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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2권, 숙종 7년 12월 9일 무자 1번째기사 1681년 청 강희(康熙) 20년

약방 도제조 김수항이 호포의 시행 등에 관해 아뢰다

약방 도제조(藥房都提調) 김수항(金壽恒)을 인견(引見)하였다. 이때 임금이 계복(啓覆)한 사형수를 임결(臨決)하려고 하였는데, 김수항이 성상의 체후(體候)가 겨우 안정이 되었는데 추위를 무릅쓰고 전(殿)에 나아가면 손상(損傷)을 입을까 염려하여 극력 정지하도록 주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김수항이 또 말하기를,

"위패(違牌)697) 한 자는 으레 의금부(義禁府)에서 추국(推鞫)하였는데, 지난날 이 규칙을 변통(變通)한 뒤로부터 위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임금의 명령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죄받는 것만을 꺼리는 것입니다."

하고, 인해서 여러 신하들을 신칙하고 면려하며, 비록 자신들에게도 태만한 일이 있으면 먼저 견책하고 배척하여 뭇 신하들을 경계하도록 청하자, 임금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김수항이 또 말하기를,

"묘호(廟號)를 추가하여 올리던 때에 종반(宗班)698) 으로 제사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석한 자가 매우 적었는데도 종부시(宗簿寺)에서는 단속하는 거사가 없었습니다. 청컨대 해당 제조를 추고(推考)하고 참석하지 않은 자는 조사해 내어 조처하소서."

하니, 임금이 제조(提調)는 추고하고 참석하지 않은 자는 직임을 파면하도록 명하였다.

김수항이 또 말하기를,

"이지익(李之翼)의 근년의 일은 이미 매우 사리에 어긋나, 한 차례 죄상을 조사하여 탄핵하는 것을 면할 수 없는데도, 대간(臺諫)의 아룀을 오래도록 윤허하지 않으시니, 경조(京兆)의 업무를 폐(廢)하는 것도 염려가 됩니다. 우선 체임을 허락하심이 적합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김수항이 또 말하기를,

"신역(身役)을 변통(變通)하는 것으로 호포(戶布)만한 것이 없습니다. 평안 감사(平安監司) 유상운(柳尙運)과 병사(兵事) 이세화(李世華)도 본도(本道) 백성들의 여론이 모두 호포를 빨리 시행하는 것을 원한다고 하였었는데, 신이 좌상(左相)과 서로 의논하여 양서(兩西)699) 에 먼저 시행하려고 하나, 반드시 주관하는 사람이 있어야 도신(道臣)과 왕래(往來)하면서 의논하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청컨대 김석주(金錫胄)로 하여금 오로지 관장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2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6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출판-인쇄(印刷)

  • [註 697]
    위패(違牌) : 승지가 왕명이 적힌 패를 가지고 신하를 불렀으나 어기고 오지 않는 것.
  • [註 698]
    종반(宗班) : 왕가(王家)의 겨레.
  • [註 699]
    양서(兩西) : 황해도와 평안도.

○戊子/引見藥房都提調金壽恒。 時, 上將臨決啓覆死囚, 壽恒以上候甫安, 冒寒御殿, 恐致傷損, 力請停止, 上從之。 壽恒又言: "違牌者, 例爲禁推, 而自頃日變通此規之後, 違牌紛紜, 是不畏君命, 而唯以罪譴爲憚耳。" 仍請: "勑勵群工, 雖臣等如有怠慢之事, 先賜譴斥, 以警群僚。" 上深納之。 壽恒又言: "追上廟號時, 宗班之進參祭班者甚少, 而宗簿寺無糾撿之擧。 請當該提調推考, 不參者査出處之。" 上命提調推考, 不參者罷職。 壽恒又言: "李之翼頃年事, 旣甚謬戾, 不可免一番糾劾, 而臺啓久不允, 京兆廢務亦可慮。 宜姑許遞。" 上從之。 壽恒又言: "變通身役, 莫如戶布。 平安監司柳尙運、兵使李世華亦以爲, 本道民情, 皆願速行戶布。 臣與左相相議, 欲先施於兩西, 必有主管之人, 然後可與道臣往復議定。 請令金錫冑專管。" 上可之。


  • 【태백산사고본】 11책 12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6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재정-역(役) / 출판-인쇄(印刷)