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 2월 27일 정미 4번째기사
1692년 청 강희(康熙) 31년
사하리에 이르러 장단에 올라가 친림하여 열무하다
임금의 거가(車駕)가 사하리(沙河里)에 이르러 장단(將壇)에 올라가 친림(親臨)하여 열무(閱武)하였다. 먼저 어영(御營)의 장사(將士)들로 하여금 진(陣)을 치고 대기하도록 했었는데도, 원문(轅門)052) 을 설치하고 거가를 맞이하는 의식(儀式)을 할 줄 모르므로, 중군(中軍) 원진수(元振洙)와 교련관(敎鍊官) 김태백(金太白)을 아울러 잡아들여 차등이 있게 곤장을 치고, 금위영(禁衛營)의 중군 장희재(張希載)도 잡아들였다가 도로 놓아주었다. 또 훈련 도감(訓鍊都監)의 군졸이 어막(御幕) 근처에서 총탄(銃彈)을 오발한 자가 있게 되어, 대장(大將) 이의징(李義徵)이 대죄(待罪)하고, 어영 대장 황징(黃徵)은 또한 중군이 곤장맞게 된 것 때문에 대죄하니, 임금이 모두에게 장단으로 올라가 호령을 듣도록 명했다. 승지(承旨) 이식(李湜)이, 군정(軍政)이 엄숙하지 못하고 군사가 기율(紀律)을 잃은 것을 이유로 본병(本兵) 및 모든 대장(大將)들을 추고(推考)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때 조련(操鍊)과 호령(號令)을 병조 판서(兵曹判書) 민종도(閔宗道)가 모두 주관했었는데, 진법(陣法)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아이들 놀이와 같았다고 한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62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사법-탄핵(彈劾) / 군사-병법(兵法)
- [註 052]원문(轅門) : 군영(軍營)·진영(陣營)의 문. 옛날 중국에서 전렵(田獵)할 때나 전진(戰陣)을 베풀 때에 수레를 우리처럼 만들고, 그 드나드는 곳에는 수레를 뒤집어놓아 수레의 끌채를 서로 향하게 하여 만들었던 것으로부터 온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