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 1월 9일 신축 3번째기사 1690년 청 강희(康熙) 29년

춘추관의 《실록》을 상고해 내어 아뢰도록 하다

《실록(實錄)》을 상고하여 내야 마땅한지를 의논하기 위하여 대신(大臣)·육경(六卿)015) ·2품(品) 이상·삼사(三司)의 신하들을 명초(命招)하여 빈청(賓廳)에서 모여 의논하게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권대운(權大運)이 말하기를,

"한낱 시골 선비의 참되지 못한 말 때문에 경솔하게 비사(秘史)를 상고하여 전에 없던 일을 시작하는 것은 그 사체(事體)에 있어서 지극히 중대합니다."

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 민암(閔黯), 형조 판서(刑曹判書) 윤이제(尹以濟), 호조 판서(戶曹判書) 오시복(吳始復), 좌참찬(左參贊) 심재(沈梓), 이조 참판(吏曹參判) 권유(權愈), 호조 참판(戶曹參判) 이현석(李玄錫), 우윤(右尹) 박상형(朴相馨), 부교리(副校理) 정내상(鄭來祥), 수찬(修撰) 이일익(李日翼)·이태귀(李泰龜) 등의 의논도 다 사책(史冊)을 상고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는데, 이현석이 의논하기를,

"윤의제(尹義濟)가 이른바 임금을 속하였다는 말이 이미 어떤 말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고 보면, 노이익(盧以益)의 소(疏) 가운데에 운운하였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겠습니까? 윤하제(尹夏濟)윤의제의 친아우로서 이미 당시에 들은 것이 분명하게 있지 못하고 보면, 다만 노이익이 전해 들은 것을 믿고 문득 사책을 상고하는 것은 아마도 사의(事宜)에 맞지 않을 듯합니다."

하고, 공조 판서(工曹判書) 오정위(吳挺緯), 이조 판서(吏曹判書) 유명천(柳命天), 우참찬(右參贊) 민종도(閔宗道), 사직(司直) 윤심(尹深), 형조 참판(刑曹參判) 정중휘(鄭重徽), 예조 참판(禮曹參判) 목창명(睦昌明), 공조 참판(工曹參判) 유명현(柳命賢), 동지(同知) 이간(李旰), 호군(護軍) 강만석(姜萬碩)·권주(權儔)·김몽량(金夢良)·이상훈(李相勛), 사간(司諫) 김방걸(金邦杰), 장령(掌令) 김원섭(金元燮)·송광벽(宋光璧) 등은 모두 말하기를,

"말이 성조(聖祖)에 관계된다면, 어찌 사서(史書)의 엄비(嚴秘)를 핑계하여 그대로 덮어 둘 수 있겠습니까?"

하고, 좌의정(左議政) 목내선(睦來善)·우의정(右議政) 김덕원(金德遠)은 병들었다고 핑계하였다. 영부사(領府事) 정재숭(鄭載嵩), 판부사(判府事) 여성제(呂聖齊)·조사석(趙師錫)은 모두 외방(外方)에 있어서 나오지 않았으므로, 임금이 명하여 사관(史官)을 보내어 묻게 하였는데, 김덕원은 의논하기를,

"일단 상고한 뒤에 말이 사실에 어그러진 것이라면, 국체(國體)의 손상과 거조(擧措)의 전착(顚錯)이 이보다 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목내선은 당부(當否)를 참작하고 군언(群言)을 절충하기를 청하고, 정재숭·여성제 등의 의논은 모두 그 중대함을 말하고, 조사석은 정세가 인책하여야 하는 것이라 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비사(秘史)의 사체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하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도 서로 전하지 못하는 뜻이 있는 것이라면, 이제 한낱 유생(儒生)이 먼 외방에서 전하여 들은 말 때문에 문득 살펴보는 것을 내가 어찌 지극히 어려운 줄 모르겠는가? 다만 생각하건대, 허실간(虛實間)에 망극한 거짓말이 위로 성조(聖祖)에 미쳐도 자손이 된 자가 서둘러 신변(伸辨)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신중하거니와, 의심스럽게도 미덥기도 한 처지에 버려둔 채 세월이 점점 오래 갈수록 이목(耳目)이 점점 멀어져서 와전(訛傳)되고 또 와언(訛言)을 전하여 천백 년 뒤까지 전하여 간다면, 그 속을 썩이며 뼈아픈 것이 어떠하겠는가? 한 번 사책을 상고하여 있으면 그 거짓을 쾌히 밝히고, 없으면 사람들의 의혹을 푸는 것은 결코 그만둘 수 없으니, 전에 하교한 대로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빨리 날을 가려서 상고해 내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12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정론-정론(政論) / 역사-편사(編史)

  • [註 015]
    육경(六卿) : 육조(六曹)의 판서(判書).

○以實錄考出當否, 命招大臣六卿二品以上三司諸臣, 會議賓廳。 領議政權大運以爲: "因一鄕儒未眞的之言, 輕考秘史, 創開無前之擧, 其在事體, 至爲重大。" 兵曺判書閔黯、刑曺判書尹以濟、戶曺判書吳始復、左參贊沈梓、吏曺參判權愈、戶曺參判李玄錫、右尹朴相馨、副校理鄭來祥、修撰李日翼李泰龜等議, 皆言: "考史之不可。" 玄錫之議有曰: "義濟所謂: ‘誣上之語。’ 旣未的指何說, 則盧以益疏中云云之說, 從何得聞也? 夏濟義濟親弟, 旣不得明有所聞於當時, 則只憑以益之傳聞, 遽爾考史, 恐未合於事宜。" 工曺判書吳挺緯、吏曺判書柳命天、右參贊閔宗道、司直尹深、刑曺參判鄭重徽、禮曺參判睦昌明、工曺參判柳命賢、同知李旰、護軍姜萬碩權儔金夢良李相勛, 司諫金邦杰、掌令金元爕宋光璧等, 皆以爲: "語關聖祖, 則何可諉之史書之嚴秘, 而因仍掩覆?" 左議政睦來善、右議政金德遠稱病。 領府事鄭載嵩、判府事呂聖齊趙師錫, 皆在外不進。 上命遣史官問之。 德遠議以爲: "一考之後, 言若爽實, 則其爲國體之損傷, 擧措之顚錯, 莫此爲甚。" 來善請參酌當否, 折衷群言。 載嵩聖齊等議。 皆言其重大。 師錫以情勢引罪不對, 上, 下敎曰: "秘史事體, 至嚴且重。 雖父子之間, 不得相傳。 意有所在, 則今因一儒生遠外傳聞之說, 遽爾考閱。 予豈不知至爲重難哉? 第念虛實間罔極之誣, 上及聖祖, 而爲子孫者, 不思所以汲汲伸辨之道。 過於愼重, 置諸疑信, 歲月漸久, 耳目漸遠, 訛而傳訛, 流傳於千百載之下, 則其爲腐心痛骨, 爲如何哉? 一番考史, 有則快辨其誣, 無則破人疑惑, 決不可巳, 依前下敎, 春秋館實錄, 斯速擇日, 考出以啓。"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12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정론-정론(政論)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