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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6권, 숙종 11년 6월 4일 계사 2번째기사 1685년 청 강희(康熙) 24년

대흥 산성의 옥사에 관한 좌의정 남구만의 차자에 답하다

좌의정(左議政) 남구만(南九萬)이 차자를 올려 말하기를,

"지난번에 대흥 산성(大興山城)에서 은(銀)을 도적질한 죄인(罪人)에게 자식을 데려다가 증인을 삼아서 처참(處斬)의 죄를 받게 한 것은 이륜(彛倫)을 손상시킨 일이니, 듣기에 매우 놀랍습니다. 그러기에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말씀드려서 조사하여 다스렸던 관원(官員)에게 죄주기를 청합니다. 포도 대장(捕盜大將) 신여철(申汝哲)·형조 판서(刑曹判書) 남용익(南龍翼)이 상대하여 논의하였던 말을 보았습니다만, 스스로 ‘원래 잘못된 것이 없다’고 하므로, 신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다시 포도청(捕盜廳)의 계목(啓目)을 상고하여 보니, 은(銀)을 도적질한 자를 추핵(推覈)할 적에 세속의 예로 방법(龐法)을 베풀고 열두 살인 어린아들을 불러들여 그의 아비가 은을 훔쳐간 절차(節次)를 물으니, 그 아이가 말하기를, ‘아비가 도적질을 하였을 적에 어미가 이를 말렸습니다’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증거를 삼아 조사하여 문초하고 취복(取服)하였습니다. 그 별장(別將)이 이렇게 이치를 거슬린 일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포도 대장(捕盜大將)이 간사한 뜻과 근거없는 말로 그 별장(別將)을 꾸며서 변호하였습니다. 당초에 한 짓이 이미 인륜(人倫)을 멸망시키는 과실(過失)을 범한 것인데 이제 이 수식(修飾)한 것은 더구나 거짓말을 한 죄과(罪科)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형조(刑曹)에 이르러서는 벽을 뚫고 은(銀)을 훔쳐간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고 이륜(彛倫)을 손상시킨 것은 매우 큰일인데도 포도청의 죄안(罪案)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루어서 그를 처참(處斬)하는 율(律)로 단정(斷定)하여 마침내 아비를 죽인 죄를 만들었으니, 무슨 말로 스스로 면하겠습니까? 지난해에 인빈(仁嬪)의 묘(墓)에 변(變)을 일으킨 도적이 있었기에, 제사를 받드는 왕자(王子)가 변을 일으킨 자의 아들을 붙잡아서 형조에 보냈더니, 형조에서 그 아들의 초사(招辭)를 받아서 정좌하고자 하였습니다만, 여러 대신들이 이는 옥사(獄事)의 체통에 어긋남이 있다고 하여, 그 당상(堂上)을 추고(推考)하였습니다. 이는 오래된 일이 아니어서 본조(本曹)에서도 의당(宜當) 알고 있을 텐데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한갓 군수(軍需)를 훔쳐간 것만 중하게 여겼고 천리(天理)와 강상(綱常)은 대단하게 생각지 못하고는 이에 법례(法例)가 그렇지 않고 생각이 나오지 않았으니, 신은 속으로 괴이하게 여깁니다. 신이 평일(平日)에 스스로 내세우는 것을 믿게 하기에는 부족하여 한번 규정(糾正)하는데도 노여운 기색과 성난 어사로 굽고 곧은 것을 비교하고 짧고 긴 것을 다투어 반드시 이기고자 합니다. 신이 비록 변변찮은 사람이지만 처해 있는 지위는 이에 옛사람의 지위이니 어찌 감히 편안하게 있으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까? 빨리 물리쳐서 물러나기를 명하여 주소서."

하였다. 답하기를,

"내가 이 옥사(獄事)를 보았다. 도적이 죄를 승복(承服)한 것은 오로지 그 아들의 초사(招辭)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이제 아비를 죽이게 한 죄를 증거하여 이룸으로써 유사(攸司)의 신하를 깊이 책하는 것은 실로 과중하다 하겠다. 인빈(仁嬪)의 묘소(墓所)에서 있었던 일은 사체(事體)가 능침(陵寢)에 비할 수는 없다. 이제 이를 인용하여 예(例)를 삼으면 그들의 마음을 복종(服從)시킬 수 없으니, 경이 이로 인하여 불안(不安)해 하는 것은 또한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느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강상(綱常) / 역사-전사(前史)

○左議政南九萬上箚曰:

頃者大興山城偸銀罪人, 以子爲證, 成其處斬之罪, 傷敗彝倫, 甚駭聽聞。 故敢陳愚見, 請罪按治之官矣。 卽見捕盜大將申汝哲、刑曺判書南龍翼置對之辭, 自以爲 ‘元無所失,’ 臣不勝瞿然。 臣更考捕盜廳啓目, 當推覈偸銀也, 以俗例龐法施之, 招入其十二歲兒子, 問其父偸銀節次, 其兒以爲 ‘其父作賊, 其母禁止云。’ 以此爲證, 按問取服。 別將悖理之事, 固無足言, 捕將曲意游辭, 回護別將。 當初所爲, 旣犯滅倫之失, 今此修飾, 更歸謾言之科。 至於刑曺, 則穴壁偸銀, 其事至小, 傷敗彝倫, 其事至大, 而蒙成捕廳之案, 斷以處斬之律, 成其弑父之罪, 何辭自免乎? 上年仁嬪墓, 有作變之賊, 奉祀王子, 捉送作變者之兒於刑曺, 刑曺捧其兒招, 將欲定罪, 諸大臣以有違獄體, 推其堂上。 此非久遠之事, 本曺宜有以知之, 而不能出此, 徒知偸竊軍需之爲重, 不念天理綱常之爲大, 乃以爲法例之所不然, 思慮之所不出, 臣竊怪之。 臣平日所自立, 不足見信, 一番糾正, 亦皆盛氣勃辭, 與之較曲直爭短長, 必欲得勝。 臣雖無狀, 所處之地, 乃古人之位, 何敢晏然不自愧恥? 伏乞亟命斥退。

答曰: "予觀此獄, 賊人承款, 不專在於其子之招。 今以證成弑父, 深責攸司之臣, 實涉過重。 仁嬪墓所, 事體非敢擬於陵寢。 今乃引此爲例, 則亦無以服其心也, 卿之因此不安, 不亦太過乎?"


  • 【태백산사고본】 18책 1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강상(綱常)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