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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27권, 숙종 20년 8월 6일 신축 2번째기사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좌의정 박세채가 해서 지방의 대동법 시행을 건의하다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차자를 올리기를,

"해서(海西) 일대는 국가의 근기(近畿)인데, 부역이 번다하고 무거워 민중들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더욱이 습속이 궁벽하고 누추하여 조정에 있는 이름 있는 사대부(士大夫)가 민간의 병폐를 위에 진달하기를,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가 진계(陳啓)하였듯이 한 경우가 없습니다. 방백(方伯)이나 수령(守令)들은 대개 모두가 구차하게 눈앞의 일만 하고 과감하게 변통하는 계책을 세우지 않으므로, 민생들의 곤궁과 폐해가 극도에 달했습니다. 신이 이 고장을 왕래한 지가 또한 거의 30년이나 되는데, 다른 여러 도에서 실시하는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개 그 법의 기원은 이이에게서 시작된 것인데, ‘해주(海州)는 1결(結)에 1두(斗)다.’라는 말을 혹자는 ‘주자(朱子)가 말한 「금곡(金谷)의 지출할 경비를 모두 계산하여 따져 보고서 균등하게 조절하여, 빈부(貧富)가 서로 동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한 글과 합치되니, 진실로 공법(貢法) 중에 좋은 규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선혜청(宣惠廳)을 두었음은 자못 우연히 한 것이 아니었고, 먼저 관동(關東)과 경기(京畿)에 시행했는데, 명칭은 달랐지만 실속은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호남(湖南)과 영남(嶺南)에도 미루어 시행하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민중들이 모두 신뢰(信賴)했으니, 이른바 대동법이 이것입니다. 지금 서북(西北)의 두 도(道)는 변방의 메마르고 거친 땅이어서 이 법을 시행하기 어렵지만, 이 밖의 5도에서는 바야흐로 모두 이익을 누리고 있는데 유독 해서(海西)만 그렇지 못합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북쪽에 가는 사신(使臣)의 수용(需用)은 진실로 경기(京畿)의 전례대로 선혜청에서 맞추어 주면 되지만, 이른바 별도로 청구하는 수백금(數百金)은 경기의 고을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도리어 처리하기 어려운 듯하다.’ 합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에 이는 오직 유사(有司)가 잘 요량해서 하기에 달린 것이어서, 혹은 특별히 더 넉넉하게 주거나 혹은 민간의 실정을 잘 살피어 처리한다면, 마땅히 편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양전(量田)하는 한 가지 일을 먼저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해주(海州)·평산(平山)·황주(黃州)·안악(安岳)의 큰 고을 넷은 이미 성안(成案)했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고을이어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올해의 농사는 비록 잘 여물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또한 이로 인해 드디어 폐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해(利害)가 대략 이와 같을 뿐입니다. 신이 삼가 수상(首相) 및 탁지(度支)의 신하와 상의해 보니 다행히도 이의(異議)하는 뜻이 없었고, 이번의 새 감사(監司) 김몽신(金夢臣)이 사람됨이 정밀하고 정확하여 세상 일에 마음을 두는 사람인데다 나이와 체력이 왕성하니, 반드시 맡아도 감당하지 못할 염려는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사폐(辭陛)할 때 특별히 탑전(榻前)으로 다가오도록 하여 그런 법을 시행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되, 백성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여기신다면 단정코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비답을 내려 아름답게 여기며 받아들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4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농업-양전(量田)

○左議政朴世采上箚曰: "海西一路, 爲國家近甸, 賦役煩重, 民不聊生, 況其俗僻陋, 無名士大夫立於朝, 可得以民瘼上徹, 如先正臣李珥陳啓之爲者? 方伯守令, 率多苟度目前, 不敢爲變通之計, 生民之困弊極矣。 臣之往來玆土, 亦幾三十年, 頗聞其恨, 不能與諸道通行大同之法, 蓋其法之源, 起於李珥, 海州一結一斗之說, 或者以爲, 有合於朱子所謂摠計金谷支費。 究考而均節之, 使其貧富不相懸之文, 誠貢法之良規也。 其間宣惠廳之設, 殊非偶然。 先施於關東ㆍ京畿, 名異而實無不同焉。 厥後湖南、嶺南, 無不爲之推行, 民皆賴之, 所謂大同法是也。 今西北兩路, 爲邊圉磽确之地, 難行此法, 自餘五道, 皆方享其利, 而獨海西不然, 議者多言, 北使之需, 固可依京畿例, 自宣惠廳準給, 而至如所謂別求請數百金, 非畿邑之所有, 却似難處, 然以臣慮之, 此惟在有司善爲商度, 或別加優給, 或深察民情而處之, 宜無不得其便, 最是量田一事, 不可不先行。 蓋四大邑, 旣已成案, 餘皆小邑而無難, 今年農事, 雖曰未稔, 亦不至於因此遂廢, 則利病大略, 如斯而已。 臣謹與首相及度支之臣相議, 幸無異指。 今者新監司金夢臣, 爲人精確, 留心世務, 年力又强, 必能任此而無不勝之患, 伏乞殿下, 於辭陛之時, 特令進前, 俾詢其法之可行與否, 以爲有益於民, 則斷而行之。" 上賜批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4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농업-양전(量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