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 27권, 숙종 20년 8월 22일 정사 1번째기사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관학 유생 이기익 등이 송시열의 충절과 도봉 서원에 배향을 상소하다

관학 유생(館學儒生) 이기익(李箕翊) 등이 상소하기를,

"송시열(宋時烈)이 받은 모함을 남김없이 씻기는 했습니다마는, 기사년418) 의 상소 내용에 ‘병이 나자 비로소 책봉(冊封)했다.’는 말에 있어서는 성명(聖明)께서 아직도 통촉하지 못하시는 바가 있으므로, 청컨대 신들이 변명하겠습니다. 원소(原疏)에 ‘횡거(橫渠) 장자(張子)419) 가 후궁(後宮) 주씨(朱氏)철종(哲宗)을 탄생한 것을 듣고서는 매우 기뻐하니, 정자(程子)는 그의 공정과 충성을 아름답게 여겼고, 주자(朱子)여동래(呂東萊)420)한천편(寒泉編)421) 에다 표장(表章)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또한 어찌 다름이 있겠습니까? 지난해에 김수흥(金壽興)이 신에게 글을 보내 후궁께서 왕자(王子)를 낳은 경사를 알려주었기에, 신이 저도 모르게 기뻐하며 입에서 감탄이 터졌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송시열의 이 말은 진실로 천리(天理)의 정당함에서 나온 말이고, 글을 보내 서로 축하하였던 것은 본시 정자·장자·주자·여동래와 더불어 천 백년 뒤에도 꼭 들어맞는 일입니다. 국가를 체념(體念)하는 정성이 늙을수록 더욱 독실해진 것인데, 이를 국본(國本)을 요동하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여러 신하들이 위호(位號)를 정함은 너무 이르다.’고 했다는 말에 있어서도, 대개 철종(哲宗)은 10세에도 아직 번왕(藩王)이란 자리에 있다가, 신종(神宗)이 병이 나자 비로소 태자(太子)로 책봉(冊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에 가왕(嘉王)과 기왕(歧王) 둘의 혐오와 강박이 있었는데도 오히려 이러했었는데, 하물며 오늘날은 이러한 염려가 없는 때이겠습니까? 아, 이는 대개 여러 신하들의 본뜻을 밝히기도 하고, 간사한 말들이 마구 나오는 것을 통탄스럽게 여기는 데서 나오기도 한 말로서, 국가를 위한 생각과 국본(國本)을 위한 계책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삼진(三辰)422) 이 하늘에 역역하여 한결같은 마음이었음을 질언(質言)할 수 있는 것인데, 저들이 억지로 죄안(罪案)을 만들었으니 어찌 지극히 원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일에 내린 비망기(備忘記) 내용에 ‘옳지 않은 망발이라.’고 분부하신 것은 신들이 큰 천지에도 한스러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 시급히 삭제하고 고치도록 명하소서. 선정신(先正臣) 조광조(趙光祖)는 임금과 백성을 ·순(堯舜) 때처럼 만들려는 뜻이 있었는데, 남곤(南袞)심정(沈貞)이 화를 만들어 사림(士林)들이 원통함을 머금게 되었습니다. 지금 송시열의 학문과 도덕, 문장(文章)과 절의(節義) 및 화를 입은 상황은 조광조와 앞뒤로 똑같은 것이니, 마땅히 도봉 서원(道峰書院) 【양주(楊州)에 있는데 조광조를 합사하는 곳이다.】 에 배향(配享)하여 영구히 본보기를 삼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유현(儒賢)을 위한 신변(伸辨)이 명백하고 간절하다. 내가 이에서 과연 비망기에 다 한 말이 극진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상소 내용에 청한 일은 모두 시행하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4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역사-전사(前史)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418]
    기사년 : 1689 숙종 15년.
  • [註 419]
    장자(張子) : 장재(張載).
  • [註 420]
    여동래(呂東萊) : 여조겸(呂祖謙).
  • [註 421]
    한천편(寒泉編) : 《근사록(近思錄)》을 말함.
  • [註 422]
    삼진(三辰) : 해·달·별.

○丁巳/館學儒生李箕翊等上疏曰:

宋時烈之被誣, 昭雪無餘, 而己巳疏中, 有疾始冊之語, 聖明猶有所未燭者, 臣等請有以辨之, 原疏曰: ‘橫渠 張子, 聞後宮朱氏哲宗而喜甚, 則程子美其公忠。 朱子呂東萊, 表章於《寒泉》之編。’ 今日人心, 亦豈有異同哉? 去年金壽興走書, 報臣, 以後宮王子之慶, 臣不覺心抃而口噓也? 噫! 時烈此言, 實出於天理之正, 其所以走書相賀者, 自與, 同符於千百載之後, 體國誠悃, 老而彌篤, 此可謂動搖國本乎? 其曰: ‘諸臣有位號太早之說。’ 蓋哲宗十歲, 尙在藩王之位, 至神宗有疾, 而始冊爲太子, 時, 有 二王之嫌逼, 而猶如此, 況今日無此憂乎? 噫! 此槪出於明諸臣之本意, 而痛邪說之闖發, 無非爲國家慮, 爲國本計, 則三辰在上, 一心可質, 彼輩之勒成罪案, 豈非至冤乎? 前日備忘中, 敎之以不韙妄發, 臣等不能無憾於天地之大。 願殿下, 亟命刪改之也。 先正臣趙光祖, 有君民之志, 而構禍, 士林茹痛, 今時烈學問道德, 文章節義及其構禍之狀, 與光祖前後一揆, 宜使竝享于道峰書院 【在楊州所以祀趙光祖者。】 以爲百世矜式之地。"

上答曰: "爲儒賢伸辨, 明白懇至, 予於是, 果覺備忘措辭之未盡矣。 疏中所請, 竝賜施行。"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4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역사-전사(前史)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