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에 나가 서원의 설치·경기 군현에 제역의 금지 등 국정을 논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함께 입시(入侍)하여 아뢰기를,
"8월부터 계속해서 천둥하고 번개하는 이변(異變)이 있고, 제도(諸道)의 장문(狀聞)이 또한 끊이지 않으니, 이 어찌 소소한 근심거리이겠습니까? 혹은 사방에 구언(求言)하기도 하고 혹은 공경(公卿)을 불러 찾기도 했는데, 고사(故事)에도 그러했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수성(修省)하는 실속에 힘쓰시고, 이어 비망기(備忘記)를 내리시어 상하(上下)가 서로 수성해야 한다는 뜻을 보이신다면 조정에 있는 신료(臣僚)들이 어찌 그대로 받들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마땅히 자신에게 죄를 돌리고, 구언도 하겠다."
하였다. 박세채가 아뢰기를,
"서원(書院)은 향사(鄕祠)와는 다른 것인데 그 사람이 어떠한지를 막론하고 모두 서원이라고 하며 사액(賜額)을 청하여 군현(郡縣)들의 큰 폐습이 되었으니, 마땅히 재량(裁量)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큰 명현(名賢)이 아닌데도 겹쳐 설치하는 것은 금지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특진관 김진귀(金鎭龜)가 아뢰기를,
"김석주(金錫胄)는 힘을 다해 토적(討賊)했는데, 간흉(奸凶)들에게 모함을 받았으니 마땅히 이상진(李尙眞)의 예와 같이 사제(賜祭)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나도 또한 그런 뜻이 있었으니, 근시(近侍)를 보내 사제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기사년474) 의 반역 오시수(吳始壽)의 옥사(獄事) 때에 여러 역관(譯官)들이 국문(鞫問)받았지만 말이 헷갈리지 않았습니다. 김기문(金起門)은 죽지 않아 이번에 귀양도 풀리었고 또한 이미 환직(還職)도 되었습니다마는, 오직 변이보(卞爾輔)는 형장(刑杖)에 죽었고, 또 오상유(吳尙游)는 책시(磔尸)475) 의 화를 입었으니, 마땅히 김기문의 전례대로 환직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우(李𦸲)가 강화(江華)의 투서(投書)를 보자 김석주에게 신보(申報)한 것이 생각하건대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김석주와 친근한 사람인 것 때문에 그 당시의 조정 의논이 혹독한 형벌을 처하게 한 것입니다. 기사년에 또 복구했던 관작을 빼앗아 버렸으니, 이는 그전의 명령을 도로 거두시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승지 김홍복(金洪福)이 아뢰기를,
"정제선(鄭濟先)은 죄가 크기는 합니다. 그러나 귀양살이 10년 동안 어미가 죽었고, 아비도 또한 늙어 나이 70이 넘었습니다. 마땅히 얼마쯤의 틈을 내리시어 어미의 무덤에 가서 곡도 하고 이어 그의 아비도 만나보게 하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박세채에게 물었다. 박세채가 아뢰기를,
"정제선의 아들이 여러 차례 상언(上言)했었습니다. 옥정(獄情)의 여하를 막론하고 정리(情理)가 진실로 측은하게 되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김홍복의 말대로 윤허했다. 시독관(侍讀官) 이건명(李健命)이 아뢰기를,
"경기(京畿) 백성은 군현(郡縣)들의 제역(除役) 폐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개 전세(田稅)의 대동(大同) 이외에 땔나무·꼴·꿩·닭·얼음을 내어 공장(供上)하는 것이 준례인데, 기름·꿀·종이·물고기로 대신하는 것을 ‘제역’이라고 합니다. 제역이 조금 편리하기 때문에 관원이나 백성이 다 같이 이롭게 여기기는 하지만, 그 제역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곤궁하게 되니 마땅히 금지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에 명하여 품처(稟處)하도록 하고, 드디어 혁파했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5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재정-잡세(雜稅)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御晝講, 左議政朴世采同侍言: "自八月續有雷電之異, 諸路狀聞, 亦不絶, 此豈細憂哉? 或求言四方, 或延訪公卿, 故事然也。 願殿下, 先懋修省之實, 仍下備忘, 示上下交修之意, 在廷臣僚, 豈不奉承乎?" 上曰: "予當罪已求言。" 世采曰: "書院與鄕祠異, 而勿論其人如何, 皆稱書院, 請賜額。 大爲郡縣之弊, 宜有裁量, 且禁非大名賢而疊設者。" 上可之。 特進官金鎭龜言: "金錫冑竭力討賊而爲奸凶所誣, 宜用李尙眞例祭之。" 上曰: "予亦有此意, 其遣近侍賜祭。" 又言: "己巳反吳始壽之獄, 諸譯被鞫,不貳其辭。 金起門得不死, 今赦其竄, 亦已還職, 惟卞爾輔, 死於拷掠。 又被吳尙游磔尸之禍, 宜視起門例還職。 李𦸲見江華投書, 報于金錫冑, 顧有何罪? 而以其爲錫冑所親, 故其時朝議, 置之酷刑。 及己巳, 又奪所復之爵, 此不可不追還前命。" 上竝從之。 承旨金洪福言: "鄭濟先罪大, 而然在謫十年, 母死父又老, 年過七十, 宜賜時月之暇, 使之歸哭母墳, 仍視其父。" 上詢世采。 世采曰: "濟先子屢上言, 勿論獄情如何, 情理固惻然。" 上遂可洪福之言。 侍讀官李健命言: "畿民困於郡縣除役之弊, 蓋田稅大同之外, 出薪芻雉雞氷以供之, 例也。 其以油蜜紙魚代之者曰: ‘除役。’ 除役稍便, 故吏民互爲利, 不除役者爲最困, 宜禁之。" 上命廟堂稟處, 遂罷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5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재정-잡세(雜稅)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