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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8권, 숙종 13년 9월 13일 무자 4번째기사 1687년 청 강희(康熙) 26년

비국의 여러 신하들과 군국의 모든 일을 의논하다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를 인견(引見)하여 군국(軍國)의 모든 일을 강론했다. 임금이 이르기를,

"김만중(金萬重)을 오늘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내어보내게 하였는데, 반드시 지체하며 관망(觀望)하려고 즉각 나가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대신이 진달하기를, ‘여러 대신들이 대부분 외방에 있게 되어 모양이 아름답지 않고 국사가 불행하게 되었다.’고 했었지마는, 김수항(金壽恒)이단하(李端夏)는 진실로 나로 말미암아 불안하게 된 것이고, 조사석(趙師錫)은 신하들이 쫓아낸 것이다. 내가 오늘날 개탄(慨歎)하며 통곡하게 된 일이 있다. 이번에 정승을 더 정하게 할 때 여러 공주(公主)들이 마침 들어왔었는데, 숙명 공주(淑明公主)238) 가 묻기를, ‘어느 사람으로 삼았습니까?’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조사석으로 삼았습니다.’ 하니, 숙명공주가 ‘그 사람이 재주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고, 숙안 공주(淑安公主)239) 는 말하기를, ‘조사석이 좋은 명정(銘旌)240) 감을 얻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었다. 조정 신하의 현명한 여부를 어찌 공주들이 상관하여 그들이 말을 이렇게 하는지 내가 진실로 한심스러웠다. 여양 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상사 때에는 여러 공주(公主)들이 으레 내전(內殿)께 위문하는 것이기에 궁인(宮人)들이 사사롭게 서로 알려 들어오게 한 것인데, 숙명 공주가 바로 앞에 다가와 높은 음성으로 말하기를, ‘성상께서는 들어오라는 명이 없었는데 상궁(尙宮)이 사람을 시켜 들어오라고 했기에 감히 왔습니다.’ 하며 언사와 기색이 이상했고, 얼굴과 목이 붉어졌었다. 그전부터 조정의 진신(搢紳)이 내관(內官)과 결탁하고, 궁인들이 궁가(宮家)와 내통하는 것은 모두 통렬하게 금하는 법이기에 지난해에 비망기(備忘記)에다 언급했던 것이고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러 공주들이 이로부터 의심을 품고 전과 크게 달라지므로 내가 마음을 썩여온 지 이미 오래인데, 군상(君上)을 모함하고 욕했으니, 어찌 앙화(殃禍)가 없을 일이겠는가?"

하니,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아뢰기를,

"규문(閨門)안의 일들은 은덕이 의리를 덮어야 합니다. 선왕(先王)의 동기간이 단지 이 두어 사람만 있으니, 비록 잘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은덕이 의리를 덮는 도리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경(卿)은 이러한 말을 듣고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가? 은덕으로 의리를 덮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신료(臣僚)들에게 경멸받고 지친(至親)에게 모욕받게 되었으니, 이러한데도 편안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내가 진실로 무상(無狀)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니, 남구만이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가 마치 공주들의 무례함을 이유로 김만중이 진달했던 말의 근거에 의심을 두시는 듯한데, 이는 적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성명(聖明)께서 마음을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 마땅히 이처럼 억측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화를 내어 이르기를,

"경은 사리에 어두움이 너무 심하다 해야 하겠다. 나는 아직 눈 멀지 않았다. 비록 성인이 다시 난다 하더라도, 정사에 관여하는 일을 하고 군부(君父)를 업신여기는 일을 한다면 반드시 그르다고 여길 것인데, 지금 구원(救援)하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

하니, 승지 박태손(朴泰遜)이 아뢰기를,

"방금 내리신 이 분부는 화평함이 부족한 듯합니다. 사방에 전해진다면 어떻다고 여기게 되겠습니까? 김만중은 사람됨이 옹졸하고 우직하여, 그의 본뜻을 따진다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하는 의리에서 한 말입니다. 또한 김만중김익겸(金益兼)의 유복자(遺腹子)로서 70세가 된 늙은 어미가 있습니다. 그의 형이 졸서(卒逝)한 것이 겨우 지났는데 이제 또 김만중이 멀리 귀양간다면 그의 어미가 의지할 데가 없을 것이어서 정리(情理)가 불쌍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박태손은 자못 너무도 방자하다. 김만중이 차마 듣지 못할 말을 군부(君父)에게 했는데도 감히 구원하는 일을 하고, 공주들에게 관한 일에 있어서도 또한 불평에서 나온 말로 여기고 있으니, 내가 지친들을 모함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냐? 오늘날의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진실로 한심스럽다. 빈계 사신(牝鷄司晨)241) 도 오히려 경계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공주들이겠느냐?"

하였다. 이때 임금의 위엄과 노여움이 이상하여 대신에게 화풀이하기를 조금도 가차없이 하므로, 여러 신하들이 당초에는 김만중을 구원하려고 했다가 모두들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대사간(大司諫) 유헌(兪櫶)이 나아가 아뢰기를,

"김만중이 항간(巷間)에 떠도는 근거가 없는 말을 천정(天聽)에 진달하기까지 했으니, 경솔한 짓을 한 책임이 진실로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하는 의리를 자신에게 돌린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또 그전부터 떠돌아다니는 말은 본래 밝혀낼 수가 없었습니다. 옛적 인조조(仁祖朝)에 여염(閭閻) 집의 여자들을 궁중(宮中)으로 뽑아들인다는 말이 중오(中外)에 전파되었었는데, 대사간(大司諫) 이명준(李命俊)이 글을 올려 극력 간하니, 인조께서 진노(震怒)하시어 특별히 말의 근거를 밝혀내도록 명하셨습니다. 온조정이 기가 죽어 한 명도 열거하여 논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신(臣)의 숙부(叔父) 유성증(兪省曾)이 홀로 아뢰기를, ‘옳지 않습니다.’ 하자, 성조(聖祖)께서 홀연히 깨달으시고 마침내 명령을 정지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전하께서 마땅히 본받으셔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김만중이 귀양가게 된 것은 진실로 뜻밖에 생긴 일로서 조야(朝野)가 놀래어 기상(氣象)이 시름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마음에 놀랍고 보기에 참혹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만수전(萬壽殿)의 화재에 이르러서는 극도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하시며 대중의 선(善)을 모아들이고 언로(言路)를 열어 놓아, 재변을 해소하고 치도(治道)를 보필하게 할 방도를 마련하셔야 할 때입니다."

하니, 임금이 비록 따르지는 않았지만 말씨가 조금 화평해지게 되었다. 유헌은 나이가 늙고 소박(素樸)했는데, 임금의 위엄이 바야흐로 치성해져 조정의 신하들이 목을 움츠리게 되었을 때에 맨먼저 논쟁하고 조금도 회피하지 않으므로, 임금도 그가 우직함을 알게 되었었다. 이로부터 양사(兩司)에서 함께 도로 거두기를 청했었으니 유헌이 시작해 놓았기 때문이었으나, 임금이 마침내 따르지 않으므로 해를 넘긴 뒤에야 비로소 정지했다.

이날 호조 판서(戶曹判書) 이민서(李敏敍)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하여 한탄하기를, "내가 차례차례 삼대(三代)의 조정을 섬기며 연석(筵席)에 드나든 것이 얼마인지를 알 수 없지만 일찍이 이러한 광경은 보지 못했었으니, 국가의 일이 장차 머물게 될 때를 알 수 없다."

했었다. 당초에 두 공주가 정승을 정할 때에 했다는 말은 단지 항간(巷間)에서 들은 말에 의거한 것이고 처음부터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금 역시 빙긋이 웃어버리며 노여워하지 않았고, 숙명 공주가 문안하러 들어왔을 때에 이르러서도 마침 한창 더운 참이라 얼굴이 붉어지고 기운이 다급했었어도 임금이 역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이번에 김만중의 일로 인해 갑자기 이런 분부를 내리게 된 것은 대개 공주가 장귀인(張貴人)이 자전(慈殿)의 상제(喪制)가 막 끝나자마자 즉각 도로 들어와 총애(寵愛)를 독차지함을 근심하여 여러 차례 불평하는 말을 하게 되었었다. 장씨(張氏)는 요망한 여인이라 이미 깊이 감정을 가지게 되었었고, 공주의 집이 또한 동평군(東平君) 이항(李杭)의 집과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김만중을 노여워함을 기회로 ‘그가 한 말의 근거는 두 공주에게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틈을 타 참소하고 헐뜯으므로, 임금이 그의 말을 받아들여 이런 분부가 있게 된 것이다. 공주들이 두려워하여 떨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조신(朝臣)들도 또한 골육간(骨肉間)의 변(變)이 있게 될까 염려하면서도 단지 속으로만 서로 근심하고 한탄할 뿐이었었다.

남구만양서(兩西)242) 에서 행전(行錢)243) 하게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때 하늘 가에서 별이 떨이지며 소리가 천둥치는 것 같았는데 관상감(觀象監)에서 보고하지 않으므로, 남구만이 이를 아뢰니, 임금이 이르기를,

"해감(該監)이 보고하지 않은 것은 재변을 숨기려는 뜻에서 한 것이 아니다."

하고, 죄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8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110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역사-전사(前史) / 과학-천기(天氣)

  • [註 238]
    숙명 공주(淑明公主) : 효종의 세째딸.
  • [註 239]
    숙안 공주(淑安公主) : 효종의 둘째딸.
  • [註 240]
    명정(銘旌) : 장례 때에 죽은 사람의 품계 등을 기록하여 관 앞에 세우는 기.
  • [註 241]
    빈계 사신(牝鷄司晨) : 암탉이 먼저 새벽을 알리느라고 운다는 뜻으로, 후비(后妃)가 국정을 마음대로 하거나 처첩(妻妾)이 가정을 마음대로 함의 비유.
  • [註 242]
    양서(兩西) : 황해도와 평안도.
  • [註 243]
    행전(行錢) : 물화(物貨)의 유통 과정에 돈을 주고받는 것.

○引見備局諸臣, 講論軍國庶務。 上曰: "金萬重使於今日待開門出去矣。 必遲徊觀望而不卽去矣。 日昨大臣陳達, 諸大臣多在外, 景象不佳, 國事不幸云, 而金壽恒李端夏則固由予不安, 趙師錫則臣下逐之矣。 予於今日, 有慨然可以痛哭之事, 今番加卜時, 諸公主適入來, 淑明問曰: ‘誰人爲之。’ 予曰: ‘趙師錫爲之。’ 公主曰: ‘其人未聞有才。’ 淑安則曰: ‘師錫好得銘旌資矣。’ 朝臣賢否, 何與公主? 而其言如此, 予實寒心。 驪陽府院君閔維重之喪, 諸公主例問慰於內殿, 故宮人私相報知, 使之入來。 淑明直來前高聲曰: ‘上無入來之命, 而尙宮使入來, 故敢來。’ 辭色異常, 面頸發赤, 自古朝紳之交結內官, 宮人之締通宮家, 皆在痛禁之科, 故上年備忘及之矣, 非有他意, 而諸公主自此懷疑, 大異於前, 予之腐心已久, 而誣辱君上, 豈無殃禍?" 領議政南九萬曰: "閨門之內, 以恩掩義。 先王同氣, 只有此數人, 雖有過失, 願思掩義之道。" 上曰: "卿聞此言, 不以爲怪, 以恩掩義, 是何言也? 見輕於臣僚, 受辱於至親, 如是安坐, 予實無狀。" 九萬曰: "上敎有若以公主之無禮, 致疑於金萬重所達之言根, 此似未安, 在聖明治心之道, 不宜億逆若是。" 上怒曰: "卿可謂蔽痼已甚, 予尙未盲, 雖聖人復起, 干預政事, 面慢君父, 必以爲非, 而今乃救解, 未可曉也。" 承旨朴泰遜曰: "今此下敎, 似欠和平, 四方傳之, 以爲何如? 金萬重爲人拙直, 原其本情, 出於有懷必達, 且萬重金益兼之遺腹子, 有七十老母, 其兄纔已卒逝。 萬重今又遠竄, 則其母無所依賴, 情理可矜矣。" 上曰: "朴泰遜殊甚放肆, 萬重以不忍聞之說, 加於君父, 而敢救解之。 公主事, 亦以爲出於不平, 以予爲構捏至親耶? 時事至此, 良可寒心。 牝鷄司晨, 尙有其戒, 況公主乎?" 時上威怒異常, 嗔罵大臣, 不少假借。 諸臣初欲救解金萬重, 而皆不敢言。 大司諫兪櫶進曰: "金萬重以閭巷浮浪無根之言, 至達天聽, 輕率之責, 誠有之矣。 然此不過自附於無隱之義而已。 且自古流言, 本無究得之理, 昔在仁廟朝, 有閭家女子選入宮中之說, 傳播中外, 大司諫李命俊上書極諫。 仁廟震怒, 特命究覈言根, 擧朝摧折, 無一人論列, 而臣之叔父省曾, 獨啓以爲不可。 聖祖翻然覺悟, 竟寢其命, 此非今日殿下之所當法者乎? 今此萬重之竄謫, 實出意外, 翰野驚駭, 氣象愁慘, 況今天災時變, 莫非驚心慘目, 而至於萬壽殿之災而極矣。 殿下正宜恐懼修省, 集衆善, 開言路, 以爲弭災輔治之方, 仍請還收萬重遠竄之命。" 上雖不從, 辭氣稍平。 年老樸野, 乃於天威方盛廷臣縮頸之日, 首先爭論, 不少回避。 上亦知其戇直也。 自是兩司俱請還收, 由發之也。 上終不從, 閱歲而後始停。 是日戶曹判書李敏叙, 出語人歎曰: "吾歷事三朝, 出入筵席, 不知其幾, 而未嘗見如此景象。 國事將不知稅駕之所矣。 當初兩公主卜相時所云云, 只據閭巷所聞, 初非有意, 故上亦微笑, 不以爲怒。 至於淑明問安入來時, 適當極熱, 以致面紅氣急。 上亦不以爲異, 今因萬重事, 猝發此敎, 蓋公主, 以張貴人於慈殿喪制纔畢, 卽爲還入, 專寵爲憂, 屢發不平之言。 張氏是妖人, 旣深憾之, 公主家且與家有隙, 故因上之怒, 萬重以其言根之出於兩公主, 乘間譖毁, 上入其言, 有此敎。 公主等惴慄不自保, 朝臣亦慮有骨肉之變, 而只私相憂歎而已。" 九萬請行錢于兩西。 上從之。 時有星落自天際, 聲如雷, 觀象監不爲報聞, 九萬以爲言。 上曰: "該監之不報, 非出於諱災之意也, 不之罪。"


  • 【태백산사고본】 20책 18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110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역사-전사(前史)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