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렬 왕후를 휘릉에 장사하다
장렬 왕후(莊烈王后)를 휘릉(徽陵)에 장사하였다. 자시(子時)에 견전(遣奠)을 행하고, 이내 소여(小轝)로 받들고 능상(陵上)에 이르렀다. 영의정(領議政)이 꿇어앉아 애책(哀冊)을 올렸는데, 그 글이 이르기를,
"유세차(維歲次) 무진년209) 8월 26일 병인(丙寅)에 자의 공신 휘헌 강인 정숙 온혜 장렬 왕후(慈懿恭愼徽獻康仁貞肅溫惠莊烈王后)가 창경궁(昌慶宮)의 별당(別堂)에서 훙(薨)하여 12월 15일 갑인(甲寅)에 조전(祖奠)210) 에 옮겨 좌정하고, 16일 을묘(乙卯)에 휘릉(徽陵)에 영천(永遷)하는 것은 예(禮)입니다. 찬전(菆殿)211) 을 열어 고유하니 보의(葆儀)는 행렬을 이루었고, 영침(靈寢)이 이미 거두어졌으니, 조연(祖筵)을 장차 치우려 합니다. 삼세(三世)의 장락궁(長樂宮)을 버리시고 한 언덕의 가성(佳城)212) 으로 나아가시니, 궁위(宮闈)는 새벽빛 속에 고요한데, 빈어(嬪御)213) 의 울음은 천둥소리 같습니다. 다만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자안(慈顔)의 영원히 떠나심을 슬퍼하고, 고영(孤影)214) 의 믿을 곳이 없는 것을 애통해 하시어, 용순(龍輴)215) 을 어루만지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고, 봉삽(鳳翣)216) 을 쳐다보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양휘(揚徽)할 것을 생각하여 후인에게 명령하고 동관(彤管)217) 을 명하여 일을 기록하시니, 그 사(詞)에 이르기를 ‘생각건대 화벌(華閥)은 선계(先系)가 한양(漢陽)에서 나왔는데 사록(沙麓)의 이상한 징조로 월홍(月虹)의 상서로운 꿈을 꾸어 성스러운 몸이 향실(香室)에서 탄생하였는데, 천계(天啓)218) 옥책(玉冊)을 열었으며, 조용하고 공손하며 깊은 심성은 일찍부터 착한 덕을 드러내었습니다. 인조(仁祖)께서 곤위(壼位)가 비게 되자, 적의(翟儀)219) 가 다시 새로워져 제곡(帝嚳)의 원후(元后)220) 를 이어받고 문왕(文王)의 중년(中年)에 배필이 되었던 것221) 같았으니, 추기(樞機)의 신중하고 주밀함은 모후(母后)께서 탄복하신 바이며, 밖과 안이 끊는 듯하여 사알(私謁)을 구함이 없으셨습니다.
1기(紀)222) 를 곤덕(坤德)으로 받들다가 문득 대척(大戚)223) 을 만났으니 우(虞)나라 순제(舜帝)가 순수(巡狩)하다 죽은 것을 뒤따를 수 없었음과 같았고, 상강(湘江)의 대나무에 눈물 자국이 남은 것224) 과 같았습니다. 광음(光陰)은 쉽사리 바뀌어 슬프고 좋은 일은 서로 잇따랐는데, 효종(孝宗)을 도와주고 숭릉(崇陵)225) 을 부호(扶護)하셨습니다. 도덕을 갖춘 증손(曾孫)이 칭하여 높이고 예절로서 봉양하였는데, 미망인(未亡人)으로 자처(自處)하시면서 항상 겸양한 마음을 간직했습니다.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시매 저축한 재물을 내어 주는데 아낌이 없었고, 은혜는 희사(姬使)에게 흡족했지만 그래도 질투하는 것을 엄중히 다스리셨습니다. 해옥(海屋)226) 에서 주산(籌算)을 더하니,227) 성령(聖齡)에 갑년(甲年)이 돌아왔습니다. 경사와 혜택이 냇물처럼 흐르니 기뻐하는 소리가 대지(大地)에 가득 찼습니다. 3조(朝)에서 올린 휘호(徽號)는 보염(寶琰)에 광채를 더하였고, 거듭 맞이하는 해에 올린 잔치는 반도(蟠桃)228) 에다 술잔을 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훤초(萱草)가 사철 봄인 데229) 비기었는데, 봉류(蓬流)가 갑자기 얕아졌으니, 슬프기만 합니다.
막 침궁(寢宮)의 화재를 고하자마자 또 헌원성(軒轅星)이 변고를 보이었고 슬픔과 재난이 겹쳐 쌓인데다 몹쓸 병을 만나서 여름과 가을을 지나도 오래도록 낫지 않으셨는데, 탕설(湯焫)을 아울러 베풀어도 효험이 없고 규벽(圭璧)230) 을 두 번이나 행하였지만 나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끝내 정성이 감동되지 못하였으니, 신리(神理)가 어긋나서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아! 슬프다. 강비(姜妃)는 주(周)나라의 배필이 되어 빛나게 중흥(中興)을 도왔고, 고후(高后)는 송(宋)을 도와 여중 요순(女中堯舜)이란 칭호가 있었는데, 훌륭하신 성모(聖母)께서는 이 두 가지 아름다움을 겸하셨습니다. 이에 하늘의 복을 받아 길이 많은 복을 누리셨으니 65세의 장수(長壽)는 정현 왕비(貞顯王妃)에 거의 가까왔고, 14자(字)의 아름다운 칭호(稱號)는 정희 왕비(貞熹王妃)와 거의 부합되었습니다. 상고하건대 예전이나 지금에도 보기 드문 일이므로 실로 지나간 사첩(史牒)에 빛날 것입니다. 아! 슬프다. 영신(靈辰)이 이미 닥치고 길장(吉仗)을 비로소 옮기니 신행(神行)은 엄숙한데 들판의 길은 구불구불 하였습니다. 주유(珠襦)231) 를 누가 가지리요? 경렴(鏡奩)232) 은 벌써 텅 비어 있습니다. 계궁(桂宮)은 새벽 달빛에 어두워지고 선루(仙漏)는 구슬픈 바람에 흐느끼고 있습니다. 표륜(飆輪)이 빠르게 하늘로 올라가니 떠나가서 돌아오심이 없겠습니까? 우뚝하게 남은 전당(殿堂)만이 있으니 춘휘(春暉)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요지(瑤池)는 옥마(玉馬)의 소리에 점차 멀어지고 은해(銀海)는 금부(金鳧)의 날아가는 소리에 깊어만 갑니다. 복비(宓妃)233) 를 따라가서 와후(媧后)234) 와 나란히 있으니 만세(萬歲)토록 즐거워하면서 응당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아! 슬프다. 울창한 저 신강(新岡)은 성조(聖祖)의 곁인데, 네 능(陵)이 둘러싸고 있으니, 많은 신형이 잡귀(雜鬼)를 꾸짖어 물리칠 것이며, 엄연히 산세(山勢)는 청룡(靑龍)이 서려 있고 백호(白虎)가 걸터앉아 일찍이 땅이 숨기고 하늘이 감추었던 곳인데, 진실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니, 체백(體魄)이 편안할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어찌 부우산(鮒隅山)235) 이 멀다하리요? 다행히 선영(先靈)에 가까이 있으니, 좌우에 있으면서 보좌하여 천년(千年)토록 국기(國基)를 공고(鞏固)히 하소서.
아! 슬프다.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듯 대운(大運)은 멈추지 않으니, 바위산에 먼지가 일어나고 밤에 배를 골짜기에 숨겨두듯,236) 차고 기우는 운수는 고치기 어렵고 대사(代謝)의 기약은 옮길 수 없어 마침내 모두가 명막(溟漠)한 데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대성(大聖)이라도 그 또한 그러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아름다운 계획과 명철하신 규범(規範)은 하늘과 땅에 뻗치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삼가 애책(哀冊)을 지어 옥석(玉石)에 새겨 영구히 후세에 전하여 빛나기를 기약합니다. 아! 슬프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남용익(南龍翼)이 지어 바쳤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9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14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09]무진년 : 1688 숙종 14년.
- [註 210]
조전(祖奠) : 발인(發靷) 전에 영결(永訣)을 고하는 제식(祭式). 또는 그 곳. 일포제(日脯祭)라고도 함.- [註 211]
찬전(菆殿) : 장례 전에 관을 모시어 두는 빈전(殯殿).- [註 212]
가성(佳城) : 무덤의 미칭(美稱).- [註 213]
빈어(嬪御) : 궁녀.- [註 214]
고영(孤影) : 혼자 있어 쓸쓸한 신세.- [註 215]
용순(龍輴) : 왕의 구(柩)를 싣는 수레. 여기서는 왕후(王后)의 구를 싣는 수레를 말함.- [註 216]
봉삽(鳳翣) : 상여의 양 옆에 세우고 가는 제구. 원래는 깃으로 만들었으나, 후세에는 네모난 화포(畫布)에 길이 다섯 자의 자루가 있고 깃털을 장식했음.- [註 217]
동관(彤管) : 붓대가 붉은 빛을 가진 사관(史官). 동관은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宮中)에서 궁중의 정령(政令)과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할 때 쓰던 붓임. 《후한서(後漢書)》 광무곽황후기(光武郭皇后紀)에 "여사가 동관으로 공을 기록하고 허물을 쓴다."고 하였고, 그 주(注)에 "동관은 붓대가 붉은 붓이다."라 하였음.- [註 218]
천계(天啓) : 명나라 희종(熹宗)의 연호.- [註 219]
적의(翟儀) : 왕비의 의식.- [註 220]
제곡(帝嚳)의 원후(元后) : 제곡(帝嚳)의 후비(后妃)인 강원(姜嫄)을 말함. 강원은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보고 회임(懷姙)하여 후직(后稷)을 낳았다고 함. 《시경(詩經)》 대아(大雅) 생민지습(生民之拾)에서는 "처음으로 백성을 낳으신 분은 바로 강원(姜嫄)이시다."라고 하여 강원을 주나라 시조 후직을 낳은 사람이라 하여 칭송하고 있음.- [註 221]
문왕(文王)의 중년(中年)에 배필이 되었던 것 : 문왕(文王)이 중년(中年)에 태사(太姒)를 후비(后妃)로 맞이한 일을 말함. 태사가 음도(陰道)로 안을 다스리고 문왕이 양도(陽道)로 밖을 다스리자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고 함.- [註 222]
1기(紀) : 12 년을 말함.- [註 223]
대척(大戚) : 인조의 승하.- [註 224]
상강(湘江)의 대나무에 눈물 자국이 남은 것 : 순(舜)임금이 천하를 순수(巡狩)하다가 죽자, 그의 후비(后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상강가에서 울었는데, 그 눈물이 대나무에 반점(斑點)으로 맺혔다 함.- [註 225]
숭릉(崇陵) : 현종.- [註 226]
해옥(海屋) : 바다 위에 있다고 하는 신선의 집.- [註 227]
주산(籌算)을 더하니, :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말. 《동파지림(東坡志林)》의 "세 노인이 만나서 나이를 묻는데, 한 사람이 말하기를, ‘바닷물이 변하여 뽕나무 밭이 될 때마다 산가지를 하나씩 내놓았는데, 지금 열 개가 되었다.’고 하였다"는 데서 나온 고사.- [註 228]
반도(蟠桃) : 선도(仙桃).- [註 229]
훤초(萱草)가 사철 봄인 데 : 훤초(萱草)는 먹으면 근심을 잊는다고 하며,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함. 어머니가 계신 곳을 훤당(萱堂)이라고도 하는데, 《시경(詩經)》 위풍(衞風) 백혜장(伯兮章)의 "어디서 훤초를 얻어다가 뒤곁에 심을까"라고 한 데서 유래된 것임. 곧 훤초가 사시사철 피어 있듯 어머니가 오래도록 사시기를 바란다는 것임.- [註 230]
규벽(圭璧) : 신명(神明)에게 제(祭)를 올릴 때 쓰는 폐백으로, 옥의 일종임. 무왕(武王)이 병이 들자 주공(周公)은 이 규벽을 가지고 제를 올리면서 자신이 대신 죽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음. 성왕(成王)이 후에 이 사실을 알고 주공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고 함.- [註 231]
주유(珠襦) : 꿴 구슬로 장식한 짧은 옷.- [註 232]
경렴(鏡奩) : 경대(鏡臺).- [註 233]
복비(宓妃) : 복희씨(伏羲氏)의 딸.- [註 234]
와후(媧后) : 여와씨(女媧氏)를 이름. 복희씨의 여동생.- [註 235]
부우산(鮒隅山) :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중국 상고시대의 전욱(顓頊)이 부우산의 남쪽에 묻혀 있고, 구빈(九嬪)이 그 북쪽에 묻혀 있다고 함.- [註 236]
밤에 배를 골짜기에 숨겨두듯, : 배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 위에 두지 않고 산골짜기에 감춰두면 몹시 견고해 보이지만, 밤중에 힘센 사람이 와서 짊어지고 달아날 수 있다는 말. 즉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이 변화를 막기 위하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뜻임. 세운(世運)의 영허(盈虛)·소장(消長)을 비유하는 말로 쓰임.○乙卯/葬莊烈王后于徽陵, 子時行遣奠, 仍以小轝, 奉至陵上, 領議政跪奠哀冊, 其文曰:
維歲次戊辰八月二十六日丙寅, 慈懿恭愼徽獻康仁貞肅溫惠莊烈王后, 薨于昌慶宮之別堂, 十二月十五日甲寅。 遷座于祖, 十六日乙卯。 永遷于徽陵。 禮也。 菆殿告開, 葆儀成列, 靈寢旣收, 祖筵將撤, 違三世之長樂, 就一丘之佳城, 宮闈閴兮曙色, 嬪御咷兮雷聲。 惟我主上殿下, 悲慈顔之永隔。 痛孤影之靡恃, 攀龍輴而摧隕。 眷鳳翣而涕泗, 思揚徽而詔後。 命彤管而記事, 其詞曰。 緬惟華閥, 系出漢陽。 沙麓徵異, 月虹夢祥。 聖誕香室, 天啓玉冊。 恬恭塞淵, 夙著令德。 仁祖壼缺, 翟儀重新。 繼嚳元后, 配文中身。 樞機愼密, 天只所歎。 外內斬截, 私謁罔干。 一紀坤承, 奄遭大戚。 虞巡莫追, 湘淚在竹。 光陰易改, 哀樂相仍。 翼安孝廟, 扶護崇陵。 有道曾孫, 贊崇禮養。 自處未亡, 常存謙讓。 念軫飢民, 不惜捐蓄。 恩洽姬使, 猶嚴嫉惡。 海屋添籌, 星齡回甲。 慶澤川流, 歡聲地匝。 三朝進號, 寶琰增章。 再歲呈宴, 蟠桃侑觴。 擬萱草之長春, 嗟蓬流之遽淺! 纔寢宮之告災, 又軒宿之示變。 積哀疢而遘虐, 經夏秋而彌留。 湯焫竝施而蔑效, 圭璧再擧而未瘳。 竟至誠之爽感, 神理錯兮難救。 嗚呼哀哉! 姜妃匹周, 光贊中興。 高后佑宋, 女堯有稱。 猗歟聖母! 兼此兩美。 玆受天祐, 永享繁祉。 六旬五之遐算, 望貞顯而垂及。 十四字之徽稱, 追貞熹而幾叶。 稽今古而罕覿, 實有光於往牒。 呼嗚哀哉! 靈辰已屆, 吉仗初移。 神行肅穆, 郊路逶迤。 珠襦兮誰御? 鏡奩兮已空。 桂宮晦兮殘月, 仙漏咽兮悲風。 飆輪倐其上昇, 定有去而無歸。 巋遺殿之獨存, 報無路於春暉。 瑤池邈兮玉馬響, 銀海深兮金鳧飛。 追宓妃兮竝媧后, 樂萬歲兮應無違。 嗚呼哀哉! 鬱彼新岡, 聖祖之側。 四陵環圍, 百靈呵辟。 儼蛇蟠而虎踞, 曾地秘而天慳。 諒有待於今日, 庶體魄之妥安。 豈鮒隅之云遠, 幸密邇於先靈。 在左右而降騭, 鞏國基於千齡。 嗚呼哀哉! 雲徂水逝, 大運不息。 石山生塵, 夜舟藏壑。 盈虛之數難革, 代謝之期莫遷。 終歸盡於冥漠, 雖大聖其亦然惟芳, 猷與哲範, 亘穹壤而不朽。 謹述哀而刻珉, 期垂耀於永久。 嗚呼哀哉! 【大提學南龍翼製進。】
- 【태백산사고본】 21책 19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14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