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에서 호남 백성들에게 내수사의 땅을 도로 돌려주기를 건의하다
당초에 호남 백성들이 본읍(本邑)의 전부(田賦)가 너무 지나치게 무거운 것은 꺼려하고, 내수사의 수세가 가벼운 것을 이롭게 여겨 토지를 억지로 내수사에 소속시켜 놓고, 이어 내수사의 위호(位號)로써 양안(量案)에 달아 놓았었는데, 그 뒤 내수사에서 이를 움켜잡고 그 토지를 추심하고는 차인(差人)들이 그대로 그 수세를 균등히 분배하니, 백성들이 비로소 민망하게 여겨 앞을 다투어 세전(世傳)의 문권을 가지고 호소하기를 마지 않았다. 암행 어사 김만길(金萬吉)이 돌아와서 그 실정을 아뢰자, 이를 호조에 내려 복주(覆奏)하게 하였는데, 김만길의 말과 같이 그 밭을 백성에게 돌려 줄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양안에 달아 놓은 지 오랜 토지를 이제 내수사에서 추심한 뒤에 갑자기 문권을 가지고 이처럼 호소하는 것은 그 정상이 몹시 간악하다 하여 시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우승지 윤이도(尹以道)가 집주(執奏)하기를,
"먼 지방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처음에는 비록 거짓을 꾸몄다 하더라도 그 세전(世傳)의 문권이 다 함께 있고, 양안에 주인의 이름이 분명히 실려 있는데, 백년 뒤에 와서 하루아침에 빼앗긴다면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사세로 보아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어찌 내수사의 약간의 토지를 삼아 먼 지방 백성의 무한한 원망을 사서야 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드디어 전의 명을 거두고 각 고을에 명하여 감색(監色)을 정하여 수세(收稅)하여 내수사에 들이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김수흥(金壽興)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이는 전에 없었던 법규로서 뒷날에 폐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다만 내수사의 차인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전제(田制) / 농업-양전(量田) / 재정-전세(田稅)
○初湖南民人等, 憚本邑田賦之偏重, 而利內司收稅之輕歇, 以其田土, 冒屬內司, 仍以內司位號, 懸錄於量案, 其後內司, 遂爲據執, 盡推其田土差人輩, 仍與之均分其稅, 民人等始以爲悶, 爭持其世傳券契, 呼訴不已。 暗行御史金萬吉, 歸白其狀, 下戶曺覆奏, 請如萬吉言, 還其田于民, 上以量案懸錄之久遠田土, 到今自內司推尋之後, 遽稱文券, 有此呼訴, 情狀痛惡, 使之勿施。 右承旨尹以道執奏言: "遐方愚民, 始雖行詐, 而其世傳文券俱在, 量案主名昭載, 而百年之後, 一朝見奪, 其爲呼冤, 勢所必至, 何可爲內司若干田土, 而取遠方無限民怨也?" 上遂收前命, 令各其邑定監色, 收稅領納于內司。 至是, 金壽興白于上曰: "此無前規, 恐有後弊。" 上曰: "然則只令內司差人收納可也。"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전제(田制) / 농업-양전(量田) / 재정-전세(田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