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 뒤에 임금이 김수항 등에게 재이와 변방의 소요에 관한 방책을 말하라고 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재신(宰臣)들을 여차(慮次)에서 인견(引見)하였다. 임금이 한참 곡(哭)하고서 그쳤는데, 초상(初喪) 뒤에 비로소 신하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올해는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회갑이라 새해 처음에 두 자전(慈殿)께 진연(進宴)하려 하였는데, 어찌 잔을 올리는 예(禮)가 제물을 바치는 일로 바뀌리라고 생각하였겠는가?"
하였다. 신하들이 차례로 위로를 아뢰고 나니, 임금이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이제 재이(災異)가 이러하고 또 변방(邊方)의 근심이 있어서 인심이 소요하므로, 그치게 할 방책을 함께 강구하려고 경(卿)이 조정에 나오기를 기다렸다. 각각 품은 생각을 말하라."
하였다. 김수항이 백성의 고통을 돌보고 군정(軍政)을 닦으며 무사(武士)를 등용할 것을 아뢰니, 임금이 병조 판서(兵曹判書) 여성제(呂聖齊)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곤수(閫帥)079) ·변장(邊將)과 금군장(禁軍將)은 각별히 가려서 차출하라. 금위(禁衛)는 곧 친병(親兵)이니, 군장(軍裝)·전마(戰馬)를 친히 점검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임금이 각 군문(軍門)을 시켜 군병의 기예(技藝)를 시험하고 상을 주어 격려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다 말하기를,
"졸곡(卒哭) 전에는 군무(軍務)를 으레 다 멈추는 법인데, 이제 이 별거(別擧)를 하면 인심이 크게 흔들릴 것이니, 우선 졸곡 뒤를 기다리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우의정(右議政) 남구만(南九萬)이 함경도(咸鏡道)의 친군위(親軍衛)를 단속하여 대오(隊伍)를 만들 것을 아뢰고, 신하들이 다 그 편리함을 말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을 시켜 강정(講定)하여 빨리 시행하게 하였다. 어영 대장(御營大將) 윤지완(尹趾完)이 말하기를,
"신(臣)은 근심이 국내에 있으니, 먼저 인심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수습할 방도를 물으매, 윤지완이 말하기를,
"국가의 처치가 마땅하여 무익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하고, 남구만이 말하기를,
"수습하는 데에 어찌 방도가 없겠습니까? 국가에서 절약하여 쓰는 것으로 힘쓰고 백성의 부역을 감면하면, 이것이 수습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대신에게 말하기를,
"을묘년080) 에 왜서(倭書) 때문에 부고사(訃告使)가 가는 편에 이자(移咨)081) 하였더니, 청인(淸人)이 크게 의심하고 노하여 사칙(査勅)082) 을 보냈거니와, 이번 왜서도 저 나라에 흘러 전해질 걱정이 없지 않을 것인데, 이자 하는 일의 편부(便否)는 과연 어떠하겠는가?"
하니,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과 남구만이 대답하기를,
"을묘년은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서 청인이 바야흐로 우리 나라를 의심할 즈음이었는데 자문(咨文)이 마침 이르렀으므로, 크게 의심하여 회자(回咨)에 ‘급한 일이 있으면 군사를 보내어 구원하겠다.’라고까지 하였고, 이제까지도 저들이 역관(譯官)들에게 ‘그때 너희 나라의 일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한다 합니다. 이제 또 이자하면 아마 사사(査使)를 보내 오겠지만, 이제 이자하지 않더라도 저들이 전해 듣고 힐책(詰責)한다면, 우리는 ‘급히 알릴 것이 아니므로 알리지 않았다.’고 답해야 할 것이니, 이자하지 않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하고, 김수항의 뜻도 같았는데, 임금이 윤허하였다. 영부사(領府事) 김수흥(金壽興)이 곤수(閫帥)에 합당한 사람을 뽑아서 미리 양성하여 등용하기를 청하고, 민정중이 말하기를,
"감사(監司)에 합당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뽑아 아뢰되, 정하게 뽑도록 힘쓰고 많이 뽑도록 힘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지평(持平) 조상우(趙相愚)가 아뢰기를,
"동래(東萊)는 남쪽 변방의 중요한 땅이므로 직임이 가볍지 않습니다. 부사(府使) 한구(韓構)는 사람됨이 부랑(浮浪)하고 처신이 더러우며, 경외(京外)에서 두루 써 보았으나 일찍이 재능이 없었는데, 뜻밖에 현저히 발탁되었으므로 물정(物情)이 놀라와하니, 개정(改正)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묘당(廟堂)에서 의논하여 천거하였고 근시(近侍)도 지냈으니, 나는 그가 합당하지 않을 줄 모르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김환(金煥)을 추국(推鞫)하기를 청하는 논의는 온 나라 안이 말을 같이하는데, 이굉(李宏) 등은 공론을 돌보지 않고 서둘러 논계(論啓)를 멈추므로 대관(臺官)의 체모가 땅을 쓴 듯이 없어지고 물정이 놀라고 분개하였으며, 처치(處置)하여 출사(出仕)를 청한 것도 변변치 못하니, 집의(執義) 이굉(李宏)·사간(司諫) 성호징(成虎徵)·장령(掌令) 안세징(安世徵)·지평(持平) 양중하(梁重廈)·정언(正言) 윤홍리(尹弘离)는 모두 체차(遞差)하소서."
하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김환을 추국하기를 청하는 논의는 처음부터 근거가 없었으니, 상의하여 논계를 멈춘 것은 대관의 체모에 당연한 것인데, 논계를 멈춘 사람을 뒤미쳐 탄핵하여 시끄러운 꼬투리를 일으키니, 요즘 논의가 어그러져 벌어지는 것은 반드시 이들에게서 말미암지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고, 이어서 조상우(趙相愚)를 특별히 갈라고 명하였다. 조상우가 곧 총총걸음으로 나갔는데, 임금이 또 소리를 돋우어 말하기를,
"어찌 이러한 논의가 있겠는가? 참으로 몹시 변변치 않다."
하니, 교리(校理) 신계화(申啓華)가 나아가 말하기를,
"해를 넘기며 거듭 나오는 논의는 본디 한두 사람이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조상우가 갑자기 보고 놀라서 생각이 있었던 것을 죄다 아뢴 것인데, 어찌하여 이토록 꺾으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조상우의 논의는 몹시 어그러졌는데, 신계화가 감히 구제하니, 추고(推考)하라."
하였다. 승지(承旨) 김진귀(金鎭龜)가 말하기를,
"김환에 대한 논의가 다시 난 것은 마땅하지 않더라도, 언관(言官)을 특명으로 갈고 유신(儒臣)을 추고하는 것은 중도에 지나침을 면하지 못하니, 모두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고, 민정중도 말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양사(兩司)에서 서로 논의하여 논계를 멈추었으므로 공론을 알 만한데, 이제 또 이처럼 소란을 일으키니, 어떻게 나라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니, 민정중·남구만이 잇달아 굳이 간쟁(諫爭)하였으나, 임금이 끝내 따르지 않았다. 대개, 조상우가 먼저 이굉 등을 탄핵하고 장차 김환을 추국해야 한다는 논계를 내려 하였으나, 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꾸중을 받고 나갔다. 바야흐로 조상우가 대관들을 논할 때에 정언 윤홍리가 마침 임금 앞에 같이 입시(入侍)하여 있다가 자리를 떠나 움직움직하는 것이 스스로 변명하려는 듯하므로,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놀라서 말하기를,
"이미 그의 탄핵을 받았는데, 다시 무슨 말을 하려 하는가?"
하니, 윤홍리가 비로소 마지못하여 물러나갔는데, 그를 비난하는 물의가 커서 드디어 외직(外職)에 보임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5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67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과학-천기(天氣) / 군사-군정(軍政) / 재정-역(役)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註 079]곤수(閫帥) : 병사(兵使)와 수사(水使).
- [註 080]
을묘년 : 1675 숙종원년.- [註 081]
이자(移咨) : 자문(咨文)을 보내는 것인데, 자문은 중국과 왕복하는 공문서(公文書).- [註 082]
사칙(査勅) : 사찰(査察)하기 위하여 보내는 칙사(勅使).○庚子/引見大臣及備局諸臣于廬次。 上哭移時乃止。 初喪後, 始接臣僚故也。 上垂涕曰: "今年乃大王大妃周甲也。 歲首欲行進宴於兩慈殿矣, 豈意稱觴之禮, 變作薦豆之事乎?" 諸臣以次陳慰訖, 上顧領議政金壽恒曰: "今災異如此, 且有邊虞, 人心騷擾。 欲與講究消弭之策, 待卿造朝, 其各言所懷。" 壽恒陳恤民隱、修軍政、調用武士事, 上以飭兵曹判書呂聖齊曰: "閫帥、邊將及禁軍將各別擇差。 禁衛卽親兵也, 軍裝、戰馬, 親自點飭可也。" 上欲使各軍門試藝軍兵, 施賞以激勸之, 諸臣皆以爲: "卒哭前軍務, 例皆停止。 今若爲此別擧, 人心必大撓, 請姑竢卒哭後。" 上可之。 右議政南九萬陳咸鏡道親軍衛團束作隊事, 諸臣皆言其便, 上令廟堂講定速行。 御營大將尹趾完曰: "臣則憂在邦內, 宜先收拾人心。" 上問收拾之道, 趾完曰: "朝家處置得宜, 不作無益, 庶乎可也。" 九萬曰: "收拾豈無其道? 朝家以節用爲務, 蠲除民役, 則此爲收拾之道也。" 上謂大臣曰: "乙卯因倭書, 移咨於訃使之行, 則淸人大生疑怒, 致有査勑。 今此倭書, 亦不無流傳彼國之患, 移咨便否, 果如何?" 左議政閔鼎重及九萬對曰: "乙卯年間, 天下大亂, 淸人方疑我國之際, 咨文適至之, 故大以爲疑。 回咨至曰: ‘若有急, 則當發兵救之。’ 至今彼人言于譯輩曰: ‘其時汝國之事, 實爲可疑。’ 云。 今若又移咨, 則恐必有査使矣。 今雖不咨, 彼若流聞而詰責, 則我當答以非急報, 故不告耳。 不咨便。" 壽恒意亦同, 上可之。 領府事金壽興請抄擇閫帥可合人, 儲養調用。 鼎重曰: "監司可合人, 亦一體抄啓, 務精不務多似好。" 上允之。 持平趙相愚啓曰: "東萊乃南藩重地, 爲任不輕。 府使韓構爲人浮浪, 行己鄙陋, 歷試內外, 曾無才能, 意外顯擢, 物情駭然。 請改正。" 上曰: "廟堂議薦, 且經近侍, 予未知其不合也。" 又啓曰: "金煥請鞫之論, 擧國同辭, 而李宏等不恤公議, 汲汲停止, 臺體掃地, 物情駭憤。 處置請出, 亦甚無謂。 請執義李宏、 司諫成虎徵、掌令安世徵、持平梁重厦、正言尹弘离竝遞差。" 上怒曰: "金煥請鞫之論, 初旣無據, 相議停止, 臺體當然。 而追劾停論之人, 惹起閙端, 近來論議之乖張, 未必不由於此輩。" 仍命特遞相愚。 相愚卽趨出。 上又厲聲曰: "豈有如此論議乎? 誠極無狀矣。" 校理申啓華進曰: "閱歲重發之論, 固非一二人可停, 故相愚驟見而駭之。 有懷盡達, 何其摧折之至此耶?" 上曰: "相愚之論, 極爲乖戾, 而啓華敢爲救解, 推考。" 承旨金鎭龜曰: "更發金煥之論, 雖未恰當, 而特遞言官, 推考儒臣, 誠不免過中。 請竝還收。" 鼎重亦言之, 上曰: "兩司相議停論, 公議可見, 而今又惹閙如此, 何以能做國事?" 鼎重、九萬相繼固爭, 上終不從。 蓋相愚先劾宏等, 將復發鞫煥之啓, 而未及畢辭, 被譴而出。 方相愚之論諸臺也, 正言尹弘离適同侍上前, 離席蹲蹲, 若將自辨, 在坐諸臣, 莫不駭然曰: "旣被其彈, 將復何言?" 弘离始乃黽勉退出, 物議大以爲非, 遂補外職。
- 【태백산사고본】 16책 15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67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과학-천기(天氣) / 군사-군정(軍政) / 재정-역(役)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註 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