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에 나가 국휼시 의복과 함경 감사 권시경에 관해 논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심경(心經)》 우산장(牛山章)을 강(講)하다가 영사(領事) 김수항(金壽恒)이 말하기를,
"불가(佛家)와 우리 유가(儒家)에서 조심(操心)하는 것은 같으나, 불가(佛家)에서는 좌선(坐禪)427) 하고 입정(入定)428) 하는 것이 고목 사회(枯木死灰)429) 와 같은 바 있고, 유가(儒家)에서는 마음이 바로 활물(活物)이어서 반드시 존양(存養)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사람이 낮에 한 바를 청조(淸朝)에서 체험하면 그 그릇됨을 많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신이 효묘조(孝廟朝) 때 부제학(副提學)으로 있으면서 마침 이 장(章)을 강(講)하였는데, 봉조하(奉朝賀)430) 송시열(宋時烈)도 입시(入侍)하여 반복해서 논란(論難)하자, 효묘께서 하교하시기를, ‘평소 지나친 일로 밤새도록 생각하면 비로소 그 잘못을 깨달을수 있었으니, 이로써 공부하면 점점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성교(聖敎)가 어제와 같습니다. 원하건대, 성상께서도 이를 체인(體認)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임금은 하루의 만기(萬機)에 조존(操存)하기가 더욱 어려우니, 이 장(章)을 힘쓰는 것이 가장 마땅하다."
하였다. 김수항이 말하기를,
"전부터 국휼(國恤) 3년안에는 과장(科場)에서 사자(士子)의 무리가 의례 백의(白依)와 백건(白巾)을 착용하였는데, 근래에 성균관[泮庠]에서 제술(製述)할 때에 모두 흑건(黑巾)을 쓴다고 하니, 이는 자못 온당하지 못합니다. 이제 감시(監試)가 이미 임박하였으니, 사자(士子)는 백의(白衣)·백건(白巾)으로 과장(科場)에 들어오게 하는 일을 예조(禮曹)로 하여금 미리 품정(稟定)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겼다. 지평(持平) 이덕성(李德成)이 아뢰기를,
"북문(北門)의 요해처[鎖鑰]는 임무가 매우 중하나, 계급을 뛰어 올려서 임명하는 것은 더욱 그 선임을 삼가야 합니다. 새로 제수한 함경 감사(咸鏡監司) 권시경(權是經)은 본래 성망(聲望)이 없고, 또한 성적(成績)이 없는데, 갑자기 이에 발탁되었으므로 물의가 만족해 하지 않으니, 청컨대 개정(改正)하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김수항에게 묻기를,
"이 말이 어떠한가?"
하자, 김수항이 말하기를,
"권시경은 사람됨이 본래 매우 자상하고 명확합니다. 일찍이 영남(嶺南)을 안찰(按察)하여 나라 일에 마음을 다하였으니, 이제 비록 바꾼다 하더라도 바꾼 바가 반드시 권시경보다 어질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권시경은 출입하며 근시(近侍)하여 내가 본래 그 사람됨을 알고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덕성(李德成)이 또 말하기를
"이번 칙사(勅使)의 행차가 이르는 곳마다 부채를 요구하였는데, 규격 밖의 일이라하여 모두 응하지 아니하였으나, 순안 현령(順安縣令) 이공권(李公權)은 특별히 정묘(精妙)하게 부채를 만들어 특별히 그 요구에 응하였으니, 뒷날의 폐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대부(士大夫)로서 스스로 삼가는 면에서 매우 염치없는 일이니, 청컨대 파직하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우선 추고(推考)하되, 그 함사(緘辭)를 보고 처치하도록 명하였다. 뒤에 본도(本道)에서 조사하여, 이는 바로 숙천(肅川)의 일이고 순안(順安)의 일이 아니라고 아뢰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전사(前史)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인물(人物) / 사법-탄핵(彈劾)
- [註 427]좌선(坐禪) : 고요히 앉아서 참선(參禪)함.
- [註 428]
입정(入定) : 선정(禪定)에 들어감.- [註 429]
고목 사회(枯木死灰) : 말라 죽은 나무와 불이 꺼진 재라는 뜻으로, 사람이 욕심이 없거나 생기가 없는 것을 형용하는 말임.- [註 430]
봉조하(奉朝賀) : 조선조 때 전직 관원을 대우하여 종2품 이상의 관원에게 치사(致仕)한 뒤에 특별히 주던 벼슬, 실제 사무는 보지 않고, 단지 의식(儀式)이 있을 때에만 관청에 나가서 참여하고 종신토록 녹봉(祿俸)을 받음.○御晝講。 講《心經》 《牛山章》, 領事金壽恒曰: "佛與吾儒, 操心則同, 而佛家則坐禪入定, 有如枯木死灰, 儒家則心是活物, 必以存養爲貴, 人之晝之所爲, 淸朝體驗, 則多覺其非。 臣於孝廟朝, 待罪副提學, 適講此章, 奉朝賀宋時烈, 亦爲入侍, 反復論難, 則孝廟敎以: ‘當時過中之擧, 經夜思惟,方覺其失, 以此用工可至漸進。’ 追惟至今, 聖敎如昨。 願聖上, 亦於此體認焉。" 上曰: "人君一日萬幾, 尤難操存, 此章最宜着力。" 壽恒曰: "自前國恤三年內, 科場士子輩, 例服白衣巾, 而近來泮庠之製, 皆着黑巾云, 此殊未安。 今監試已迫, 士子以白衣巾入場事, 宜令禮曹, 預爲稟定。" 上可之。 持平李德成啓言: "北門鎖鑰, 爲任甚重, 超階膺命, 尤愼其選。 新授咸鏡監司權是經, 本乏聲望, 亦蔑成績, 遽膺玆擢, 物情未厭, 請改正。" 上問於壽恒曰: "此言何如。" 壽恒曰: "是經爲人, 本甚詳明, 曾按嶺南, 盡心國事, 今雖遞改, 所易, 未必賢於是經也。" 上曰: "是經出入近侍, 予固知其爲人, 勿煩。" 德成又言, 今番勑行, 到處求扇, 以其規外, 皆不應副, 順安縣令李公權, 以別製妙箑, 特應其索, 非但有關後弊, 士夫自飭, 亦甚無恥, 請罷職。" 上命姑先推考, 觀其緘辭而處之。 後本道査啓, 卽肅川事而非順安云。
- 【태백산사고본】 17책 15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전사(前史)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인물(人物) / 사법-탄핵(彈劾)
- [註 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