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공의 《소학》에 대해 친히 지은 서문의 내용
임금이 친히 주문공(朱文公)의 《소학(小學)》에 대한 서문(序文)을 지어서 책머리에 쓰도록 하였다. 그 서문에 이르기를,
"《소학》은 무엇을 위하여 지었는가? 옛사람이 태어난 지 겨우 여덟 살이면 반드시 이 책을 배웠으니, 바로 삼대(三代) 때의 사람을 교육하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진 시황(秦始皇)이 유생(儒生)을 구덩이에 파묻고 서적을 불사른 이후로 경적(經籍)이 모조리 없어져서 보존된 것이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 그래서 신안(新安) 주부자(朱夫子)가 세교(世敎)의 쇠퇴함을 개탄스럽게 여기어, 옛날에 들은 것들을 수집(蒐輯)하여, 후학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아! 이 책은 규모(規模)와 절차(節次)가 환하게 구비하여 안팎[內外]의 구분이 있고 본말(本末)의 차서가 있다.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 이 세 가지는 안이며, 본(本)이요, 다음에 계고(稽古)를 말한 것은 옛사람의 덕행(德行)을 채집하여 그것을 실증한 것이다. 그리고 가언(嘉言)·선행(善行) 이 두 가지는 밖이며 말(末)이다. 과연 능히 이 세 가지005) 에 대해 침잠(沈潛)·반복(反覆)하여 그것을 몸에 체험한다면, 두 가지006) 는 미루어 넓혀서 그것을 확충하는 데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비유하면 마치 그물의 벼릿줄이 들리면 눈이 펼쳐지고, 나무의 뿌리가 배양되면 지엽이 번창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은 바로 소자(小子)가 도(道)에 들어가는 첫길이며, 어린이를 교육하는 성스러운 공부인 것이다.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경신(敬身) 일편(一篇)은 참으로 더욱 긴절(緊切)하다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면, 경(敬)이라는 것은 성학(聖學)의 시작과 끝이 여기서 이루어지고, 위와 아래에 관통되는 것으로서 공경하고 나태[敬怠]한 그 사이에 길(吉)하고 흉(凶)함이 곧 결판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왕(武王)이 즉위하던 시초에 사상보(師尙父)007) 가 정성스럽게 진계(陳戒)한 바도 여기에 지나지 않으니, 배우는 이가 진실로 이에 뜻을 두고서 동(動)할 때나 정(靜)할 때나 반드시 경(敬)을 하고 잠깐 동안이라도 반드시 경(敬)을 하여, 나의 드나드는 마음을 거두고 나의 정대(正大)한 근본을 세워서, 오늘 한 가지 공부를 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태연해져서 겉과 속[表裏]이 환하게 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大學)의 이른바 수신 제가(修身齊家)·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道)에 나아가는 것은 단지 일거(一擧)에 조치할 따름이니, 그것이 풍속 교화에 있어서 어찌 소소한 도움만 된다고 하겠는가? 갑술년 정월 16일에 서문을 쓴다."
하고, 또 친히 시민당(時敏堂) 명(銘)과 아울러 서(序)를 지었는데, 이르기를,
"시민당(時敏堂)은 저승전(儲承殿)의 남쪽에 있으니, 바로 세자(世子)가 공부하는 정당(正堂)이다. 집의 명칭을 ‘시민’이라 한 것은 열명편(說命篇)008) 에서 ‘학문에 민첩하기를 힘써야 한다.[務時敏]’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참으로 원량(元良)009) 은 한 나라의 근본으로서 배우고 배우지 않는 데 따라, 치란(治亂)이 거기서 결정되는 것이다. 진실로 겸손하여 스스로 낮추어 학문을 부지런히 힘써서 미치지 못한 바 있는 것처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즙희(緝熙)010) 의 지역에 날로 진취될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이에 명(銘)을 지어서 반우(盤盂)011) 를 대신하는 바이다."
하고, 명(銘)에 이르기를,
"저 궁문(宮門)을 바라보니, 찬란하고 높다란 집이다. 그 이름 시민(時敏)이니, 교훈의 뜻도 빛나도다. 온 백성의 장래가 걸린 한 나라의 원량(元良)이라. 학문을 힘쓰고 힘쓰지 않는 데 따라, 흥하고 망하는 것이 실로 결정된다. 지난날 우리 성조(聖祖)와, 그리고 우리 선왕(先王)께서는, 춘궁(春宮)에서 덕을 닦으며, 나태하거나 황폐함이 없으셨다. 밤낮으로 학문을 힘쓰시어 수라들 겨를도 없이 바쁘셨다. 성의가 애연(藹然)하시어, 서로가 계합되시었다. 지극하시고 극진하시어, 옛날 우왕(禹王)·탕왕(湯王)보다 뛰어나셨다. 아! 너는 이를 잘 본받아서, 과오를 저지르거나 망각하지 말라. 귀와 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며, 환관(宦官)들을 가까이하지 말라. 방정한 선비를 좌우에 모시고, 강직한 인물을 앞뒤에 두어라. 날마다 부지런히 힘쓰고 힘써서, 쉬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여라. 그 덕이 날로 닦아지면, 하늘이 주신 복록이 날로 창성하리라. 이것은 나의 억설이 아니라, 분명한 성인의 말씀이니라. 옛 반명(盤銘)012) 을 대신하여, 심신을 수양하는 자료로 하는 바이다."
하고, 임금이 또 친히 경계(儆戒)하는 10잠(箴)을 지어서 세자(世子)에게 하사했다.
그 법삼조잠(法三朝箴)013) 에 이르기를,
"아! 사람의 온갖 행실은 효도가 아니면 성립되지 못한다. 이는 바로 천경 지의(天經地義)014) 라서 만고에 영원히 바뀔 수 없다. 이 세상에 효도가 가장 중대하니 문왕(文王)을 표본으로 삼아라. 날마다 세 번 문안드리고015) 조심스럽게 몸가짐을 갖도록 하라."
하고, 그 친현사잠(親賢士箴)에 이르기를,
"어지럽고 소란스러워 이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함양(涵養)을 함에는, 어진 선비의 도움이 필요하다. 궁료(宮僚)016) 를 앞뒤에 두고 빈객(賓客)·사부(師傅)를 좌우에 모셔라. 아침 저녁으로 잘못을 바로잡아 법도에 어긋나면 하지 말아라."
하고, 그 근강학잠(勤講學箴)에 이르기를,
"혼자 있는 곳에서 방자하게 하면 그 마음이 방탕하기 쉽다.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 위에서 환하게 굽어보고 계신다. 능히 생각하고 능히 공경하여 반드시 공부를 확충시키도록 하라. 옥루(屋漏)017) 가 가까운 데에 있으니, 부디 스승으로 삼도록 하라."
하고, 그 계일예잠(戒逸豫箴)에 이르기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편안히 지내는 것은 몸의 큰 해독이다. 원성(元聖)018) 은 간절하게도, 그 발단(發端)을 일곱 번이나 바꾸었으니, 이것을 생각하여 마음에 두고서 편안하지 않는 데에 안정하여라. 감히 혹시 게으르지 말고서 삼가고 두려워하여라."
하고, 그 납충언잠(納忠言箴)에 이르기를,
"약이 현기증이 나지 않으면 그 병이 어찌 낫겠는가. 마음에 거슬린다고 여기지 말고서 자기 몸을 돌아보고 반드시 구하여라. 구하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반드시 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만 태갑(太甲)019) 의 일을 가지고서 되풀이하면서 경계하여 알린다."
하고, 그 즉참설잠(堲讒說箴)에 이르기를,
"참소하는 사람이 화(禍)를 만드는 것은 어느 곳에든지 그렇지 않음이 있겠는가. 어진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난다면 더욱 이를 근심해야 한다. 참인(讒人)을 미워하고 영인(侫人)을 멀리 하는 것이 어찌 다른 길이 있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의(誠意)로서 신의(信義)로 사귐을 힘쓸지어다."
하고, 그 신희로잠(愼喜怒箴)에 이르기를,
"칠정(七情)020) 중에서는 성내는 것과 기뻐하는 것이 있다. 이를 알맞게 하기는 어려우나 이를 발산(發散)하기는 쉬운 것이다. 이러한 병통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다시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알맞게 하려면 어찌 하겠는가. 반드시 사리(事理)를 연구해야 한다."
하고, 그 숭검약잠(崇儉約箴)에 이르기를,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흥성시키는 것은 사치함과 검소함에 말미암게 된다. 전대(前代)의 사첩(史牒)을 상고한다면 서로 맞기가 부신(符信)과 같다. 그 마음을 크게 경계하여 그 덕을 힘쓸지어다. 나라를 위하여 복을 아끼고 백성을 위하여 모범을 만들지어다."
하고, 그 명상벌잠(明賞罰箴)에 이르기를,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것은 다만 상(賞)주고 벌(罰)주는 일뿐이다. 이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공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상주고 죄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처벌하였다.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하려면 마땅히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아주 공평한 마음으로 잘 처리해야만 백성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9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유학(儒學)
- [註 005] 세 가지 : 입교·명륜·경신을 말함.[註 006] 두 가지 : 가언·선행을 말함.[註 007] 사상보(師尙父) : 주(周)나라 강태공(姜太公)을 가리킴.[註 008] 열명편(說命篇) : 《서경(書經)》의 편명.[註 009] 원량(元良) : 세자(世子)를 가리킴.[註 010] 즙희(緝熙) : 인격이 계속하여 오래 빛남.[註 011] 반우(盤盂) :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인 공갑(孔甲)이 지었다고 하는 책 이름. 26편을 써서 경계로 삼은 것.[註 012] 반명(盤銘) : 목욕하는 그릇에 새긴 경계하는 글. 옛날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목욕하는 그릇에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글을 새긴 것이 있었다.[註 013] 법삼조잠(法三朝箴)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하루에 세 번 아버지 왕계(王季)에게 조현(朝見)한 일을 본받는다는 것.[註 014] 천경 지의(天經地義) : 영원히 변하지 않는 떳떳한 이치를 말함.[註 015] 날마다 세 번 문안드리고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효도가 지극하여 그 아버지 왕계(王季)에게 날마다 세 번 문안(問安)을 드린 일을 말함.[註 016] 궁료(宮僚) : 세자 시강원(世子侍講院)의 관속(官屬).[註 017] 옥루(屋漏) : 방(房)의 서북우(西北隅)로, 집 안에서 가장 깊숙하여 어두운 곳. 사람이 잘 보지 않는 곳을 이른 말.[註 018] 원성(元聖) : 주공(周公)을 이름.[註 019] 태갑(太甲) : 은왕(殷王) 태갑(太甲)이 즉위(卽位)하여 과오가 많으니 재상(宰相) 이윤(伊尹)이 되풀이 하여 경계하고 타일렀음.[註 020] 칠정(七情) : 일곱 가지 감정(感情). 유가(儒家)에서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을, 불가(佛家)에서는 희(喜)·노(怒)·우(憂)·구(懼)·애(愛)·증(憎)·욕(欲)을 말함.
○乙卯/上親製朱文公 《小學序文》使之弁于篇首, 其文曰: "《小學》何爲而作也? 古之人, 生甫八歲, 必受是書, 卽三代敎人之法也。 自嬴秦坑焚以來, 經籍蕩殘, 存者幾希, 此新安 朱夫子之所以慨然乎世敎之陵弛, 輯舊聞而牖來學者也。 嗚呼! 是書也, 規模節次, 粲然備具, 有內外之分, 有本末之序, 曰《立敎》, 曰《明倫》, 曰《敬身》, 玆三者, 內也本也。 次言《稽古》, 所以摭往行而證之也, 曰《嘉言》, 曰《善行》玆二者, 外也末也。 果能於斯三者, 沈潛反覆, 驗之于身, 則二者不過推廣而實之而已。 譬如綱擧則目張, 根培則支達, 此正小子入道之初程, 蒙養之聖功, 豈易言哉? 若夫《敬身》一篇, 儘覺緊切。 蓋嘗論之, 敬者, 聖學之所以成始成終徹上徹下, 而敬怠之間, 吉凶立判, 是以, 武王踐阼之初, 師尙父之所以惓惓陳戒者, 不越乎是, 學者誠有味于斯, 動靜必於敬, 造次必於敬, 收吾出入之心, 立吾正大之本, 今日下一功, 明日做一事, 於不知不覺之中, 靈臺泰然, 表裏洞徹, 則進乎《大學》所謂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 特一擧而措之矣。 其於風化, 烏可少補云爾? 歲在甲戌春正月哉生魄, 序。" 又親製《時敏堂銘幷序》曰: "時敏堂, 在儲承殿之南, 卽世子冑筵之正堂也。 堂以時敏名, 蓋取諸說命務時敏之義焉。 誠以元良一國之本, 而學與不學, 治亂自判, 苟不卑遜自下, 敏於學而如有所不及, 則其何以日進緝熙之域哉? 遂以作銘, 用替盤盂云爾。 銘曰: ‘眷彼銅闈, 煥焉高堂。 曰時曰敏, 訓義孔彰。 萬民攸繫, 一國元良。 學之勤否, 實判興亡。 粤惟聖祖, 曁我先王。 毓德春宮, 罔有怠荒。 晝筵夜對, 玉食未遑。 誠意藹然, 相得益彰。 至矣盡矣, 邁古禹ㆍ湯。 嗟汝體法, 不愆不忘, 不役耳目, 不邇貂璫。 左右正士, 前後剛方。 惟日孜孜, 無息自强。 厥德日修, 天祿日昌。 匪我臆說, 聖言煌煌。 替古盤銘, 以資檢防。’" 上又親製《儆戒十箴》, 以賜世子。 其法三朝箴曰: "於乎百行, 非孝不立, 天經地義, 萬古不易。 惟孝爲大, 文王是則。 日三問寢, 洞洞屬屬。" 其親賢士箴曰: "紛華波蕩, 此心難持。 是以涵養, 賢士必資。 前後宮僚, 左右賓師。 規達朝夕, 非法不爲。" 其勤講學箴曰: "幽獨得肆, 其心易放。 莫謂無知, 明明在上。 克念克敬, 必擴充之。 屋漏在邇, 須以爲師。" 其戒逸豫箴曰: "今來古往, 鴆毒宴安。 元聖懇懇, 七更其端。 念玆在玆, 所其無逸。 罔敢或懈, 兢兢業業。" 其納忠言箴曰: "藥不瞑眩, 厥疾奚瘳? 勿謂逆心, 而反必求。 求之如何? 必有其道。 惟將太甲, 反覆戒告。" 其堲讒說箴曰: "讒人爲禍, 何莫不然? 君臣際遇, 則尤恤焉。 堲讒遠侫, 詎有他途? 終始誠意, 務盡交孚。" 其愼喜怒箴曰: "七情之中, 曰怒曰喜。 中之則難, 散之則易。 此病未除, 更做甚事? 中之如何? 必也蘊理。" 其崇儉約箴曰: "覆邦興邦, 由奢由儉。 夷考前牒, 符契若驗。 大警厥心, 乃懋厥德。 爲國惜福, 爲民作式。" 其明賞罰箴曰: "以勸以懲, 惟賞惟罰。 用是昔人, 乃愼乃必。 欲明二者, 宜戒偏着。 大公照臨, 人心可服。"
- 【태백산사고본】 28책 2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9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