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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15권, 숙종 10년 2월 18일 갑인 1번째기사 1684년 청 강희(康熙) 23년

김수흥이 소두산에 관해, 민정중이 포청에 갇힌 검계·홍만조 등에 관해 아뢰다

임금이 중완(中脘)에 뜸을 떴다. 김수흥(金壽興)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공홍 감사(公洪監司) 소두산(蘇斗山)을 논한 일은 매우 심하다 하겠습니다. 소두산은 사람됨이 저속하지 않고 재능과 국량(局量)도 조금 있으며, 청렴하지 않다고 비방받기는 하나 전에 강릉(江陵)을 맡았을 때에 털끝만큼도 범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지금까지 칭찬합니다. 그러나, 이미 대간의 의논을 받았으니, 우선 갈도록 허가하셔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간의 말은 매우 심하다 하겠으나, 우선 감사를 갈고 그대로 동래(東萊)를 맡기라."

하였다.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이 입대(入對)하여 말하기를,

"포청(捕廳)에 갇힌 검계(劍契) 10여 인 가운데에서 가장 패악(悖惡)한 자는 칼로 살을 깎고 가슴을 베기까지 하여 흉악한 짓을 하는 것이 그지없다 합니다. 이제 느슨히 다스려서 그 무리가 번성하게 되면 그 걱정되는 것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우두머리는 중법(重法)으로 처결하고 붙좇은 무리는 차등을 두어 죄를 다스려서 관련된 자가 옥에서 지체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중을 가려서 아뢰게 하여 참작하여 처치하는 바탕으로 삼아야 하겠다."

하였다. 민정중이 말하기를,

"홍만조(洪萬朝)·이현조(李玄祚)의 소(疏)에는 허목(許穆)이 말한 것이 실수였다 하였으나, 정치가 문란하였다는 말이 어찌 말의 실수라고만 해야겠습니까? 삭출(削黜)하자는 논의는 지극히 참작한 것이니, 문득 멈추는 데 준행할 수는 없습니다. 정언(正言) 최석항(崔錫恒)이 물의가 있다 하여 인피(引避)하였는데, 대사간(大司諫) 안진(安縝)이 처치하여 출사(出仕)를 청하였습니다. 의리가 어두운 것이 모두 이 지경이 되었으니, 홍만조·이현조 두 사람은 전의 대관(臺官)이 아뢴 대로 삭출하고 안진·최석항은 모두 체차(遞差)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68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甲寅/上受灸中脘。 金壽興曰: "臺諫論公洪監司蘇斗山事, 可謂已甚。 斗山爲人不低, 微有才局, 雖以不廉得謗, 向宰江陵, 秋毫不犯, 人到今稱之。 然旣被臺議, 姑宜許遞。" 上曰: "臺言可謂已甚, 姑遞監司, 仍任東萊。" 左議政閔鼎重入對言: "捕廳所囚劍契十餘人中, 最悖惡者, 至以刀劍刻肌割胸, 行兇作惡, 罔有紀極云。 今若緩治, 使其徒寔繁, 則其爲患, 有不可言。 巨魁則處以重法, 附從之類, 差等治罪, 無使至於株連滯獄宜矣。" 上曰: "宜令分輕重稟啓, 以爲參酌處置之地。" 鼎重曰: "洪萬朝李玄祚之疏, 以許穆爲言語之失, 政亂之說, 豈但爲言語之失乎? 削黜之論, 極是參酌, 而未準遽停。 正言崔錫恒以有物議引避, 而大司諫安縝處置請出。 義理晦塞, 一至於是, 兩人請依前臺啓削黜, 安縝崔錫恒竝遞差,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1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68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