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 4월 3일 갑자 1번째기사 1690년 청 강희(康熙) 29년

홍충선의 형신, 과거 및 이연의 처벌에 대해 신하들과 논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재신(宰臣)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의정(領議政) 권대운(權大運)이 말하기를,

"홍충선(洪忠善)은 흉사(凶詐)하기 이를 데 없어 경각(頃刻)에 변환(變幻)하고 서봉(書封)을 준 사람을 끝내 정직하게 고하지 않으니, 더 형신(刑訊)하는 밖에는 달리 따져 물을 방도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국청(鞫廳)의 형신(刑訊)은 상례(常例)에 따른 형신과 다른데, 장차 스무 차례나 될 것인데도 능히 죽지 않으니, 이봉징(李鳳徵)의 소(疏)에 이른바 인요(人妖)라 한 것이 마땅하다."

하고, 이어서 입시(入侍)한 신하들에게 두루 물었다. 동의금(同義禁) 남익훈(南益熏)·대사헌(大司憲) 민종도(閔宗道)이봉징의 말을 옳다 하고, 그 나머지 신하들은 다 홍충선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좌의정(左議政) 목내선(睦來善)·우참찬(右參贊) 이우정(李宇鼎)·판윤(判尹) 유하익(兪夏益)이 더욱 힘껏 다투었으나, 임금이 국문(鞫問)을 멈추고 그대로 가두어 두라고 명하였다. 권대운이 또 말하기를,

"과거(科擧)를 설행(設行)할 때에 번번이 사륙문(四六文)076) 을 시험하는데, 외방(外方)의 거자(擧子)는 사륙문의 투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문득 모두 붓을 놓고 나가니, 반드시 책문(策問)으로 시험하고서야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춘당 대시(春塘臺試)077) ·알성시(謁聖試)는 시각이 매우 촉박하여 책문으로 시험하기 어려우나, 정시(庭試)·별시(別試)078) 는 책(策)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헌납(獻納) 송광벽(宋光璧)이연(李㮒)을 죄주기를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가 바라는 것은 이미 시행하지 말게 하였으니, 죄줄 것 없다."

하였다. 권대운이 말하기를,

"의 공사(供辭)에는 맹서(盟書)가 삼분(三分)되지 않은 것을 변명의 꼬투리로 삼았으니, 이것이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그들이 지친(至親)이라 하여 간곡히 염려하여 연좌(緣坐)를 면제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내셨으니, 은혜를 느끼고 감격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감히 이러한 일을 한 것은 지극히 외람하므로, 대각(臺閣)의 말을 따르셔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때 맹서 가운데에 과연 ‘세 사람의 입에서 나와 세 사람의 귀에 들어갔으니, 누설하는 일이 있으면 만 번 죽어도 마음에 달갑게 여긴다.’고 말하였으니, 이제 이 대간(臺諫)의 법을 지키려는 말은 옳으나, 그가 바라는 것은 이미 시행하지 말게 하였는데, 어찌하여 반드시 죄주어야 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19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註 076]
    사륙문(四六文) : 한문체(漢文體)의 한 가지. 중국의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에서 처음 비롯되어 육조(六朝)와 당(唐)나라에서 유행하던 문체인데, 네 글자와 여섯 글자를 기본으로 하여 대구법(對句法)을 쓰며, 압운(押韻)이 많은 변려문(駢儷文)임.
  • [註 077]
    춘당 대시(春塘臺試) :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친림(親臨)하여 임시로 행하던 과거 시험.
  • [註 078]
    별시(別試) : 본래 식년시(式年試) 외의 과시는 모두 별시였는데, 뒤에 제도가 확장되어 증광시(增廣試)·정시(庭試)·알성시(謁聖試) 등의 이름이 고정되면서 이러한 과시 외에 중시(重試)의 대거(對擧)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이는 과시를 뜻하게 되었음.

○甲子/引見大臣備局諸臣。 領議政權大運言: "洪忠善凶詐無比, 頃刻變幻, 書封傳給之人, 終不直告, 加刑之外, 無他究詰之道。" 上曰: "鞫廳之刑, 異於循例刑訊。 而將至二十次, 尙能不死, 李鳳徵疏所謂人妖云者, 宜矣。" 仍歷問入侍諸臣。 同義禁南益熏、大司憲閔宗道, 是鳳徵言。 其餘諸臣, 皆言忠善可殺。 左議政睦來善、右參贊李宇鼎、判尹兪夏益爭之尤力。 上命停鞫仍囚。 大運又言: "設科之時, 每試四六。 外方擧子, 不閑儷語, 輒皆閣筆而出。 必試以策問然後, 可得人才。" 上曰: "春塘臺謁聖則時刻甚促, 難試策問。 而庭試、別試則可以發策矣。" 獻納宋光璧。 申科罪之啓。 上曰: "渠之所懷, 旣巳勿施, 不必科罪矣。" 大運曰: "之供辭, 以盟書之不爲三分, 爲發明之端, 此豈成說乎? 聖上以其屬在至親, 曲加軫念, 除其緣坐, 放還故國, 所宜含恩感激之不暇。 而乃敢爲如此之擧, 殊極猥越。 臺閣之論, 宜允從矣。" 上曰: "其時盟書中, 果以出於三人之口, 入於三人之耳。 脫有漏洩萬死, 甘心爲言, 今此臺諫執法之言是矣。 而渠之所懷, 旣令勿施, 何必罪之乎?"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19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