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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6권, 숙종 11년 7월 14일 임신 1번째기사 1685년 청 강희(康熙) 24년

응교 신엽 등이 차자를 올려 재야의 어진 선비를 등용하라 하여 답하다

응교(應敎) 신엽(申曅)·교리(校理) 이이명(李頤命)·수찬(修撰) 신계화(申啓華)·부수찬(副修撰) 김만길(金萬吉)이 응지(應旨)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우러러 생각하오니 성명(聖明)께서는 경전(經傳)을 널리 읽어서 학문이 날로 향상하시나, 허명(虛明)하신 몸에는 오히려 누(累)에 매임을 면하지 못하시니, 궁장(宮庄)의 내노비(內奴婢)의 일은 매양 치우치게 비호하시고 반포(頒布)되지 않는 은택(恩澤)의 비용은 과람(過濫)한 데로 돌아가서, 기뻐함과 성냄이 얼굴을 바꾸고 말씨가 너무 드러나며, 호령(號令)을 발포하고 명령을 시행하는 것이 아침 저녁으로 개역(改易)되니 백성들이 일정한 뜻이 없고 선비들은 일정한 의논이 없습니다. 이는 전하의 한마음이 다 바르지 못한 데서 그 유폐(流弊)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 크게 두렵지 않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사사로운 뜻이 멋대로 흐르고 논의(論議)가 갈라진 것이 많아서 서로가 헐뜯고 배척합니다. 이는 오늘의 신자(臣子)들이 죽어도 남은 책임(責任)이 있겠습니다. 아! 지난번에는 당인(黨人)들이 권세를 마음대로 부려서 마침내는 충성스럽고 어진이를 살해하였기에 종사(宗社)가 거의 위태로왔습니다.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모골(毛骨)이 송연합니다. 이제 큰 덕화(德化)가 경신(更新)되었으니 도궤(刀几)072) 에 출입하는 자가 모두 조정에 나와서 거의 힘과 마음을 함께 하여 국맥(國脈)을 부조(扶助)하고 사기(士氣)를 진작(振作)하여 평명(平明)의 다스림을 빛나게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이심(貳心)하는 마음을 내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으니, 진실로 졸졸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마침내는 하늘까지 창일하는 큰물이 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슴을 쫓을 때는 태산(泰山)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옛사람이 이미 깊은 경계가 있었습니다. 만일 소인(小人)이 있어서 틈을 엿보아 가만히 일을 꾸미면 필경에는 국가가 마침내 그 재화(災禍)를 받게 됩니다. 오늘날 조정에서 함께 사모하여 우러르는 이는 봉조하(奉朝賀) 송시열(宋時烈)만한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물러나 있은 지가 해를 지나도 아직 조정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정초(旌招)073) 해야 할 선비들이 다 초야(草野)에 숨어 있습니다. 이들을 만일 정성과 예우(禮遇)를 더욱 더하여 기어이 불러들이게 한다면 사림(士林)의 모범이 되어 논의(論議)가 저절로 귀일될 것입니다. 조정이 화목하고 태평하면 백성들이 그 은택(恩澤)을 입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이와 반대여서 민생들이 근심하고 고생하여도 거의 서로 잊을 지경입니다. 각 아문(衙門)에서는 이익을 구하는 것이 날로 심하고 여러 군문(軍門)에서는 수괄(搜括)이 더욱 급합니다. 다만 이것만이 아닙니다. 조정에서 숭장(崇奬)하고 임사(任使)하는 것이 거의 다 잔혹(殘酷)한 속리(俗吏)들 뿐이므로 화락하고 어진 선비는 한두 명도 없고, 기내(畿內)의 수령 자리는 의원(醫員)과 기술(技術)과 잡류(雜類)들이 으레 보임(補任)되는 과(窠)074) 가 되었으니 피곤하고 파리한 백성들이 어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나라를 근심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진언(進言)을 깊이 가상(嘉尙)하게 여기니, 좌우(左右)에 두고서 유심(留心)하여 살펴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註 072]
    도궤(刀几) : 적도(赤刀)와 옥궤(玉几)를 이름. 이 두 물건은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사용하는 침방(寢房)의 보물이니, 즉 왕의 궁전을 이른 말임.
  • [註 073]
    정초(旌招) : 옛날에 대부(大夫)를 정(旌)으로 초빙한다고 하니, 즉 폐백(幣帛)을 가지고 선비를 초빙한다는 말.
  • [註 074]
    과(窠) : 벼슬자리.

○壬申/應敎申曄、校理李頣命、修撰申啓華、副修撰金萬吉, 應旨上箚曰:

仰惟聖明, 博洽經傳, 學問日將而虛明之體, 猶未免係累, 宮庄內奴之事, 每加偏護, 匪頒恩澤之費, 歸於過濫, 喜怒易形, 辭氣太露, 發號施令, 朝夕改易, 民無定志, 士無定論。 是殿下一心未盡正, 而流弊至此, 豈不大可懼哉? 朝廷之上, 私意橫流, 論議多岐, 互相詆排。 今日臣子, 死有餘責。 嗚呼! 向者黨人用事, 終至戕害忠賢, 宗社幾危。 思之至今, 毛骨俱竦。 今大化更新, 出入刀几者, 彙征於朝, 庶幾同心一力, 扶國脈振士氣, 以彰平明之治。 而乃自生疑貳, 囂囂訛訛, 誠不知涓涓之流, 終至滔天。 ‘而逐鹿不見泰山。’ 古人已有深戒也。 若有小人, 伺隙潛發, 則畢竟國家終受其禍矣。 今日朝廷所共慕仰, 無如奉朝賀宋時烈。 而退處經年, 尙未造朝。 其他旌招之士, 亦皆遜野, 若益加誠禮, 期於召致, 則士林矜式, 論議自歸于一矣。 朝廷和泰則生民蒙其澤。 而今則反是, 民生愁苦, 幾乎置之相忘之域。 各衙門征利日甚, 諸軍門搜括益急。 不但此也。 朝廷之所以崇奬任使, 類多俗吏殘酷者, 豈弟慈諒之士, 絶無一二, 畿內守令, 爲醫技雜類例補之窠, 困悴之民, 安得不怨咨乎?

答曰: "憂愛進言, 深用嘉尙, 可不置諸左右, 留心察納焉。"


  • 【태백산사고본】 18책 1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