘)의 즈음에 있는 것같이 하여, 무릇 상공(上供)270) 이하로부터 궁부(宮府) 대소(大小)의 일체의 수용(需用)을 상규(常規)에 구애받지 말고 절실하게 재절(裁節)을 더하여서 1년의 조도(調度)의 수를 줄이고, 또 각 아문(衙門)의 전곡(錢穀)의 현존(現存)하는 것을 통계(通計)하여 옮겨 경비(經費)에 보충하여 조세(租稅)의 수입을 대신케 하소서. 요컨대, 척포(尺布)·두속(斗粟)도 재해를 입은 백성에게서 나옴이 없게 하고, 위졸(衛卒)의 상번(上番), 군병(軍兵)의 조련(操鍊)과 대비(大比)271) 의 시사(試士)와 연례(年例)의 초정(抄丁) 등 무릇 백성의 노요(勞擾)와 미비(靡費)를 가져오는 것은 경중(輕重)을 논할 것 없이 한결같이 모두 정파(停罷)하며, 중외(中外)에 밝게 알려 무마(撫摩)하고 안집(安集)하여서 그 전리(田里)를 떠나가지 말게 하고, 미리 곡식을 거두어 모으는 대책과 이를 옮기는 정사를 강구하여 춘진(春賑)의 자료로 삼으며, 토착(土着)의 농사짓는 무리에게는 건량(乾糧)을 주어 본업(本業)을 잃지 않게 한다면, 비록 힘이 넉넉치 못하여 백성이 굶주림을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거의 국가에서 불쌍히 여기어 근심하는 덕의(德意)를 알게 하면 서로 이끌어 원망하고 배반하여 난동(亂動)하기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재이(災異)의 일어남이 이미 다스려지거나 이미 어지러워진 뒤에 있지 않고 항상 장차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려 할 때에 보였으니, 재이가 있어서 능히 두려워하면 재이가 변하여 상서(祥瑞)가 되고 오직 재이가 있어도 두려워할 줄 알지 못한 연후에 난망(亂亡)이 이에 따르는 것입니다. 인군(人君)은 한 마음으로써 상제(上帝)께 대응(對應)하여야 하니, 현사(賢邪) 진퇴(進退)의 판단과 시비(是非) 여탈(與奪)의 분별이 한 생각에 근원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천리(天理)·인욕(人慾)과 공사(公私)의 분변(分辨)이 기미(幾微)의 움직임은 지극히 은미(隱微)하나 감응(感應)의 나타남이 매우 밝아 영향(影響)이 서로 따라서 상서와 재앙이 이로써 이루어지니, 만약 드디어 난망에 이른다면 곧 하늘로 더불어 서로 끊어진 것입니다. 옛날 성왕(成王) 때 언화(偃禾)의 일어남272) 과 태무(太戊) 때 상곡(祥穀)의 말라 죽는 일273) 이 그 가리울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다시 원하건대, 전하(殿下)께서는 더욱 살피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나라를 근심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진계(陳戒)하는 말이 매우 절실하니, 내가 가상히 여긴다. 체념(體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재생(裁省)·주진(賙賑) 등 일에 대한 것은 이미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급속히 강구(講究)케 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9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구휼(救恤)
- [註 266]신해년 : 1671 현종 12년.
- [註 267]
적자(赤字) : 임금의 치하에서 그 은택을 받는 백성.- [註 268]
현고(顯考) : 숙종의 부왕(父王)인 현종을 가리킴.- [註 269]
녹림(綠林)·홍건(紅巾) : 녹림과 홍건 모두 도적의 이칭(異稱)임.- [註 270]
상공(上供) : 임금에게 물품을 공납(供納)함.- [註 271]
대비(大比) : 대비과(大比科).- [註 272]
성왕(成王) 때 언화(偃禾)의 일어남 :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을 맞이하려고 교외(郊外)에 나가니, 비가 오면서 반대쪽으로 바람이 불어 넘어졌던 벼가 모두 일어났다는 고사. 《서경(書經)》 주서(周書) 금등편(金縢篇)에 보임.- [註 273]
태무(太戊) 때 상곡(祥穀)의 말라 죽는 일 : 은(殷)나라 태무(太戊) 때 박(亳) 땅에 상상(祥桑)·상곡(祥穀)이 함께 아침에 나서 날이 저물 때면 큰 아름드리가 되는데, 이척(伊陟)이 말하기를, ‘요사한 것은 덕(德)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니, 덕을 닦으라’고 하므로, 태무가 선왕(先王)의 정사를 닦은 지 2일 만에 상상이 말라 죽었다는 고사.○吏曹參判李畬, 在鄕上疏曰:
今年五月之旱、六月之雨, 固已交病於耕耘, 而七月淫潦纔收, 惡風連吹, 繼以日氣寒澟, 便同霜後之象, 遂以成秋, 百穀之在野者, 或苗而止, 或秀而止, 滿目蕭然, 大抵皆是。 嗚呼! 辛亥之飢, 尙忍復言哉? 八路赤子, 死亡殆盡, 道殣相枕, 墟落空虛, 實有甚於兵革之禍。 惟賴顯考至誠憂勞, 自內庫之儲, 御膳之供, 以至百官俸祿, 軍門糧餉, 不少留靳, 以濟億萬之命。 不然則民其靡孑遺矣。 昨歲畿湖之農, 不至大侵, 而盜刦恣行, 道路幾於不通。 飢餓之甚, 老顚壯盜, 必然之勢也, 將誰禁之? 此綠林、紅巾之所由起也。 臣思之至此, 不覺心寒。 必須君臣上下, 警懼惕厲, 如在禍亂搶攘之際, 凡自上供以下, 宮府大小, 一切需用, 勿拘常規, 痛加裁節, 以縮一年調度之數, 又通計各衙門錢穀之見存者, 移補經費, 以代租度之入。 要使尺布斗粟, 無出於被災之民, 至於衛卒上番、軍兵操鍊、大比試士、年例抄丁等, 凡所以致民勞擾糜費者, 毋論重輕, 一竝停罷, 明詔中外, 使之撫摩安集, 勿令去其田里, 預講聚穀之策、利粟之政, 以爲春賑之資, 而土着作農之類, 則皆給乾糧, 俾不失業, 則雖力所未給, 民不免餓, 而庶幾知國家惻怛憂念之德意, 不至相率怨背而爲龍蛇耳。 自古災異之作, 不在已治已亂之後, 而常見於將治將亂之際。 有災而能懼, 則災轉爲祥, 惟有災而不知懼然後, 亂亡隨之。 人君以一心對越上帝, 賢邪進退之判, 是非與奪之分, 莫不原於一念。 理慾公私之辨, 幾微之動至隱, 而感應之機甚彰, 影響相隨, 祥祲以之。 若遂至於亂, 則乃與天相絶矣。 昔成王偃禾之起, 太戊祥穀之枯, 其不可揜如此。 更願殿下加省焉。
上答曰: "憂愛陳戒, 言甚切實, 予用嘉尙。 可不體念, 而凡係裁省、賙賑等事, 已令廟堂, 急速講究矣。"
-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9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구휼(救恤)
- [註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