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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3권, 숙종 8년 6월 23일 기해 1번째기사 1682년 청 강희(康熙) 21년

당선의 보고 여부와 제주의 서원 건립에 관한 논의

대신(大臣)과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우의정(右議政) 김석주(金錫胄)가 아뢰기를,

"이선(李選)의 상소 중에 중국 배[唐船]의 일을 논한 것은 옳습니다. 연해(沿海)를 멀리 정탐하는 것을 폐지함은 일이 매우 염려스러우며, 지금은 또 앞서의 시기와는 다름이 있습니다. 무릇 남쪽의 선박이 해도(海島)에 출몰하는 것은 대부분 정금(鄭錦)에게 복속(覆屬)한 무리이니, 더욱이 중국 사람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청하건대 전과 같이 멀리 망을 보다가 뒤따라 즉시 계문(啓聞)하게 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이보다 앞서 제주(濟州)의 유생이 문간공(文簡公) 김정(金淨)과 참판(參判) 정온(鄭蘊)은 일찍이 섬 안에 유배되어 있었고, 문충공(文忠公) 송인수(宋麟壽)는 본주(本州)의 목사(牧使)가 되었으며,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은 순무 어사(巡撫御史)로서 섬 안에 들어왔었다는 이유로써 네 신하의 서원(書院)을 창건하고, 상소하여 사액(賜額)을 청하니, 해조(該曹)에서 중첩하여 설치한 이유로써 예(例)에 의거하여 방계(防啓)211) 하였었다. 김석주가 아뢰기를,

"네 신하는 모두 문학(文學)과 명절(名節)이 있었는데, 바다 밖에 사는 사람이 존경하고 사모할 줄 알았으므로 이는 가상한 일이니, 육지 근방에 부산하게 중첩으로 설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특별히 사액(賜額)하기를 허가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93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외교(外交)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211]
    방계(防啓) : 남이 내세우는 의견을 막고서 계주(啓奏)하는 일.

○己亥/引見大臣、備局諸臣。 右議政金錫冑奏: "李選疏中, 論船事是矣。 沿海瞭探之廢弛, 事甚可慮, 卽今又與前時有異, 凡南船之出沒於海島者, 率多服屬於鄭錦之類, 則尤不可以中華人物論也。 今後請令如前瞭望, 隨卽啓聞。" 上可之。 先是, 濟州儒生以文簡公 金淨、參判鄭蘊嘗謫居島中, 文忠公 宋麟壽爲本州牧使, 文正公 金尙憲以巡撫御史入來島中, 創建四臣書院, 上疏請額。 該曹以疊設, 據例防啓矣。 錫冑奏: "四臣俱有文學名節, 而海外之人能知尊慕, 此爲可嘉, 不可與陸地近服, 紛紜疊設者比也。" 上特許賜額。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93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외교(外交)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