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시 3수를 내려, 목판에 새겨 송도의 남문루에 걸도록 명하다
임금이 어제시(御製詩) 3수(首)를 승정원(承政院)에 내리면서 세조조(世祖朝)의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우의정(右議政) 민암(閔黯)으로 하여금 기문(記文)을 짓고 목판(木板)에 새겨 송도(松都)의 남문루(南門樓)에다 걸도록 명하였다.
그 첫째에는,
"지난해에는 태조께서 왕위에 오른 해를 거듭 만났고,
오늘에는 성조의 궁궐을 즐거이 바라보게 되었네.
어찌 경모하고 추념하는 것이 갑절뿐이랴?
큰 공렬을 회상하니 내 마음 한이 없네."
이라 하고, 그 둘째에는,
"번화했던 기상들을 아득하게 쇠진해져서
천 년을 누렸던 궁궐은 황폐하여 보리 자란 터가 되었네.
고금의 흥하고 망한 곳을 알려고 하거든,
모름지기 이훈(伊訓)209) 을 가져다 마음에 익히고 생각해야 하느니."
라고 하고, 그 셋째에는,
"천천히 걸어서 백척 누각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내 마음은 분명 구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네.
지금 저자에서 병폐를 묻는 처지에 있으니
다시금 은혜가 온 나라에 두루 미치기를 바라네."
라고 하였다. 이 뒤에 제일 첫째 수(首)의 시(詩)는 돌에다 새겨 목청전(穆淸殿)의 옛 터에다 두었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8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09]이훈(伊訓) : 《서경(書經)》 상서(商書)의 편명(篇名)으로 성탕(成湯)이 죽은 뒤 태갑(太甲) 원년(元年)에 현신(賢臣)인 이윤(伊尹)이 지은 것으로 왕을 경계시킨 내용임.
○己酉/上, 下御製詩三首于政院, 命依世祖朝故事, 令右議政閔黯, 爲記鏤板, 揭于松都 南門樓。 其一, 去年重遇龍飛歲, 今日欣瞻聖祖宮。 奚但羹墻追慕倍? 緬懷洪烈意無窮。 其二, 繁華氣像漠然衰, 千載宮餘麥秀基。 欲識古今興喪處, 須將伊訓玩心思。 其三, 緩步登臨百尺樓, 我心非是喜觀游。 今辰闤闠咨詢地, 更願覃恩普九州。 是後, 以第一首詩, 石刻置穆淸殿舊墟。
-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8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