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영정을 강화부로 내려 보내다
임금이 중관(中官)256) 두 사람에게 명하여 어용(御容)257) 을 뫼시어 받들고 강화부(江華府)로 내려가게 하였으니, 외조(外朝)258) 에서는 이를 알지 못하였다. 강화 유수(江華留守) 김구(金構)가 하리(下吏)의 전하는 바로 인하여서 비로소 이를 듣고 급히 관리(官吏)를 거느려 나루머리에서 공경히 맞이하여 본부(本府)의 객헌(客軒)에 권봉(權奉)하고, 드디어 치계(馳啓)하기를,
"어용의 봉안(奉安)은 지극히 엄숙하고 지극히 경건(敬虔)하여야 합니다. 비록 성상(聖上)이 스스로 보는 뜻으로도 선대 임금의 수용(睟容)259) 과는 간격(間隔)이 있다고 하나, 한 번 받들어서 궁문(宮門)을 나온 뒤에는 스스로 응당 거행하여야 할 절목(節目)이 있는데도, 이제 중관을 시켜 한 척의 배 위에 봉안(奉安)케 하여서 의위(儀衛)가 간솔(簡率)하니, 신은 그윽이 성명(聖明)을 위하여 이 거조(擧措)를 애석히 생각합니다. 빌건대, 유사(有司)에게 명하시어 의절(儀節)을 마련(磨鍊)하여 급속히 거행하소서."
하고, 또 말하기를,
"본부의 객헌이 협루(狹陋)하고 시끄러워 본디 어용을 봉안할 곳이 아니며, 영전(影殿)의 시설(施設)은 공역(工役)이 반을 넘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영전의 역사(役事)를 마쳐서 봉안하는 곳으로 하게 하고 그 전(殿)을 이름하여 ‘장녕(長寧)’이라 하였다. 뒤에 대신(大臣)이 참봉(參奉) 두 사람을 차송(差送)하여 수직(守直)케 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9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註 256]중관(中官) : 내시.
- [註 257]
○上命中官二人, 陪奉御容, 下往于江華府, 外朝莫之知也。 江華留守金構, 因下吏所傳而始聞之, 急率官吏, 祗迎于津頭, 權奉于本府客軒, 遂馳啓曰: "御容奉安, 至嚴至敬。 雖以聖上自視之意, 有間於先朝晬容, 一自奉出宮門之後, 則自有應行節目, 而今乃使中官, 奉安于一船之上, 儀衛簡率, 臣竊爲聖明惜此擧措也。 乞命有司, 磨鍊儀節, 急速擧行。" 且言: "本府客軒, 狹陋喧卑, 本非可以奉安御容之所, 而影殿之設, 功役過半矣。" 上命訖影殿之役, 以爲奉安之地, 名其殿曰長寧。 後大臣請差送參奉二人, 使之守直, 從之。
- 【태백산사고본】 31책 2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9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註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