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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26권, 숙종 20년 4월 11일 무인 3번째기사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예조에서 폐비가 별궁에 이처할 때의 의절을 계품하다

예조(禮曹)에서 폐비(廢妃)가 별궁(別宮)에 이처(移處)할 때의 의절(儀節)을 계품(啓稟)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유신(儒臣)을 시켜 품정(稟定)하라."

하였다. 홍문관(弘文館)에서 말하기를,

"신(臣)들이 전후의 사기(史記)를 상고하니, 한(漢) 무제(武帝) 때에 황후(皇后) 곽씨(郭氏)를 폐하여 장문궁(長門宮)에 살게 하고, 공봉(供奉)을 법과 같이 하였고, 황명(皇明) 선종(宣宗) 때에 폐후(廢后) 호씨(胡氏)청녕궁(淸寧宮)에 들어가 살았는데 진선(進膳)을 평상시와 같이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제후(諸侯)가 부인(夫人)을 내칠 때에는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부인의 예(禮)로써 행한다.’ 하였습니다. 이번 이처(移處)에 도종(導從)하는 의식 절차는 이것을 본떠 거행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묻기를,

"장문·청녕 두 궁은 금중(禁中)에 있었는가?"

하였다. 홍문관이 말하기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장문부(長門賦)에 ‘성남(城南)의 이궁(離宮)을 기약한다.’ 하였으니, 이것으로 미루면 별궁인 듯합니다. 선덕(宣德) 2년111) 에 태후(太后) 장씨(張氏)가 어진 호씨를 가엾이 여겨 청녕궁에 들어와 살도록 명하였으니, 이것으로 미루면 대내(大內)인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별궁에 이처하라는 명이 내려진 뒤에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묻게 하였더니, 사의(辭意)가 슬프고 뉘우치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여 사람을 감동시켰다. 내 오늘의 마음이 곧 옛 인선(仁宣) 【곧 송(宋) 인종(仁宗)과 명(明) 선종(宣宗)이다.】 두 임금의 마음이다."

하고, 다시 명하여 서궁(西宮)의 경복당(景福堂)에 들어와 살게 하고 공봉을 법대로 하게 하고 궁에 들어올 때에는 옥교(屋轎)를 쓰고 총관(摠管)과 군병이 의장(儀仗)을 들고 도종하는 따위 일은 참작하여 거행하게 하고, 또 해조(該曹)에 명하여 빨리 날을 가리게 하였다. 예조에서 말하기를,

"일기(日忌)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특별히 명하여 이튿날로 당겨 정하였다. 이때 분사(分司)를 두어 승지(承旨)·주서(注書)·병조(兵曹)·위장(衛將)·수문장(守門將)을 모두 차출하였다가 【총관·위장·수문장은 본제(本第)에서 직숙(直宿)하였다.】 경복당에 입어(入御)하여서는 다 폐지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99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註 111]
    선덕(宣德) 2년 : 1427 명 선종의 연호. 세종 9년.

○禮曹啓稟廢妃移處別宮時儀節。 上曰: "令儒臣稟定。" 弘文館言: "臣等考前後史記, 武帝時皇后陳氏, 廢處長門宮, 供奉如法。 皇 宣宗朝廢后胡氏, 入居淸寧宮, 進膳如常儀。 《禮》《雜記》曰: "諸候出夫人, 比至其國以夫人之禮行。" 今此移處, 導從儀節, 宜倣此擧行。" 上問: "長門淸寧兩宮, 在禁中耶?" 弘文館言: "司馬相如 《長門賦》曰: ‘期城南之離宮。’ 以此推之, 似是別宮。 宣德二年太后張氏, 憐胡氏之賢, 仍命入居于淸寧宮。 以此推之, 似是大內也。" 上曰: "移處別宮命下之後, 使人致問, 則辭意悽惋, 悔心殊切, 令人感動, 予今日之心, 卽古, 【卽宋 仁宗ㆍ明 宣宗。】 二君之心也。 更命入處于西宮景福堂, 供奉如法。 而入宮時, 內屋轎, 摠管及軍兵執仗導從等事, 參酌擧行, 亦命該曹斯速擇日。" 禮曹言: "有日忌。" 上特命進定期在翌日矣。 時設分司承旨注書兵曹衛將守門將, 竝已差除。 【摠管衛將守門將直宿于本第。】 而及入御景福堂, 皆罷之。


  • 【태백산사고본】 28책 26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99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