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과 의금부 당상관을 인견하여 시수와 정배 죄인의 관대한 처결 등을 의논하다
대신(大臣)과 의금부(義禁府)의 당상관(堂上官)을 인견(引見)하였다. 의금부(義禁府)의 시수(時囚)181) 와 정배(定配)된 여러 죄인을 관대히 처결하였는데, 석방된 자가 20여 명으로, 정익(鄭榏)·강석빈(姜碩賓) 등이 포함되었고, 유명천(柳命天)·홍만종(洪萬宗)·이집(李鏶)도 감등(減等)되었다. 김수항(金壽恒)이 말하기를,
"북도(北道)에 정배(定配)된 죄인(罪人) 이옥(李沃)은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회령(會寧)의 많은 선비들을 다수 모아놓고 부정한 말로 선동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였으니, 청컨대 유배시킨 곳을 옮기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어서 형조(刑曹)의 관대한 처결을 시행하였다.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이혼(李焜)·이엽(李熀)을 당초에 편배(編配)한 것을 실제로 죄상이 있다고 여겨서가 아니었는데, 죄인으로서 억울하고 불쌍한 자는 이보다 지나친 것은 없으니, 참작해서 처리함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대신(大臣)들에게 물으니, 김석주(金錫胄)가 말하기를,
"지난번 같은 당파의 사람들이 종통(宗統)·적통(嫡統)의 설(說)을 먼저 말하여 자기와 다른 사람을 해치고자 해서 이유정(李有湞)의 옥사(獄事)가 일어난 후에 이것을 가지고 화(禍)를 남에게 씌우는 자료로 삼은 것입니다. 만약 가까운 곳에 둔다면 뜻밖의 근심이 없으리라는 보장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신도 이렇게 차자(箚子)를 아뢰었던 것은 대개 보전(保全)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흉악한 무리가 말을 만들고 형세가 불안하였던 때와는 다르니, 참작해서 처리하더라도 옳지 않음이 없을 듯합니다."
하고, 김수항(金壽恒)도 옮길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유독 김수흥(金壽興)만은 그대로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하였다. 임금이 해변(海邊)의 고을로 옮겨서 유배시키도록 명하니, 의금부(義禁府)에서 마침내 진도(珍島)로 옮겨서 정하였다. 김수항·민정중이 함께 말하기를,
"궁가(宮家)와 내수사(內需司)의 일에 대해서 성상께서는 매번 별도의 재가가 있었으므로 편벽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듣고서 의심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였다. 이때 민정중의 별단(別單)182) 에서 연로(沿路)에 들은 바 가운데 관서(關西) 여러 고을의 어전(漁箭)과 병선(兵船)이 궁세(宮稅)183) 의 폐단으로 침해를 받는다고 한 것을 묘당(廟堂)에서 복계(覆啓)하여 모두 혁파(革罷)하도록 청하였으나, 임금이 특별히 혁파하지 말도록 명하였기 때문에, 김수항이 또 이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민정중이 말하기를,
"이때는 백성을 구휼(救恤)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내간(內間)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은 오히려 두 번째 일이니, 만약 성상께서 명백히 이러한 뜻을 가지고 대왕 대비전(大王大妃殿)에 아뢴다면, 어찌 정파(停罷)하라고 명하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김석주가 말하기를,
"대신(大臣)이 눈으로 보고 아뢰었으며 묘당(廟堂)에서 복계(覆啓)하여 청하였는데도 오히려 받아들여 허락하지 않으시니, 일의 대체가 옳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변방(邊方)의 병선(兵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마는, 일이 동조(東朝)184) 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에 관계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정파(停罷)하도록 명하였다. 김수항이 말하기를,
"금위영(禁衞營)의 절목(節目)과 규제(規制)는 겨우 이미 강구(講究)하여 정하였으므로 대장(大將)을 이제 마땅히 임명해서 보내어야 할 텐데, 다만 제수(除授)할 만한 사람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도로 대장을 두는 것은 일이 불편한 바가 있습니다. 우선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하여금 겸임하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하고, 민정중이 김수항의 말을 옳게 여기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후로는 그대로 정례(定例)가 되었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정익(鄭榏)·강석빈(姜碩賓)을 석방하도록 한 것을 도로 거두도록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9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註 181]시수(時囚) : 현재 옥에 갇혀 있는 죄인.
- [註 182]
○乙亥/引見大臣、禁府堂上, 行疏決, 禁府時囚及定配諸罪人蒙放者二十餘人, 鄭榏、姜碩賓等與焉。 柳命天、洪萬宗、李鏶亦減等。 金壽恒言: "北道定配罪人李沃以訓誨爲名, 多聚會寧多士, 鼓煽邪說, 誑惑人心, 請移配所。 上從之。 仍行刑曹疏決。 閔鼎重曰: "焜、熀當初編配, 非以爲實有罪狀。 罪人之冤鬱可矜者, 無過於此, 似當酌處。" 上問諸大臣, 金錫冑曰: "向日, 黨人倡爲宗統、嫡統之說, 欲害異己, 及有湞獄起, 執此而爲嫁禍之資。 若置近地, 難保無意外之慮, 故臣亦以是陳箚者, 蓋欲保全之也。 今則與凶徒造言, 時勢危疑之時有異, 參酌處之, 似無不可。" 金壽恒亦言其可移, 獨金壽興以仍置爲便。 上命移配海邊邑, 禁府遂移定珍島。 壽恒、鼎重俱言, 上於宮家、內司事, 每有別判付, 未免偏係, 聽聞疑惑。 時, 鼎重別單沿路所聞中, 關西諸邑漁箭、兵船見侵宮稅之弊, 廟堂覆啓請竝革罷, 上特命勿罷, 故壽恒又以是爲言。 鼎重曰: "此時恤民爲急, 內間需用, 猶是第二件事。 若自上明以此意, 稟白于大王大妃殿, 則豈不命停罷乎?" 錫冑曰: "大臣目見而陳之, 廟堂覆啓而請之, 猶不聽許, 事體不可。" 上曰: "予非不念邊上兵船之爲重, 而事係東朝需用, 故如是矣。" 仍命停罷。 壽恒言: "禁衛營節目規制, 才已講定, 大將今當差出。 而非但可授之人未易, 別設大將, 事有所難便, 姑令兵判兼帶爲便。" 鼎重以壽恒言爲是, 上從之。 是後仍以爲例。 憲府發鄭榏、姜碩賓放釋還收之啓, 不允。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9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註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