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가 빈어를 간택하게 하다
예조에 명하여 빈어(嬪御)를 간택하도록 하였다. 이때 임금이 오랫 동안 저사(儲嗣)049) 가 없어서 위아래가 걱정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상기(喪期)를 마치자 뭇사람의 바람이 더욱 간절하였으며, 또 중궁(中宮)이 여러 차례 권유하므로, 임금이 빈어를 두기로 한 것이다.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내가 생각하건대, 조종조(祖宗朝)에서 반드시 후궁을 간택한 것은 대개 저사를 넓히려는 까닭이었다. 오늘날 숙의(淑儀)050) 가 미비한 것은 옛 제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내전(內殿)도 일찍이 이 뜻으로써 누누이 진청(陳請)하였으니, 그 말도 또한 사의(事宜)에 합당하므로, 마땅히 간택의 거조가 있어야 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대신에게 문의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판중추부사 정지화(鄭知和)가 아뢰기를,
"오늘날 신민(臣民)이 밤낮으로 크게 바라는 것은 오직 저사가 일찍 탄생하는 데에 있는데, 불행스럽게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으니 국가의 절박한 걱정이 어찌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성교(聖敎)는 고례(古禮)로써 헤아려 보고 조종의 제도로써 참고하여 보아도 모두 의거할 만한 바가 있으니, 이의(異議)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대 제왕들이 후궁을 많이 간택하여도 마침내 저사가 반드시 많았던 것만은 아니니, 더러 어색(漁色)051) 의 기롱을 면치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성명(聖明)에게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염려할 것은 아니나, 다만 염려되는 것은 성체(聖體)가 아직도 건강하지 못하셔서 성후(聖候)가 늘 편치 않으시니, 미연(未然)의 복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말하기 어려운 해를 끼칠 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우애(憂愛)하는 정성 이를 데 없어서 참망(僭妄)스런 말씀이 이에 이르렀으나, 오직 성상께서 스스로 헤아려 잘 처리하시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영중추부사 김수흥(金壽興)은 아뢰기를,
"예로부터 국가의 기업(基業)이 공고하자면 오직 본손과 지손이 백세를 누려야 하는데, 이처럼 어렵고 위태한 날을 당하여 진위(震位)052) 가 오래도록 비어 있으니, 신민의 절박한 걱정이 어찌 이보다 큰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성교(聖敎)가 반드시 이러한 데서 나왔다면, 이는 조종의 옛 제도뿐만 아니라, 고례(古禮)로 논하더라도 그 누구가 불가(不可)하다 하겠습니까? 한 번에 부덕이 갖춘 자가 간택되면 오히려 혹 가(可)하다 하겠지만, 지금 성상께서 춘추가 바야흐로 성년(盛年)이어서 여색을 경계함에 있으므로, 실은 뭇신하들이 모두 깊이 염려하는 바이니, 성상의 고명하신 학문으로 종묘 사직의 무거운 부탁을 생각하신다면, 성궁(聖躬)을 보호하시는 도리에 있어 반드시 조금도 소홀히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민정중(閔鼎重)은 아뢰기를,
"여러 대신이 아뢴 바는 벌써 옛 경전(經典)과 옛 제도에 의거하고, 또 지나친 걱정과 깊은 경계로써 거듭 아뢰었으니, 참으로 전하께 충성이 지극하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건대, 성교(聖敎)가 실로 뜻을 둔 데가 있고, 원래 빈어를 많이 두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참작하여 잘 처리하셔도 또한 불가(不可)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이상진(李尙眞), 좌의정 남구만(南九萬)은 아뢰기를,
"지금의 성교가 실로 종묘 사직의 대계에서 나왔다면 무릇 뭇신하의 성상을 축하하는 마음에 있어 그 누가 불가(不可)하다고 하겠습니까? 단지 생각하건대, 예로부터 국가의 화복(禍福)의 단서가 혹은 빈어를 넓히려는 데 있다고 하나, 하늘에 계신 조종(祖宗)의 묵묵한 보우(補祐)로 세자의 탄생을 거의 바라볼 수 있다면 깊이 생각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대신의 진계(陳戒)한 말은 지극하다 할 만하다. 다만 나의 생각은 후사가 점점 늦추어지는 것을 염려해서이지, 본시 후궁을 많이 간택하려는 계획은 아니다. 마땅히 다시 요량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수일 후에 임금이 연석(筵席)에 나와 하교(下敎)하기를,
"여러 대신들의 경계하는 뜻이 간절하고 지극하므로, 다시 요량을 더하겠다고 전교한 바 있다. 이래저래 생각하여 보건대, 나의 나이 장차 30인데, 아직도 후사가 없는 것은 하루 이틀 미루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종사(宗社)와 신민(臣民)의 부탁을 생각할 적마다 자신도 모르게 한밤에 한숨을 쉬게 되고, 혹시 병을 앓을 적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갑절 간절하였다. 당초 선택의 명도 빈어를 많이 두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참으로 국가의 대계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무오년053) 에 큰 병을 앓은 뒤로는 조섭(調攝)의 경계를 삼가하여 일찍이 조금도 늦춘 적이 없었으니, 비록 대신의 진계(陳戒)하는 말이 없다 하더라도 내 어찌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않겠는가? 이는 만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니, 예조로 하여금 속히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인조조(仁祖朝)에서 장귀인(張貴人)을 간택하던 때의 일을 상고해 내도록 명하였는데, 춘추관(春秋館)에서 실록을 상고해 보아도 나오는 곳이 없다고 아뢰니,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내간(內間)에 있는 고사를 가져다 보니 조종조에서 숙의(淑儀)를 간택할 때의 처자 단자(處子單子)는 다만 음관(蔭官) 및 생원(生員)·진사(進士)·유학(儒學)에게만 받들게 하였고, 또 인조 때의 궁인(宮人)에게 물었더니, 삼간택(三揀擇)한 날에 별궁에 나가 있게 하였다가, 한 달이 된 뒤에 입궐시켰다고 한다. 모든 것을 이에 의거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9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역사-전사(前史)
- [註 049]저사(儲嗣) : 왕세자(王世子).
- [註 050]
숙의(淑儀) : 조선조 때 내명부(內命婦)의 종2품(從二品) 품계.- [註 051]
○命禮曺選嬪御。 時上久無儲嗣, 上下莫不憂之, 喪期旣畢, 群望愈切, 中宮又屢勸, 上置嬪御。 上乃下敎曰: "予惟自祖宗朝, 必選後宮者, 蓋所以廣儲嗣也。 今淑儀未備, 不但有違於古制, 內殿嘗以此意, 縷縷陳請, 其言亦合事宜, 似當有選擇之擧。 其令禮官, 問議大臣。" 於是, 領議政金壽恒ㆍ判府事鄭知和以爲: "今日臣民之日夜顒望者, 惟在於儲嗣之早誕, 而不幸遲延至今, 國家切急之憂, 孰大於是? 今此聖敎, 揆以古禮, 參以祖宗之制, 俱有可據, 無容異議。 然歷代帝王, 多選後宮, 終未必廣儲嗣, 而或不免爲漁色之譏。 此雖非萬有一慮於聖明者, 而第念聖體猶欠充健, 聖候常多不豫, 欲求未然之福, 反貽難言之害, 則亦不可不深長思也。 區區憂愛之誠, 靡所不至, 僭妄及此, 惟在聖上自量而審處之。" 領府事金壽興以爲: "自古國家基業之鞏固, 亦惟曰本支百世, 而當此艱危之日, 震位久闕, 臣民切急之憂, 寧有大於此者哉? 今此聖敎, 必出於此, 則此不但祖宗之舊制, 論以古禮, 夫誰曰不可? 一番德選, 猶或可也, 而今聖上春秋方盛, 在色之戒, 實群下所共深慮者, 以聖上學問之高明, 念宗社付託之重, 則必不少忽於將護聖躬之道矣。" 判府事閔鼎重以爲: "諸大臣所陳, 旣據古經與舊制, 而又復申之以過慮深戒, 誠可謂忠殿下之至矣。 抑念聖敎, 實有所在, 而元非廣置嬪御之意, 則參量而審處之, 亦無不可。" 判府事李尙眞, 左議政南九萬以爲: "今聖敎實出於宗社之大計, 凡在群下祝聖之心, 夫誰曰不可哉? 第念自古國家禍福之端, 或在於嬪御之廣, 而上天祖宗之所默祐, 子同之生方, 庶幾有望, 恐不可不深慮而處之。" 上曰: "諸大臣陳戒之言, 可謂至矣。 而但予意爲慮嗣續之漸遲, 而本非廣選後宮之計也。 當更加思量而處之。" 後數日, 上臨筵下敎曰: "諸大臣戒意切至, 故以更加量處爲敎矣。 反覆思之, 予年將三十, 尙無嗣續, 一日二日, 以至于今。 每念宗社臣民之託, 不覺中夜太息, 而或當疾病之時, 倍切憂懍。 當初選擇之命, 非出於廣置嬪御之意, 而誠爲國家之大計也。 予自戊午大病以來, 愼攝之戒, 未嘗少弛。 雖無大臣陳戒之言, 予豈不念及于此乎? 此出於萬不獲已, 令禮曺趁速擧行。" 又令考出仁祖朝張貴人揀擇時事, 春秋館奏, 考之實錄, 無見出處, 上下敎曰: "取閱內間所在故事, 祖宗朝淑儀揀擇時處子單子, 只奉於蔭官及生進幼學矣, 且問仁祖朝故宮人, 則三揀日出就別宮, 一朔後入闕云。 竝令依此擧行。"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9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역사-전사(前史)
- [註 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