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민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다는 교서를 반포하다
교서(敎書)를 중외(中外)에 반포(頒布)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왕은 말하노라. 아내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는 의(義)가 《시경(詩經)》에 실려 있으니, 이는 치란(治亂)의 도(道)에 관계된다. 후비(后妃)를 내치는 글이 예경(禮經)에 나타나 있으니, 이에 널리 고(告)하는 법을 거행한다. 마음에 민망함이 간절하나 내가 그만둘 수 없었다. 비(妃) 민씨(閔氏)는 화순한 성품이 부족하고 유한(幽閑)한 덕이 적었다. 대개 책봉(冊封)을 받은 처음부터 경계하고 삼가함을 생각하지 않았고, 궁중에서 질투하는 일을 드러내어 실로 허물이 많았다. 심지어는 꿈을 일컫기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더욱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조 일석(一朝一夕)에 생긴 일이 아니라 그것은 오래 전부터이다. 선왕(先王)·선후(先后)의 말씀을 빙자하기까지 하였으니, 이를 참을 수 있으랴?
생각하건대 내가 서른의 나이에 다행히 생남(生男)의 상서로움을 보았으니, 인정으로 논하건대, 마땅히 자기 몸에서 낳은 것처럼 사랑을 더해야 할 것인데, 도리어 불평한 마음을 품어서 말에까지 나타내었으니, 마후(馬后)의 아기를 사랑하는 거룩한 덕성(德性)이 없고317) , 곽씨(郭氏)318) 의 점점 분한(忿恨)하는 편성(偏性)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어찌 눈 앞의 작은 은혜 때문에 후일의 깊은 근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홀로 땅의 덕을 본받지 아니하니, 비록 포용(包容)하는 어짊에 힘쓸지라도 스스로 하늘에서 끊어지게 하여 마침내 뉘우쳐 고치는 뜻이 없었다. 신린(臣隣)이 함께 호소함을 돌아다보니, 억지로 어기고 싶지 않으나, 종사(宗社)의 큰 계책을 생각하니, 내린 명령을 거두기 어렵도다. 후사(後嗣)에게 화(禍)를 끼치게 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과궁(寡躬)의 실덕(失德)을 감수하겠다. 이는 실로 국가의 흥망 성쇠에 관계되나, 내조(內助)의 공을 바랄 수 없고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섬길 수 없는 자이니, 드러내어 폐출(廢黜)하는 일을 늦출 수 있겠는가?
이에 5월 초4일에 비(妃) 민씨(閔氏)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는다. 아! 육례(六禮)를 올릴 때의 일을 생각하건대, 지도(地道)319) 가 경고(警告)하였고, 이러한 칠거(七去)320) 의 경계함을 범하였으니, 예법(禮法)에 용납하기 어렵다. 진실로 처변(處變)의 마땅함에 합한 것이요, 감히 감정에 맡겨 발한 것이 아니다. 그가 반드시 그 죄를 알 것이고, 유현(儒賢)의 글에도 나타나 있어 내가 다시 말을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충후(忠厚)한 도리를 손상할까 함이로다. 그래서 이를 교시(敎示)하니 마땅히 자세히 알 것이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민암(閔黯)이 지어 올렸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186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17]마후(馬后)의 아기를 사랑하는 거룩한 덕성(德性)이 없고 : 마황후는 후한(後漢) 때 현종(顯宗)의 비(妃)임. 현종이 즉위했을 때 마황후가 귀인(貴人)으로 있었는데 가씨(賈氏)가 낳은 숙종(肅宗:장제(章帝)임)을 양자로 주었는데, 마황후가 자기 아들처럼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길렀음.
- [註 318]
곽씨(郭氏) : 송(宋)나라 인종(仁宗)의 황후(皇后). 인종은 곽후(郭后)를 박대하고 상미인(尙美人)을 총애하였는데, 하루는 상미인이 곽후를 침범하는 말을 하였으므로, 곽후가 분을 참지 못하고 상미인의 뺨을 쳤다. 이때 인종이 막으려 하다가 잘못하여 목을 맞아 흠이 나게 되었다. 이 일 때문에 곽후는 폐출(廢黜)당했음.- [註 319]
지도(地道) : 땅의 도리. 여기에서 지도가 경고하였다는 것은 지진을 뜻함.- [註 320]
칠거(七去) : 칠거지악.○頒敎于中外, 其文曰:
王若曰: ‘刑妻之義載于詩, 寔關治亂之道。 出妃之文著於禮, 爰擧播告之章。 心切愍然, 予不獲已。 妃閔氏, 性欠和順, 德乏幽閒, 蓋自受冊之初, 罔念戒謹, 公肆入宮之妬, 實多諐尤。 至於夢寐之稱, 尤非意慮所及。 非一朝一夕之故, 厥惟舊哉! 托先王先后之言, 是可忍也。 念予而立之歲, 幸覩斯男之祥。 論以人情, 宜加猶己出之愛, 發乎辭語, 乃反懷不平之心, 馬后之顧復丁寧。 盛德蓋闕, 郭氏之輾轉恚恨, 偏性難回, 豈以目前之小恩, 不思日後之深慮? 獨不爲地, 縱勉包荒之仁, 自絶于天, 終無悛改之意。 顧臣隣之齊籲, 非欲弘違, 軫宗社之大圖, 難可反汗。 與其貽禍於後嗣, 寧甘失德於寡躬。 玆實係國家興衰, 陰助之功難望, 不宜事宗廟社稷。 顯黜之擧可徐。 乃於五月初四日, 廢妃閔氏爲庶人。 於戲! 追惟六禮之辰, 地道告警, 犯此七去之戒, 禮法難容。 實合處變之宜, 非敢任情而發。 彼必自知其罪, 著在儒賢之書, 予欲不復爲言。 恐傷忠厚之道,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閔黯製進。】
- 【태백산사고본】 23책 2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186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