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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15권, 숙종 10년 8월 9일 임인 1번째기사 1684년 청 강희(康熙) 23년

국휼시 과장 출입 복색에 관해 의논하다

예조(禮曺)에서 아뢰기를,

"국휼(國恤)의 졸곡(卒哭) 후에는 사자(士子)가 학교에 들어갈 때에 백의(白衣)·흑두건(黑頭巾)을 한다는 것이 《오례의(五禮儀)》에 실려 있는데, 선묘(宣廟)·임신년(壬申年)435) 국휼 때에는 단지 백관(百官)의 복색만 백모(白帽)·백대(白帶)로 고치고, 사자(士子)는 거론하지 아니하였으며, 기해년436) 국휼 때에는 본조(本曹)에서 태학(太學)에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졸곡(卒哭) 뒤에 선인(選人)이 조건(皁巾)과 청대(靑帶)를 하는 것은 이미 주자(朱子)의 말에 있고, 생원(生員)·진사(進士)가 학교에 들어갈 때에 흑두건(黑頭巾)을 쓰는 것 또한 시왕(時王)의 제도이니, 이에 의거하여 행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말하건대 지금 사자(士子)가 학교에 출입하는데 흑건(黑巾)을 쓰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나, 다만 과정(科場)에 출입하는 데에도 흑건을 쓰는 것이 과연 도리에 합하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선묘조(宣廟朝)의 개정한 법에 따라 이를 논하면, 조관(朝官)과 사자가 이동(異同)이 있을 수 없을 듯하나, 만약 주자(朱子)의 ‘선인(選人)은 조건(皁巾)과 청대(靑帶)를 쓴다.’는 말을 따른다면 학궁(學宮)과 과장(科場)을 물론하고 흑건(黑巾)·흑대(黑帶)를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신의 조(曹)에서 억단(臆斷)할 바가 아니니, 청컨대 대신에게 의논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겼다.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판부사(判府事) 정지화(鄭知和)·영부사(領府事) 김수흥(金壽興)·청성 부원군(淸城府院君) 김석주(金錫胄)·우의정(右議政) 남구만(南九萬) 등은 말하기를,

"기해년(己亥年)의 국휼(國恤) 때에는 유현(儒賢)으로서 조정에 있는 이가 많았으니, 강정(講定)한 바가 반드시 의견(意見)이 있을 것인데, 지금에 와서 이를 변개(變改)하는 것 또한 중난(重難)합니다. 감시(監試)의 과일(科日)이 모레에 있는데, 갑자기 전의 법규(法規)를 변경하는 것은 사세가 급박하므로, 천천히 의논하여 강정(講定)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고, 판부사(判府事) 이상진(李尙眞)은 말하기를,

"선인(選人)은 이미 부제(祔祭)를 지낸 뒤에 최복(衰服)을 벗고는 조건(皁巾)과 청량삼(靑凉衫)으로 상(喪)을 마치는 것이 비록 주자(朱子)의 정론(定論)이라 하나, 지금의 유생(儒生)은 졸곡(卒哭) 후에 최복을 벗는 절차가 없고, 항상 백립(白笠)과 백대(白帶)를 착용하고 상(喪)을 마치는데, 홀로 과장(科場)에서의 건(巾)·대(帶)만 별도로 검정색을 갖추는 것은 그것이 진실로 주자의 뜻에 합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주자가 정한 군신복의(君臣服議)도 오히려 준행(遵行)하지 않으면서 단지 그 고금(古今)이 다른 유복(儒服)만을 취하여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례의》 가운데 조신(朝臣)의 오사모(烏紗帽)의 제도를 이미 백사모로 변경하였으니, 유생의 흑건도 마땅히 변경하여 백건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선묘조(宣廟朝)에서 이미 조사(朝士)의 사모를 변경하였는데, 이제 성상께서 또 유생의 건을 변경하시면 진실로 선왕(先王)을 따르는 같은 법이 될 것이니, 진실로 결단하여 행하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사세가 군색하고 급박하니, 차라리 정시(庭試)와 회시(會試)를 기다려서 미리 알려서 흰 것으로 변경하게 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당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백관(百官)의 복색을 이미 변경하였는데, 오로지 사자(士子)만 흑건으로 학교와 과장(科場)을 출입한다는 것은 진실로 미안하다. 이 뒤로는 백의와 백건으로 일체 제도를 정하여 시행하되, 이번 감시(監試)는 단지 하루밤이 남았으므로 형세가 주선하기 어려울 것이니, 아직 근일의 법에 의하여 흑건을 쓰게 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2면
  • 【분류】
    의생활-예복(禮服) / 출판-서책(書冊)

  • [註 435]
    임신년(壬申年) : 1572 선조 5년.
  • [註 436]
    기해년 : 1659년 효종이 승하한 해.

○壬寅/禮曹言: "國恤卒哭後, 士子入學校, 白衣黑頭巾, 載於《五禮儀》, 而宣廟壬申國恤時, 只改百官服色, 爲白帽白帶, 士子則不爲擧論, 己亥國恤, 本曹行文太學, 有曰: ‘卒哭後選人之皂巾靑帶, 旣有朱子之說, 生進之入學校黑頭巾, 亦是時王之制, 不可不據此行之。’ 以此言之, 卽今士子之出入學校用黑巾, 不爲無據, 而但未知科場出入, 亦用黑巾, 果合於道理否也? 若從宣廟朝改定而論之, 則朝官士子, 似不可異同, 若從朱子 ‘選人皂巾靑帶之說。’ 則勿論學宮科場, 似當用黑巾黑帶。 非臣曹所可臆斷, 請議大臣。" 上可之。 領議政金壽恒, 判府事鄭知和, 領府事金壽興, 淸城府院君 金錫冑, 右議政南九萬等以爲: "己亥國恤時, 儒賢在朝者多, 其所講定, 必有意見, 到今變改, 亦涉重難。 監試科日, 在於再明, 猝變前規, 事勢急遽, 徐議講定似當。" 判府事李尙眞以爲: "選人旣祔除衰, 而皂巾靑涼衫以終喪, 雖是朱子之定論, 而今之儒生, 旣無卒哭後除衰之節, 常着白笠帶, 以終喪, 則獨於科場巾帶, 別具黑色, 固未知其允合於朱子之意。 而朱子所定之君臣服議, 尙未得遵行, 則不必只取其古今異宜之儒服而行之。 《五禮儀》中, 朝臣烏帽之制, 旣變爲白帽, 則儒生之黑巾, 亦當變爲白巾。 宣廟朝, 旣變朝士之帽矣, 今聖上, 又變儒生之巾, 則實是遵先王而同一揆, 誠宜斷而行之。 第今事勢窘急, 無寧待庭試及會試, 預爲知會, 使之變白, 似合事宜。" 上敎曰: "百官服色, 旣已變改, 則獨於士子, 以黑巾出入學校試場, 實涉未安。 今後則以白衣巾, 一體定制施行, 而今番監試, 只隔一宵, 勢難周旋, 姑依近規, 着黑巾可也。"


  •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2면
  • 【분류】
    의생활-예복(禮服)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