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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19권, 숙종 14년 11월 21일 경인 1번째기사 1688년 청 강희(康熙) 27년

대사헌 이규령이 헌신에 대한 상소를 올리니 비답하다

대사헌(大司憲) 이규령(李奎齡)이 상소(上疏)하여 군주의 덕에 힘쓰게 하고, 인하여 헌신(憲臣)의 일을 말하기를,

"법을 준수(遵守)함에 있어서 동요되지 않고 반드시 다스린 뒤에 그만두는 것은, 대개 명분(名分)을 바로잡고 기강(紀綱)을 엄숙히 하려는 것입니다. 전하(殿下)께서 이미 깨달으셨다면 진실로 마땅히 부드러운 말씀으로 칭찬하고 권장하여야 할 것인데, 어제의 정사에서 오히려 천점(天點)160) 을 아끼셨으니,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전하께서 비록 뉘우치고 깨달았다고 하시지마는 신(臣)은 그 뉘우치고 깨달은 실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이미 전고(前古)에 없던 지나친 일을 하시고도 진실로 크게 깨우치고 크게 권장할 일을 하시어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단서로 보이지 않으신다면, 마침내 오늘날 신민(臣民)에게 신임을 받지 못할 것이요, 천하 후세에 변명할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매우 스스로 호되게 꾸짖기를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잠(箴)을 지어 경계한 것161) 과 같이 하시고, 뉘우친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을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윤대(輪對)의 조서(詔書)를 내린 것162) 과 같이 하시며, 충직(忠直)한 사람을 권장하고 포상하시기를 한(漢)나라 문제(文帝)장석지(張釋之)를 발탁 임용하고163) 후한(後漢) 때 광무(光武)동선(董宣)에게 상(賞)준 것164) 과 같이 한 연후에야 거의 성덕(聖德)에 빛이 되고 또한 장래(將來)의 부덕(不德)을 보좌할 것입니다."

하니, 답(答)하기를,

"칠정(七情) 가운데서 폭발하기 쉽고 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는 오직 성내는 것이 으뜸이 되는데, 나의 병통(病痛)은 매양 이 속에 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일도 한때의 분노(忿怒)를 참지 못하고 이러한 전에 없는 지나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함양(涵養)하는 공부에 다하지 못한 바가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다. 자신을 돌이켜 보고는 참회(慚悔)하며 저으기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백공(呂伯恭)은 필부(匹夫)인데도 문득 성훈(聖訓)에서 깨달음을 얻어 능히 기질(氣質)을 변화(變化)시켰으니, 그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할 수 있는 자면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반드시 본원(本源)이 있는 곳에 마음을 써서 능히 존심 양성(存心養性)의 공부를 이룬 뒤에야 거의 거칠고 사나운 병통을 버리게 되고 자주 반복되는 후회가 없을 것이다. 이로써 스스로 마음에 깨우치게 되면, 어찌 밖으로 후회하는 단서를 베풀고 안으로 노여워함을 품어서 마음이 넓지 못한 것을 보임이 있겠는가?’ 하였다. 어제 일은 본래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어제는 약간 체직(遞職)으로 처리한데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은점(恩點)을 아낀다는 말은, 이는 정지(情志)가 통(通)하지 못한 소치인 것 같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9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13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

  • [註 160]
    천점(天點) : 임금의 낙점(落點).
  • [註 161]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잠(箴)을 지어 경계한 것 : 《국어(國語)》에 의하면,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95세가 되어서도 도리어 잠(箴)을 지어 나라에 경계하기를, "조정에 있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늙었다고 하여 버리지 말고, 조정에서 반드시 정성스럽고 공근(恭謹)하여 서로 나를 경계하여 주시오."라고 하였다는 고사.
  • [註 162]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윤대(輪對)의 조서(詔書)를 내린 것 : 윤대(輪對)는 서역(西域)의 소국(小國)의 이름.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이곳을 점령하여, 흉노(匈奴)를 제압하고자 했는데, 말년에 와서 포기하였다. 곧 정화(征和) 4년(B.C.89)에 상홍양(桑弘羊)이 이곳을 개발하여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군사를 보내 지킬 것을 건의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무제는 왕년의 정벌(征伐) 정책이 백성을 피폐하게 만들었음을 뉘우치고, 백성을 휴식시키고 농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조서(詔書)를 내렸다. 이를 윤대(輪對)의 조서(詔書)라고 함.
  • [註 163]
    한(漢)나라문제(文帝)가 장석지(張釋之)를 발탁 임용하고 : 장석지(張釋之)는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직신(直臣). 여러번 문제(文帝)에게 직언(直言)하였는데, 문제가 받아들여 중용(重用)하였음.
  • [註 164]
    후한(後漢) 때 광무(光武)가 동선(董宣)에게 상(賞)준 것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낙양령(洛陽令)이던 동선(董宣)이, 호양 공주(湖陽公主)의 하인으로서 살인자를 잡아 죽이자, 광무제가 이를 듣고 공주에게 사과하였는데, 동선은 이를 끝내 거부하고 "폐하의 높은 성덕(聖德)으로 공주의 하인이 살인을 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자, 광무제가 도리어 장하게 여기고 돈 삼십만 금을 내렸다는 고사.

○庚寅/大司憲李奎齡上疏, 勉君德, 仍言憲臣事曰: "執法不撓, 必治後已者, 蓋欲正名分而肅紀綱, 殿下旣已覺悟, 則固當優辭而嘉奬之。 而昨日之政, 猶靳天點, 以此推觀, 則殿下雖曰悔悟, 臣未見其悔悟之實也。 殿下旣爲前古所無之過擧, 而苟不用大警動大聳勸之事, 以示誠實無僞之端, 則臣恐殿下終不取信於今日臣民, 而無以有辭於天下後世也。 必也, 痛自刻責, 如衛武之作箴以戒, 開示悔心, 如 之下詔輪對, 勸忠褒直, 如文帝之擢釋之光武之賞董宣然後, 庶有光於聖德, 而亦補過於將來也。" 答曰: "七情之中, 易發而難制者, 惟怒爲甚。 予之病痛, 每在這裏, 故向日之事, 亦不忍一時之忿, 致此無前之過擧, 玆實涵養之功, 有所未盡而然也。 反躬慙悔, 竊自以爲, 呂伯恭匹夫也, 而忽覺得於聖訓, 能變化氣質, 彼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矣。 必須加意於本源之地, 克致存養之工然後, 庶可以祛粗暴之病, 而無頻復之悔, 以此自警于心, 則寧有外施悔端, 內懷慍怒, 以示人不廣哉? 昨日事, 本非有意而然, 不過昨纔處置遞職故耳。 猶靳恩點之說, 似是情志未通之致也。"


  • 【태백산사고본】 21책 19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13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