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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27권, 숙종 20년 11월 7일 신미 4번째기사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김호가 놀이 구경을 경계하는 상소를 올리다. 김호의 기풍과 임금의 덕을 찬양한 사론

하루 전에 양사(兩司)에서 대각(臺閣)에 나아가 소장(疏章)을 이미 올렸는데도 비지(批旨)나 분부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았다. 혹자의 말이,

"임금이 바야흐로 후원(後苑)에 나아가 신급제(新及第)들이 창악(倡樂)하는 놀이를 관람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하므로, 김호(金灝)가 듣고서 상소하여 간하기를,

"신이 정묘년512) 가을에 외람되게도 본직(本職)에 있을 때 거가(車駕)를 따라가 알성(謁聖)하고서, 급제(及第)한 사람들을 창방(唱榜)하고 환궁(還宮)하실 적에 창우(倡優)의 무리들이 다투어 앞으로 나서기에, 신이 삼사(三司)의 관원들과 함께 연(輦)을 가로막으며 진언(進言)했던 것을 전하(殿下)께서도 또한 기억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어제 신이 일찍 대각에 나아갔는데, 비지(批旨)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날이 저물어 신이 그윽이 두려워하며 놀라고 당황하였는데, 물러나와서 들으니, 전하께서 후원의 반궁(泮宮)길을 내려다보는 곳에 임하시어 신은(新恩)들이 모여서 넓게 차린 잡다한 놀이를 온 종일 구경하시느라 거의 돌아오기를 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정묘년의 연 앞에서의 일과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513) 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신이 들으니, 전하께서 일찍 동쪽 담장 안에다 한길을 내려다볼 수 있는 누각(樓閣)하나를 새로 세우게 하시었는데, 며칠 안에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함부로 생각하기를, ‘전하께서 이를 세움은 대개 놀이하며 구경하기 위한 것이다.’고 했었는데, 오늘 임어(臨御)하여 관람하신 것이 마침 서로 맞아떨어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군하(群下)들의 의심을 풀 수 있겠습니까? 대관(臺官)에게 대한 비답을 오래 지체한 것이 과연 이런 일 때문이라면, 신들이 군부(君父)에게 경시(輕視)받은 것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성상의 덕에 누가 되고 대중이 듣고 놀람은 어찌할 것입니까? 소공(召公)이 말하기를, ‘소소한 행신에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가 된다.’라고 하였고, 정백자(程伯子)가 저물녁에 돌아오다가 사냥하는 것을 보고는 그만 자신의 마음을 걷잡기 어려움을 느꼈으니, 진실로 전하께서 마땅히 체념(體念)하셔야 할 바 입니다. 만일 전하께서 급히 그 누각을 헐어버릴 수 있다면 나라 사람들의 의혹을 풀고 성상의 덕에 광채가 더해지게 될 것이니,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하니, 임금이 비답하기를,

"구경에 빠져 비답을 지체했다는 말은 비록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한 것이기는 하지만,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여 경계를 진달하였음은 옛사람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보고서 아름답게 여기며 감탄하였으니, 체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이미 잘못임을 깨달았기에 강직한 말로 여기며 받아들인다. 임금과 신하의 사이에는 성신(誠信)이 귀중한 것이니, 어찌 가식(假飾)을 용납하겠는가? 만일 나아가 구경하려 했다면 어찌 반드시 집을 세운 다음에야 하겠는가? 종전에 반궁(泮宮)에 친림(親臨)했다가 연(輦)이 이 길을 지나왔고, 대궐 안에서 때로 더러 나가서 우모(羽旄)514) 의 아름다움을 보기도 하였는데, 지세(地勢)가 너무 드러나 자못 내외(內外)의 구별이 없었으므로, 지난해 두어 칸을 세우게 된 것으로서, 진실로 이것을 위한 것이지 놀이하며 구경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닫아 둔 것은 귀와 눈으로 듣고보고 한 것이기에 속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고, 이어 호피(虎皮)를 내리며 이르기를,

"내가 가상하게 여긴 뜻을 표하는 것이다."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호는 할 말을 다하는 기풍(氣風)이 있었고 임금은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덕이 있었으니, 근세(近世)에 보기 드문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5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역사-사학(史學)

  • [註 512]
    정묘년 : 1687 숙종 13년.
  • [註 513]
    완물상지(玩物喪志) :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팔려 본심(本心)을 잊어버림.
  • [註 514]
    우모(羽旄) : 깃발.

○前一日, 兩司詣臺, 章已上, 批旨久不下, 或言上方御後苑, 臨觀新及第倡樂之戲, 故如此。 掌令金灝聞之, 上疏諫曰: "臣於丁卯秋, 忝叨本職, 隨駕謁聖, 及其唱第還宮也, 倡優之屬, 競進於前, 臣與三司之官, 遮輦進言。 殿下亦嘗記之否乎? 昨日臣早詣臺, 批旨不下, 及於日暮, 臣竊惶惑, 退而聞之, 殿下出御後苑, 壓臨泮宮之路, 新恩聚集, 廣張雜戲, 耽玩竟日, 殆至忘返云。 此非如丁卯輦前之比, 不幾於玩物喪志乎? 且臣聞殿下, 曾創一閣於東垣之內, 俯瞰大道, 不日成之。 都人妄度皆以爲: ‘殿下之設此, 蓋爲遊賞也。’ 今日臨觀, 適與相符, 何以釋群下之疑乎? 臺批久留, 果由此矣, 則臣之見輕於君父, 固不足言。 其於累聖德而駭衆聽, 何哉? 召公之言曰: ‘不矜細行, 終累大德。’ 程伯子暮歸觀獵, 忽覺此心之難操, 誠殿下之所當體念也。 殿下若能亟毁此閣, 則可以解國人之惑, 可以增聖德之光, 願殿下留神焉。" 上批曰: "耽玩留批之說, 雖不諒予心, 而忠愛陳戒, 無愧古人, 看來嘉歎, 可不體念? 予旣悟其失而納讜言矣。 君臣之間, 貴在誠信, 寧容假飾? 如欲臨觀, 則何必建屋而後爲之哉? 從前親臨泮宮, 輦過玆路, 自內時或出御, 以瞻羽旄之美, 而地勢淺露, 太無內外之別, 頃年構成數間, 實爲是而非遊賞也。 長時封鎖, 耳目所及, 非可誣也。" 仍下虎皮賜之曰: "表予嘉尙之意。"

【史臣曰: "有盡言之風。 上有納諫之德, 近世所希覯也。】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5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