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합격자의 수준 미달에 관해 논하다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이 아뢰기를,
"이번 정시(庭試) 때에 외방(外方)의 유생(儒生)들이 장차 널리 인재를 뽑는다는 말을 듣고 올라온 자가 많았는데, 입장한 뒤에 시골 선비가 변려문(駢儷文)600) 에 익숙하지 못하여 거의 예백(曳白)601) 이 많았으니, 실망이 막심합니다. 전부터 대소(大小)의 과거를 시행한 뒤에는 혹시 인재를 빠뜨릴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대륜차(大輪次)602) 를 베풀어 회시(會試)603) 에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외방 유생(儒生)이 아직 흩어지기 전에 성균관(成均館)에 설행(設行)하도록 분부하여 위열(慰悅)케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좌상(左相)의 뜻도 그러하니, 감히 이를 우러러 아룁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의 말이 바로 내 뜻과 부합하니, 이에 의하여 거행토록 하라."
하고, 인하여 하교하기를,
"이번 정시에 외방의 거자(擧子)가 무려 수천 명이었는데, 익힌 바가 경향(京鄕)의 차이가 있어서 예백(曳白)한 자가 반(半)이 넘었다고 하니, 이는 많은 선비의 실망일 뿐만 아니라, 또한 어찌 팔도(八道)와 함께 경사스러워하는 뜻이겠는가? 비록 대륜차(大輪次)를 설행하게 한다 하더라도 별도로 용동(聳動)시키는 일이 없을 수 없으니, 모두 내일 아침에 성균관에 모이게 하고, 대제학(大提學)도 문을 열기를 기다려서 패초(牌招)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무과 초시(武科初試)에 이미 5백 명을 뽑았는데, 전시(殿試)의 규정이 전에 비하여 조금 쉬웠으니, 내 뜻은 오로지 사람을 널리 뽑으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방목(榜目)604) 을 보건대, 입격(入格)한 자가 겨우 5분의 1이니, 낙막(落莫)함이 어찌 문무(文武)가 다를 바 있겠는가? 유엽전(柳葉箭)605) 하나를 명중시킨 자와 기추(騎蒭)606) 에서 하나를 명중시킨 자는 성책(成冊)에 따라 한결같이 급제(及第)를 주도록 하라."
하였다. 승지(承旨) 김진귀(金鎭龜)가 계청하기를,
"해조(該曹)로 하여금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게 하여 사체(事體)를 중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일찍이 전의 정시(庭試)에서도 거의 백 명을 시험해 뽑은 때가 있었으니, 결코 변통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등이 모두 말하기를,
"과장(科場)은 사체가 지극히 엄정(嚴正)한 것인데, 규례를 변경해서 그 액수(額數)를 첨가하여 무궁한 폐단을 열게 하는 것은 마땅치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 의논에 따라 전의 명령을 정지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1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註 600]변려문(駢儷文) : 한문체(漢文體)의 한 가지. 수사(修辭)하는 데 넉 자와 여섯 자의 대구(對句)를 많이 쓰고, 음조(音調)를 맞추며 고사(故事)를 많이 인용(引用)함.
- [註 601]
예백(曳白)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묘진경(苗晉卿)이 선거(選擧)를 맡았을 때에 장의(張倚)의 아들 장석(張奭)이 으뜸을 차지하였다 하여 현종이 다시 시험하였는데, 장석이 종이와 붓을 들고 종일토록 한 문자도 이루지 못하고 백지(白紙)를 제출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이를 예백(曳白)이라 하였다는 고사(故事).- [註 602]
대륜차(大輪次) : 과거에 낙방한 사람에게 다시 보이던 시험.- [註 603]
회시(會試) : 문무과(文武科)의 초시 급제자가 서울에 모여서 다시 보던 복시(覆試).- [註 604]
방목(榜目) : 과거 급제자의 성명을 적은 책.- [註 605]
유엽전(柳葉箭) : 살촉이 버들잎처럼 생긴 화살.- [註 606]
기추(騎蒭) : 무과 초시(初試)에 과하는 무예의 하나로, 20보(步) 간격으로 세워 놓은 짚 인형 다섯 개를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잇따라 활로 쏘아 맞히게 하던 것.○領議政金壽恒啓曰: "今番庭試時, 外方儒生, 聞將廣取, 上來者多, 入場之後, 鄕儒不閑駢儷, 率多曳白, 失望莫甚。 自前大小科後, 或慮遺才, 別設大輪次, 許赴會試, 趁此外方儒生未散之前, 分付成均館, 設行慰悅似宜。 左相之意亦然, 敢此仰稟。" 上曰: "大臣之言, 正合予意, 依此擧行。" 仍下敎曰: "今番庭試, 外方擧子, 無慮數千, 而所習有京鄕之異, 曳白者過半云, 不但多士失望, 亦豈與八路同慶之意哉? 雖使設行大輪次, 而不可無別樣聳動之擧, 竝於明朝, 盡會泮宮, 大提學亦爲待開門牌招。" 又敎曰: "武科初試, 旣取五百, 殿試規矩, 比前稍歇, 予意專在廣取。 及見榜目, 入格者僅五分之一, 其所落莫, 豈有文武之異哉? 柳葉箭一中, 騎芻一中者, 一從成冊, 一體賜第。" 承旨金鎭龜啓: "請令該曹, 詢問大臣, 以重事體。" 上曰: "曾前庭試, 亦有近百試取之時, 決不可不變通。 卽爲問啓。" 領議政金壽恒等, 皆以爲: "科場事體至嚴, 不當變其規添其額, 以開無窮之弊。" 上從其議, 寢前命。
-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1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註 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